‘해마다 8월이 오면 동아시아 지역은 전쟁에 휘말린다. 그것은 다름 아닌 역사전쟁이다’-. 오래 전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다.
계절병 같이 8월이면 번졌었다. 그 역사전쟁이 이제는 연중무휴로 전개되고 있다. 중국에서는 시진핑 체제가 출범했다. 일본에는 아베정권이 등장했다. 이후 특히 두드러진 현상이다.
“넌더리가 난다.” 그러니까 3년째 지속되고 있는 동아시아의 역사전쟁에 대한 미국 내 일각에서의 반응이다. 그 역사전쟁이란 게 그렇다. 당사국 지도자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교묘히 부추기는 측면이 강하다. 때문에 제 3자의 입장에서는 지겹기만 한 것이다.
속된 표현으로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 바로 동아시아의 역사전쟁이란 시각을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군국주의 일본의 만행은 씻을 수 없는 역사적 과오다. 그 과거 역사를 슬쩍 호도하려 든다. 그럴 때 마다 중국은 대학살의 원흉으로 일본을 비난하고 나선다. 그러면 인류 대학살이란 반(反)인륜범죄에서 중국은 과연 자유로울 수 있는가. 관련해 던져지는 질문이다.
공산정부가 들어선 이후 학살된 중국인은 수천만에 이른다. 1947년에서 52년 동안 토지개혁 과정에 150~200만여 명이 학살됐다. 1950~52년 모택동의 이른바 반혁명분자 숙청 때는 최소 200만이 희생됐다. 그리고 대약진시기에는 수천만이 굶어 죽었다.
중국 공산당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택동이 실패를 시인하지 않자 그 정책을 계속 밀고 나갔다. 아사자는 더 늘었다. 그리고 뒤 찾아 온 게 문화대혁명이다. 이 혼란기에 얼마나 많은 인명이 희생됐는지는 통계조차 없다.
공산당 통치 첫 25년은 한 마디로 대학살과 대혼란의 시기였다. 그 참상을 밝힐 것인가. 중국 공산당의 이해에 도움이 안 된다. 그런 판단과 함께 공산체제는 그 사실을 덮었다.
한 가지 비유가 제시된다. 일본의 역사왜곡은 일부 정치적 강경세력에 의해 저질러지고 있다. 반면 중국은 공산당이 나서서 공식적으로 역사를 전면 왜곡시키고 있다. 그 잘못된 역사기술을 바꾸려는 시도는 아예 범죄로 다루면서까지.
그러니 중국의 역사 전쟁 도발은 위선도 그런 위선이 없는 것이다. 그 위선의 극치는 69년 동안 조용하다가 9월3일, 2차 대전 전승절(戰勝節)을 공식적인 국가공휴일로 제정하고 올해 70주년을 맞아 대대적 행사를 벌이기로 계획한 데서 찾아진다.
“중국은 20세기에 세 차례의 혁명을 경험했다. 1911년 신해혁명, 1949년 중국공산당 정권수립, 그리고 1970년대 개혁개방이다. 이 모든 세 차례의 혁명에서 일본은 중차대한 영향을 끼쳤다.” 데이빗 램튼의 진단이다.
1895년 청일전쟁 패배 결과 신해혁명이 발생하고 청(淸)왕조가 무너졌다. 그리고 이후 역사의 고비마다 일본은 역설적으로 중국공산당의 입지강화에 결정적 도움을 준다.
1934년 중국공산당은 궤멸직전의 상황에 몰렸다. 그 중국공산당에 예기치 않았던 원군(援軍)이 나타났다. 다름 아닌 군국주의 일본군이다. 장개석은 일본군의 침공사태를 맞아 내전을 중단하고 항일전쟁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국공합작이 이루어진 것이다.
항일전쟁 전 전선에 걸쳐 장개석의 국부군은 사력을 다해 싸웠다. 이 시기 중공군은 인민(주로 농촌지역의)안에 숨어 힘을 길렀다. 1937년에서 1945년 사이 연대병력 이상이 동원된 23차례 대 일본군 전투에 파견된 중공군은 1500명을 넘지 않았다.
이는 주은래가 1940년 스탈린에게 보낸 비밀보고서에서도 확인된다. 1939년 여름 대일전쟁 전사자 수를 100만 정도로 밝히면서 그 중 공산군 희생자는 3%도 안 되는 것으로 시인한 것.
항일전쟁에서 국부군은 엄청난 희생과 함께 주력을 상실하다시피 했다. 계획적으로 일본군과의 충돌을 회피해 온 중공군은 이 기간에 300여만으로 그 병력이 크게 불었다. 그리고 마침내 1949년 국부군을 몰아내고 베이징에 입성한다.
항일전쟁의 승리자는 중국공산군이 아닌 국부군이다. 중국공산당은 역사의 전면왜곡과 함께 그 공을 가로채고 2015년 9월3일 국제적 행사를 계획한 것이다. 항일전쟁은 물론이고 ‘한 세기의 치욕’으로부터 중국을 구원한 것도 공산당이라는 대대적 선전선동과 함께.
그 자리에 박근혜 대통령이 초대를 받았다. 여기서 한번 상상을 해본다.
중공군의 열병식이 거행된다. 6.25때 국군과 싸운 그 중공군 말이다. 사열대 한 가운데에는 시진핑이 득의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 옆에는 러시아의 푸틴이 자리 잡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함께. 서방 지도자들은 안 보인다. 그리고 김정은 대신 참석한 김영남 북한 최고회의 상임위원장의 모습도 보인다.
그 광경은 어떻게 비쳐질까. 친중반일(親中反日) 정도가 아니다. 친중반미(親中反美)로 방향을 틀었다는 신호로 비쳐지는 것은 아닐까. 그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대통령의 러시아 전승기념일 참석을 심각히 검토했던 것이 현 정부의 외교 팀이란 말이 들려와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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