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저도 모르게 ‘밀항’이라는 사고를 친 소년이 있다. 경북 경산의 중학교 3학년생인 소년은 지난 17일 방학식을 마치고 무작정 부산행 열차에 올랐다. 엉망으로 나온 성적표를 들고 집에 들어갈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혼날 게 겁이 나 일단 피하고 보자 싶었던 소년은 부산에 도착하자 여객터미널로 향했다.
그리고는 정박 중이던 여객선에 몰래 올라탔는데, “제주도 쯤 가겠지” 했던 여객선은 일본 시모노세키 행 국제선이었다. 화장실에 숨어있던 소년은 출항 4시간 후 일본에 거의 도착할 즈음 선원에게 발견되고, 여객선이 부산으로 귀항한 후 경찰에 인계되었다. 부산 경찰청은 소년을 밀항 단속법 위반 등의 혐의로 불구속 입건하고 집으로 돌려보냈다고 발표했다.
학창시절 ‘성적’ 때문에 가슴 졸인 기억은 누구에게나 있다. 공부를 잘 하면 잘하는 대로, 못하면 못 하는 대로 성적 걱정은 대개 성장기의 가장 큰 심리적 부담이다. 그래서 컨닝 페이퍼를 만들기도 하고, 성적표를 받고도 안 받은 척 부모를 속이기도 하며, 심하게는 하룻밤 가출을 감행하기도 한 추억들이 있다. 잘한 행동이라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잘못, 실수, 일탈을 통해 배우고 성숙해지는 것이 성장의 자연스런 과정이다.
넘어져야 일어나는 법을 배우는데 절대로 넘어지지 않게 키워진 아이들이 요즘 문제가 되고 있다. 넘어져본 경험이 없는 아이들 -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최우수 학생으로 주목 받다가 모두의 예상대로 아이비리그 등 명문대학에 입학한 학생들이다.
자신만만하던 이들이 대학에 들어가면 어리둥절해진다. “네가 최고!”라는 칭찬을 당연시하며 자랐는데 캠퍼스의 학생들을 보니 하나같이 자신보다 우수하면 우수했지 못하지가 않은 것이다. 다른 학생들은 놀 것 다 놀고도 공부를 잘 하는 것 같은데 자신은 밤새워 준비해도 강의를 따라가지 못해 헉헉 대고, 생전 안 받아본 B나 C를 받으면서 태어나 처음으로 좌절을 경험한다. 그리고는 그 낯선 경험을 감당하지 못해 엉뚱한 선택을 하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넘어지면 툭툭 털고 일어나면 된다는 간단한 이치를 배우지 못한 결과이다.
명문대학 내 자살문제가 심각한 수준이다. 며칠 전 뉴욕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펜실베니아 대학 즉 유펜의 경우 지난 13개월 동안 6명이 자살했다. 이들을 크나 큰 자랑으로 여겼을 부모들의 상실감이 얼마나 깊겠는가. 자녀의 명문대 입학을 이민성공으로 생각하는 한인사회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캠퍼스 자살과 완벽주의 압박감’이란 뉴욕타임스 기사를 읽으며 한 아버지를 떠올렸다. 1999년 하버드 재학 중 자살한 한인학생의 아버지이다. 오렌지카운티에서 자란 학생은 어느 모로 보나 완벽한 우등생이었고, 아들을 잘 키워낸 아버지는 학부모들의 부러움을 사면서 대학진학 강연자로 초빙되기도 했다. 그랬던 학생이 자살하자 한인부모들이 받은 충격은 대단했다. 명문대 내의 치열한 경쟁, 그로 인한 엄청난 스트레스, 부모의 높은 기대가 주는 부담, 그리고 이 모든 압박감을 이겨내기에 우리 자녀들의 정신적 버팀대가 약하다는 사실이 지적되었다.
학생이 떠나고 3년 후 그 아버지와 통화할 기회가 있었다. “늘 방에서 말없이 공부만 하던 아이, 무슨 일이든 알아서 잘 해서 도무지 신경 쓰게 하는 일이 없던 아이”의 자살을 그는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미스터리라고 했다. 하지만 “다시 아이를 키운다면 좋은 성적 보다는 강한 정신과 육체에 초점을 맞추겠다”고 그는 말했다.
실패를 모르고 자란 엘리트 학생들을 ‘유리찻잔 아이들’이라고 부른다. 유리찻잔은 예쁘지만 충격에 약하다. 겉보기에 완벽한 우등생들이 난관에 부딪치면 어이없을 정도로 쉽게 무너지는 모습을 빗댄 용어이다. 남들에게 져본 적이 없는 이들은 뒤지는 것을 못 참는다. 행여 B라도 받으면 “다음에 잘하면 되지”하는 대신 “나는 낙오자”라며 세상이 끝난 듯 괴로워한다. 그러니 그 스트레스의 무게가 얼마나 크겠는가.
성공에 너무 집착하는 문화가 문제이다. 자녀를 1등으로 만들려는 엘리트 부모들의 과도한 교육열이 아이들의 정신적 성숙을 막고 있다. 아이의 주위를 맴돌며 조그만 문제라도 생기면 바로 개입해 해결해주는 헬리콥터 부모, 아이의 앞길에 걸림돌이 될 만한 요소들을 미리 처리해서 잔디밭처럼 매끈하게 만들어주는 잔디깎기 부모가 이들이다.
부모가 계속 손잡고 있으니 아이는 넘어질 수가 없고, 일어나는 법을 배울 기회를 갖지 못한다. 대학에서 똑똑한 아이들이 무너지는 이유이다.
야단맞는 것 피하려다 밀항 사고를 친 소년은 이번에 무엇을 배웠을까?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 괜한 고생 안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하자”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 산 경험은 정신적 근육을 키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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