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좋아하는 손자는 책을 안읽어 주면 자려 들지 않는다. 필이 꽂히는 게 있으면 줄창 읽어주어야 한다. 이즈음은 닥터 쑤스.
그중의 한 이야기다. 어떤 마을에 두 종류의 사람(상상속의 동물)이 있다. 한 종류는 배에 별표가 있고 다른 한 종류는 별표가 없다.별표가 있는 이들은 별표가 없는 것들을 사람 취급을 안하다. 자기들끼리만 똘똘 뭉쳐 다니며 사사건건 별표없는 것들을 무시한다.공놀이 할 때도 바베큐 파티 할 때도 별표없는 것들은 손가락 입에 물고 부러워 하기만 한다.
어느 날 장돌뱅이가 시끄럽게 나타나 별표 없는 이들에게 아주 싼값으로 별표를 달아주마 했다. 별표없는 이들이 신이나 별표를 달고 나타나자 별표있는 이들은 분통이 터져 어찌 할바를 모르는데. 장돌뱅이가 이번엔 그들의 별표를 떼어 주겠노라고, 그래서 행여 그 상것들과 구별이 안되어 섞이는 일을 막아주겠노라 했다. 그 자랑스럽던 별표를 이제는 떼려고 돈바치고 하루종일 바쁘게 기계를 들락날락. 이 두 그룹이 정신없이 별을 뗏다 붙였다 하는 사이에 온 동네의 돈이 몽땅 장돌뱅이의 수중으로 들어가고 두 그룹은 승산없는 편가르기에 지쳤다. ‘흠,저 바보들은 죽어도 뭘 깨닫지 못해!’ 바리바리 돈을 챙겨 떠나며 장돌뱅이가 그들을 비웃었는데.
편을 가름으로서 자신이 더 잘났다는 걸 증명하고 싶어하던 이 바보들이 정작 모든 걸 잃고 나자 별표가 별 의미없음을 깨닫고 그때부터 별표가 있건 없건 사이좋게 지낸다는 스토리다.
얼마전 어느 행사에 참석한 일이 있다. 본듯한 사람이 있기에 어디선가 뵌 것 같다고 하니까 나의 인사를 접수했다는 표시로 고개를 한번 까딱하더니 돌아선다.
모임 내내 주최측과 시끄럽게 몰려 다니기에 혹시나 학식이나 재능으로 배울 게 많으신 분인가 싶어 ‘이 모임과 관련이 되신 분인가요?’ 했더니 ‘네. 관련이 많죠’하더니 아예 달아나 버린다. 이유는 분명 두가지 중의 하나다. 돈도 없는 판에 돈 꿔달라고 치근댈까봐. 아니면 눈부신 나의 미모에 그 당장 정신이 나갔거나.
아무튼 죄송했다. 말 섞기 싫다는데 말걸어서. 이런 저런 사람들이 섞인 한국사람들의 파티에 가면 어색한 경우가 많다. 전부 기싸움하는 것처럼 노려보고 먼저 이야기를 걸면 찌질한 사람인 줄 알고 ‘말걸지 마시오’ 하는 표정으로 뻣뻣이 서있다. 그러다 가깝고 싶은 이가 나타나면 반색을 하며 그 자리에서 네편 내편을 확실하게 갈라준다. 이 세상에 올 때 아는 사람 연락처 들고 나온 이가 있는걸까? 무례한 것과 잘난 것은 분명 동의어가 아니건만.
역시 손자 책에 읽은 이야기.
어미새가 잠깐 출타한 순간에 알에서 나온 아기 새는 뒤뚱뒤뚱 걸어다니며 만나는 이마다 붙들고 당신이 내 엄마인가요? 하고 묻고 다닌다. 그렇다. 우리는 엄마가 옆에서 품고 안아 키워주며 자신이 아가의 엄마라는 걸 인지시켜주었기 때문에 엄마를 알아보고 가족을 알아본다. 젊었을 때는 별표 단 무리들이 근사한 건 줄 알고 손가락 물고 바라보기도 했었다. 그러나 부르시는 그 당장에 황황히 떠나야함을 아는 나이에 와서는 사람이 주는 훈장은 그저 훈장일 뿐이란 걸 알아야 한다.
죽는 순간 유명했으면 뭐하고 성공했으면 뭐하며 재물을 많이 갖고 있으면 뭐하나. 누구에게 보여주려 하는 일이 아닌 것, 자신이 정말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면서 서로를 정말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웃과 말통하는 친구에 둘러싸여 알차고 따뜻하게사는 것. 그것 이외에 무엇이 더 필요한 걸까. 남을 따돌리며 그순간 우월감을 느끼는 건 참으로 유치한 짓이다. 인간의 조건은 학벌이나 명예나 성취가 아니다. 학벌이 끝내주는 이들 중에도 말귀못알아 듣는 맹꽁이가 있는 가하면 대단한 철학자의 작품 하나 읽어 본 일이 없는 이 중에도 정말 인간적을 넓고 깊으며 재미있기까지 한 인간이 제법 많다. 권위를 바라는가, 서로를 알고 이해하며 품어주고 함께 성장해 가기를 원하는가. 삶이냐 죽음이냐 묻던 햄릿의 질문도 다른 말로 하면 결국은 이 문제다.
유치원 때 배웠어야 하는 가장 단순하고도 근원적인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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