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국의 모 TV방송 예능 프로그램 제작 발표회장에서 원로 남자가수와 원로 여배우가 언쟁을 벌이다 급기야 가수가 하차의사를 밝히며 자리를 박차고 나가는 해프닝이 있었다. 여배우가 남자가수와 관련해 던진, 조금은 과격한 발언이 발단이 된 것인데 가수는 “면전에서 이런 모욕적인 말은 처음 듣는다”고 대노하며 발표회장을 떠났다. 사태는 제작진과 다른 출연진의 간곡한 만류와 설득으로 겨우 수습이 됐다.
‘나를 돌아봐’라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타인을 통해 자신을 되돌아보자는 ‘역지사지’ 컨셉으로 기획된 것이다.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기도 전에 티격태격하고 싸우는 출연자들을 보며 우스웠다. 딱 자기네들에게 어울리는 프로그램을 골랐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온라인 게시판에도 ‘먼저 너를 돌아봐’라는 내용의 비판이 줄을 이었다.
‘역지사지’는 다른 이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것을 말한다. 역지사지 할 수 있는 능력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들어 준다. 입장을 바꿔 놓고 볼 수 있다는 것은 공감의 원천이 되고 공존의 지혜가 된다. 이런 능력을 통해 인간들은 사회와 문화를 만들어 올 수 있었고 질서를 유지할 수 있었다.
만약 우리에게 역지사지할 수 있는 능력이 없었더라면 동물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배려와 양보, 입장 바꿔보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힘의 논리와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세계가 될 수밖에 없다.
좋은 사회, 좋은 인간관계를 위해서는 공감과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것을 인간들은 일찍이 깨달았다. 그래서 고대 문헌들 속에서도 이것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가르침들이 넘쳐난다. 역지사지라는 말 자체가 2,000여년 전 쓰여진 ‘맹자’에 나오는 것 아니던가.
하지만 무엇이 인간을 이런 존재로 만드는지에 관한 설득력 있는 과학적 설명은 없었다. 최초로 공감과 역지사지의 과학적 원리를 규명한 것은 1990년대 이탈리아 파르마 대학의 신경과학 연구팀이었다. 이들은 원숭이의 행동과 뇌의 관계를 연구하다 원숭이가 어떤 행동을 하지 않고 보기만 할 때도 뇌의 일부 영역이 활성화되는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남이 하는 행동을 보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그것을 할 때와 같은 뇌의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
연구진은 이 세포를 ‘거울 뉴런’(mirror neurons)이라 불렀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원숭이 보다 더 넓은 영역에 거울 뉴런이 존재하고 있음을 밝혀냈다. 왜 우리가 다른 동물들은 물론 원숭이보다도 훨씬 더 사회적이고 다른 이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데 뛰어난 지가 밝혀진 것이다. 이 때문에 거울 뉴런을 ‘DNA 이후 최고의 발견’으로 평가하기까지 한다.
하지만 우리 뇌 속에 거울 뉴런이 존재한다고 해서 모든 이들의 뉴런 기능이 똑같은 것은 아니다. 아이큐가 천차만별이듯 어떤 이들은 이것이 잘 발달돼 있는 반면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자폐증은 이것이 크게 결핍돼 있는 상태이다. 자폐증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이들의 처지와 입장을 헤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이런 사람들이 돈과 권력을 쥐게 되면 많은 이들이 힘들어진다.
신경학자들은 거울 뉴런이 선천적이기도 하지만 후천적 영향도 많이 받는다고 지적한다. 다양한 것들이 공존하고 배려의 문화가 지배적인 환경 속에서 성장하면 거울 뉴런은 좋은 방향으로 활성화된다. 반면 획일적 사회에서는 이것이 잘 발달하지 못한다.
거울 뉴런의 활성도가 선천적으로만 결정되지 않는다니 정말 다행이다. 우리가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 공감능력을 높여나갈 수 있다는 얘기니 말이다. 자신을 머릿속 거울에 비춰보는 일은 이런 노력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머릿속 거울 이야기를 하다 보니 문득 몇 년 전 발표된 히스패닉 종업원들의 한인 업주들에 대한 의식조사 결과가 떠오른다. 이 조사에서 히스패닉 종업원들의 64%는 한인업주들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며 자신들은 물론 다른 아시아계보다도 못한 것으로 여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한인들은 전반적으로 히스패닉들을 우습게 여기는 경향이 있지만 그들 눈에 한인들 역시 비슷하게 비춰지고 있었던 것이다. 역지사지가 시급한 관계가 아닐 수 없다.
나를 돌아보는 것은 머릿속 거울에 자신을 비춰보는 일이다. 그러면 다른 이들의 눈에 비춰지고 있을 내 형상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것들은 대부분 불완전하고 미숙한, 그리고 때로는 감정적이고 독선적인 모습일 것이다. 이것을 깨닫는 데서 타인에 대한 이해와 공감은 자라기 시작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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