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국보 1호는 숭례문(남대문)이다. 다보탑(20호), 석굴암(24호), 첨성대(31호), 해인사 팔만대장경판(32호), 훈민정음 해례본(70호)도 국보다. 허준의 동의보감은 한 달 전인 지난 6월22일 마지막 319호로 지정됐다. 한국정부는 수많은 유형 문화재 가운데 인류 문화적으로 가치가 큰 것, 유례가 드문 것, 독특하고 희귀한 것 등을 선별해 국보로 지정한다.나라마다 자랑하는 국보가 있다. 대국인 미국은 국보도 엄청 많다. 최근 ‘퍼레이드’ 잡지가 미국의 이색적인 국보 17개를 소개했다. 유명 다큐멘터리 제작자인 켄 번이 추천한 이들 국보는 선정기준이 한국과는 달라서 ‘미국인들을 단합시키고, 미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기게 해주며 미국을 다른 나라들과 차별화시켜주는 인물과 사물과 장소’ 중에서 골랐다.
한국 국보들과 달리 순서가 없지만 당연히 독립선언문이 꼽혔다. 239년 전 총 1,340개 단어로 쓰인 이 선언문의 핵심은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생명, 자유, 행복추구 등 양도할 수 없는 권리를 부여받았다”는 내용이다. 이 선언문의 정신은 미국독립뿐만 아니라 그 후 노예해방, 여성투표권 쟁취를 거쳐 최근 동성결혼 합법화까지도 원동력이 됐다.
세계최초로 지정된 국립공원들도 당연히 꼽혔다. 자본주의 왕국인 미국이 산자수명한 ‘금싸라기 땅’ 8만4,000에이커를 부자들에게 팔지 않고 한 세기 전(1916년)부터 보물 땅으로 챙겨왔다. 59개 국립공원 외에 125개 국립사적지도 있다. 이들 중엔 샤이엔-아라파호 인디언 부족이 거의 몰살된 샌드 크릭(콜로라도주) 등 수치스런 역사의 현장들도 포함됐다.
국보급 인물 중에선 조지 워싱턴과 아브라함 링컨을 제치고 마틴 루터 킹 목사가 꼽혔다. “나는 꿈을 갖고 있다”고 외치며 그가 주도한 무저항 인권운동은 노예해방 이후 미국사회를 갈라놨던 인종차별의 벽을 봇물처럼 허물었다. 오늘날 한인 이민자들이 교육과 취업과 사회활동에서 백인들과 동등한 대우를 받는 것은(적어도 표면적으로) 킹 목사 덕분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장소’로 불리는 디즈니랜드 왕국을 창설한 월트 디즈니도 국보로 꼽혔다. 그가 1955년 LA 인근 애너하임에 개설한 1호 디즈니랜드는 지금까지 7억명의 관람객을 유치했다. 연예계에선 쟁쟁한 헐리웃 스타들을 제치고 1949년 이후 지금까지 70여년간 안방극장 관객을 사로잡으며 에미상을 7차례 수상한 베티 화이트(93)가 꼽혔다.
헐리웃 뒷산의 초대형 ‘HOLLYWOOD’ 사인판도 국보로 대접 받았다. 원래 주택개발업자들이 1923년 ‘HOLLYWOODLAND’라는 상호로 세웠던 것을 LA 시당국이 1949년 ‘LAND’를 떼버리고 영화산업 메카를 상징하는 현재의 45피트 사인판으로 바꿨다. 가수 중에선 통산 음반 판매량이 1억매를 돌파한 맹인 흑인 가수 겸 작곡가 스티비 원더(65)가 꼽혔다.
반전정서의 표상으로 전몰장병 5만8,000여명의 이름이 새겨진 월남전 추모비도, 서부개척사를 관통하는 정의용맹의 ‘카우보이 정신’도, 기계화 농업을 선도한 ‘존 디어’ 표 트랙터도, 미국 주택의 특징인 문전 현관(포치)도, 미국이 개발한 ‘포테이토 칩’ 간식도, 100년째 미국인들의 사랑을 받아오는 척 테일러의 ‘콘버스’ 브랜드 운동화도 국보 반열에 올랐다.
무형문화재 중에선 60년 전 미국농촌 주민들의 애환을 그린 로라 잉골스 와일더의 소설 ‘초원 위의 작은 집’과 지난 주 본 칼럼에서 소개한 ‘앵무새 죽이기’에서 주위 사람들의 편견을 극복하고 정의의 주관을 지킨 주인공 소녀 스카웃 핀치가 꼽혔다. 기쁜 일이 있을 때 팔을 올려 상대방과 손바닥을 마주치는 ‘하이 화이브’도 맨 마지막으로 미국 국보에 끼었다.
한인들의 국보는 없을까? 이승만, 안창호 같은 인물이 있지만 ‘풀타임’ 이민자는 아니었다. 이민 100주년이었던 지난 2003년 각계 공로자 10인이 선정됐었지만 국보급엔 못 미친다. ‘우정의 종각’이 근사하긴 해도 한인들이 아닌 LA 시정부 재산이다. 아무래도 한인들의 국보는 아직은 성실근면, 백절불굴의 생활력과 뜨거운 자녀교육열 등 무형자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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