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덮쳤다. 대기근이 예상된다. 마실 물조차 부족해 어린이들이 심한 설사로 쓰러지고 있다. 유엔아동기금 등 국제구호기구가 나선다. 북한발로 전해지는 뉴스다.
마치 연중행사 같다. 비만 왔다 하면 대홍수다. 비가 안 왔다 하면 대 가뭄이고. 국제사회에 구걸의 손을 내민다. 당연하다는 듯이. 결국 식량이, 원조물자가 답지한다. 이게 이제는 북한에서 ‘뉴 노멀’(new normal)이라도 된 것 같다.
하늘이 노해서 북한 땅에만 재앙을 내리고 있는 것일까. 그게 아니다. 인재(人災)다. 90년대 중반 대기근으로 인구의 10분의 1 정도가 굶어죽는 참사를 겪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력갱생(自力更生)이란 북한의 정책은 변함이 없다. 그 정책이 불러온 대형 인재인 것이다.
식량이 모자란다. 그러면 식량을 수입한다. 정상적 국가라면 당연한 조치다. 북한에서는 안 통한다. 자력갱생이란 수령의 영도를 저버리는 행위이므로.
1400명에 가깝다. 2000년 이후 공개처형 당한 북한주민 수다. 먹고 살기 어려워 범죄를 저지른 민초(民草)에게만 국한 된 게 아니다. 김정은의 고모부인 장성택이 공개 처형됐다. 최근에는 인민무력부장 현영철도 반당, 반혁명분자로 몰려 같은 운명을 맞았다.
북한 체제를 지탱하는 당(黨)과 군(軍)과 정(政)의 고위간부들이 잇달아 처형된다. 그 숫자가 김정은 시대를 맞아 70명이 넘는다. 그 뿐이 아니다. 자라 농장공장장도 처형됐다.
툭하면 체포된다. 그리고 공개 처형된다. 이 또한 북한에서는 새로운 정상, ‘뉴 노멀’이 되어가고 있다. 이 ‘뉴 노멀’이 지배하는 북한 사회. 무엇을 말해주고 있나.
“북한체제의 생존 요소는 세 가지로 압축된다. 하나는 공포를 통한 주민 장악능력이다. 다른 하나는 경제자원접근 능력이다. 또 다른 요소는 핵무기 보유다.” 애틀랜틱 카운슬의 제이미 메출의 지적이다.
이중 체제 지탱에 있어 가장 핵심적 요소는 공포를 통한 주민장악능력이다. ‘까부수고, 불태우고, 짓뭉갠다’-. 이른바 반당(反黨)분자에게 내려지는 처벌이다. 최대로 공포감을 조성하는 거다. 그래서 혹독하기 그지없다. 전 세계가 경악할 정도다.
그런데 그 ‘공포 통치’전선에서 뭔가 이상이 감지된다. 닥치는 대로 처형한다는 것. 이는 뒤집어 말하면 수령의 통치에 대한 이너서클 내 반발이 여간 심상치 않은 게 아니라는 이야기다.
“김정은은 중증의 불안 콤플렉스 증세를 보이는 것 같다. 그래서 측근조차 믿지 못 하는 것 아닐까.” 서방관측통들의 분석이다. 잇단 고위간부 처형은 뭔가 심각한 내부 문제를 숨기려는 마스크로 보여 진다는 것이다.
배급제가 붕괴됐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것은 장마당 세대다. 뭐 새로울 것은 없다. 그렇지만 이 역시 북한 사회가 보이고 있는 또 다른 ‘뉴 노멀’현상이다. 다른 말이 아니다. 경제가 엉망이다. 체제 지탱의 또 다른 요소, 경제자원접근 능력을 진작 상실했다는 이야기다.
회생 방안은 그러면 없는 것인가. 있다. 개혁, 개방이다. 그러나 안 된다. 외부 정보가 유입된다. 그러면 수령유일주의가 무너지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핵과 미사일 개발에 ‘올인’하고 있는 것 같다. 새로운 헌법에 핵무기 보유국가임을 명시했다. 그리고 중국과의 관계를 희생시켜가면서 핵무기 개발에 혈안이 돼 있다. 아버지 김정일 보다 더 핵에 매달리고 있는 것 같다.” 외부 관측통들의 하나같은 지적이다.
왜. 오직 핵만이 체제유지를, 그리고 본인의 권좌 유지의 방편이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핵탄두의 소형화에, 미사일 개발에 모든 걸 걸었다는 분석이다. 과연 그럴까.
‘강대국 간의 힘의 관계’ 또는 지정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 반대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게 애틀랜틱 카운슬의 메출의 지적이다.
북한의 핵무기완성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불러올 수 있다. 그 사태는 중국으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때문에 중국의 심한 반발이 예상된다는 거다. 게다가 이란 핵 타결과 함께 국제사회의 압력은 더 거세져 북한은 고립무원의 상황에 빠져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북한의 최대 목표는 수령유일주의 체제유지다. 그 정책목표에 가장 효과적인 핵 정책은 일종의 ‘깜깜이’작전이다. 핵무기를 머지않아 완성할 수 있다는 인상만 주는 것이다. 그 경계를 넘어 지역안보에 심각한 위협이 될 때 북한 체제는 오히려 붕괴의 운명을 맞을 수도 있다.”싱크탱크 스트랫포의 분석이다. 핵과 미사일을 겁 없이 휘둘러 대는 소년독재자를 주변강국들은 내버려 두지 않을 수 있다는 이야기다.
‘뉴 노멀’의 북한의 앞날 기상도는 그러면…. “김정은이 측근에 의해 암살되고 체제가 무너져도 중국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국경선이 무너지고 2백만 가까운 난민이 몰려드는 상황을 중국은 체념적으로 받아들일 채비가 돼 있는 것 같다.” 로버트 카플란의 말이다.
또 탈북자 뉴스다. 김정은의 공포정치로부터 북한의 고위층 망명이 잇달고 있는 것이다. 당의 고급 간부가, 외교관이, 군 장성이. “오늘날 북한의 광기는 그 체제가 최종단계(endgame)에 근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누가 한 말이던가.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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