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전에 패티 페이지가 부른 팝송 ‘Mockingbird Hill’이 히트했다. 로렌스 웰크 악단의 경쾌한 연주곡도 매혹적이었다. 한국에선 ‘앵무새 우는 언덕’으로 번역됐지만 막킹버드는 관상조인 앵무새와는 거리가 멀다. 미국 전역에 서식하는 개똥지빠귀 과의 작은 새로 끊임없이 지저귄다. 다른 새들의 소리를 잘 흉내 내 막킹버드(입내 새)라는 이름이 붙었다.
요즘 지구촌 사람들의 입에 회자되고 있는 하퍼 리의 베스트셀러 ‘막킹버드 죽이기(To Kill A Mockingbird)’의 한글 번역서 제목이 ‘앵무새 죽이기’인 것 역시 엉뚱하다. 미국의 국민소설이자 고교생들의 필독서 중 필독서인 이 소설은 인종차별 희생자인 흑인 톰 로빈슨을 작지만 고운 노래로 세상을 즐겁게 해줘 싫어할 이유가 없는 막킹버드에 비유한다.
대공황 시절 앨라배마가 무대인 이 소설의 주인공은 정의감에 불타는 국선 변호사 애티커스 핀치(핀치
역시 새 이름)이다. 그는 백인여성을 강간한 혐의로 기소된 흑인 로빈슨이 무죄임을 확신하지만 마을사람들로부터 ‘검둥이 비호자’라며 왕따 당한다. 그의 응원군은 어린 아들 젬, 딸 스카웃, 아이들 친구 딜 및 이웃집 은둔자 아서 ‘부’ 래들리 뿐이다.
애티커스는 평소 품행 나쁜 백인여자가 먼저 로빈슨에게 꼬리를 흔들었다가 술주정뱅이 아버지 밥 이웰에게 들켜 떡이 되도록 얻어맞았다는 확실한 증거를 대며 로빈슨이 그 부녀의 모함으로 강간죄를 뒤집어썼다고 변호했지만, 백인 배심은 로빈슨에게 만장일치 유죄를 평결한다. 로빈슨은 교도소를 탈출하려다가 총격을 받고 막킹버드처럼 속절없이 죽는다.
재판에선 이겼지만 애티커스에게 망신당한 이웰이 복수하기 위해 할로윈 파티에서 밤늦게 돌아오는 젬과 스카웃을 덮쳐 젬의 팔을 부러뜨린다. 그때 래들리가 나타나 대신 싸워주고 이웰은 제 칼 위에 엎어져 죽는다. 처음으로 래들리를 대면한 스카웃은 생명의 은인인 그를 집까지 부축해주고 오면서 막킹버드 같은 그를 평소 유령 대하듯 했음을 후회한다.
꼭 55년 전인 1960년 7월 발간된 이 소설은 초판만 200만부 이상 찍었고 지금까지 3,000만부 넘게 팔렸다. 영국의 사서들은 2006년 발표한 ‘죽기 전에 꼭 읽어야할 책’ 리스트에서 이 소설을 성경보다 앞서 올렸다. 저자 하퍼 리는 단 하나뿐인 이 소설로 퓰리처상을 받았고, 그레고리 펙은 2년 후 만들어진 영화에서 애티커스 역으로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이 소설이 요즘 다시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따로 있다. 하퍼 리의 유일한 작품인 이 소설의 속편이 지난 14일 출간됐기 때문이다.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Go Set A Watchman)’라는 제목의 이 속편은 전편 출간 후 무려 55년만에 나온데다가 정의의 투사인 애티커스가 뜻밖에 KKK(백인 우월주의단체)의 회원이 돼 있는 등 내용이 전편과 너무 달라 충격적이다.
하지만 사실은 전후편 순서가 바뀌었다. 하퍼 리는 1950년대 중반 ‘파수꾼…’을 먼저 썼다. 성인이 돼 뉴욕에서 사는 스카웃이 고향 앨라배마로 돌아와 노인이 된 아버지를 만나는 얘기다. 하지만 저자는 출판사로부터 8세 스카웃의 눈으로 본 아버지의 얘기로 고쳐 쓰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를 받고 완전히 새로 썼다. 그것이 ‘막킹버드 죽이기’로 먼저 출판됐다.
애티커스는 전편에서 “남을 알려면 그의 신발을 신고 걸어봐야 한다. 나는 흑인도, 폭력조직배도 사랑하려고 최선을 다 한다”고 말한다. 속편에서는 72세인 그가 인종차별주의자가 돼 “네 아이들이 검둥이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다니는 게 좋냐”고 스카웃에게 묻는다. 이 책이 나오기 직전인 1954년 연방대법원은 공립학고 흑백분리가 위헌이라고 판결했었다.
하퍼 할머니(89)는 이 소설의 제목을 구약성경에서 땄다. 선지자 이사야가 “가서 파수꾼을 세워라”는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다며 유대민족을 포로로 잡아간 바빌론의 패망을 예언한다(사: 21-6). 저자가 자기 고향을 바빌론에 비유한 듯하다. 반세기가 지난 요즘도 전국에서 인종간 총격사건이 잇따른다. 파수꾼을 세워야 할 곳은 그녀의 고향만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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