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정기 건강검진을 받았다.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하지만 20여년 교분이 있는 주치의는 여러 가지 조언을 했다. 나이 들면서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건강문제 예방에 이제는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운동과 건강한 식생활은 기본. 거기에 더해 보충제 복용을 추천했다. 비타민 D와 E 그리고 칼슘 보충제들, 면역력 강화를 위한 유산균 보충제, 여성호르몬 보충제 등.
“약을 한 움큼씩 먹다니 … 그렇게까지 하면서 오래 살아야 하느냐”고 웃으며 물으니 동년배인 주치의는 정색을 하며 정정을 했다.
“오래 살자는 게 아니라, 오래 살아야 되니 대비를 해야 되지요.”보통 80대, 잘하면 90대까지 사는 게 지금 50~60대의 현실이다. 장수는 희망이 아니라 숙명이다. 그러니 어느 나이를 살든 그 나이로서 활기차게 살아야 하는 문제가 우리 앞에 숙제로 놓여 있다는 것이다. 젊어서는 별 차이가 없지만 80대, 90대가 되면 건강을 관리한 사람과 안한 사람의 차이는 크다고 그는 말했다.
‘노년’이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삶과 죽음을 그저 자연으로 받아들인 장자는 태어나서 수고하며 살다가 늙으면 더 이상 수고를 안 해도 되니 좋다고 했다. “(자연이) 나를 늙게 하여 편안하게 하고, 죽게 하여 쉬게 한다”며 늙음에도 죽음에도 초연했다.
20세기까지만 해도 마음을 좀 비우면 장자처럼 늙음을 맞을 수가 있었다. 은퇴하고 10년 정도 살면 ‘쉼’의 시간이니 편안하게 지내다 보면 노년은 끝났다.
기대수명이 길어진 지금은 그저 편안해 하기에 그 기간이 너무 길다. 지금 60세인 사람이 90세까지 산다면 앞으로 30년이다. 30년은 아이가 태어나서 초중고 대학교 마치고 직장 잡고 결혼까지 할 시간. 할 일들이 몇 년 단위로 빈틈없이 짜여 있다. 그 많은 일을 할 세월을 ‘수고’와 ‘쉼’의 중간 정거장 정도로 여기며 계획 없이 맞는다면 지루함이 하해와 같이 밀려들어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목표, 꿈, 도전, 성취 … 같은 단어들이 노년의 시간 중에도 필요하다. 노년에 대한 설계이다.
노년에는 어떤 꿈을 가질 수 있을까. 먹고 사느라 뒤로 밀쳐놓았던 어떤 일, 그래서 평생 가슴에 응어리로 남아있던 어떤 일을 생의 마지막에 실현하는 것만큼 좋은 꿈도 없겠다.
남가주 산타 클라리타에 사는 도리사 대니얼스라는 노인은 대학에 못 간 것이 평생의 한이었다. 고교 졸업 후 직장 일을 하며 대학 입학을 계획하던 중 교회에서 한 남자를 만나 결혼하면서 ‘대학’은 잊혀진 꿈이 되었다. 할머니는 아들들을 엔지니어로 변호사로 잘 키우며 열심히 살았지만 가슴 한구석이 늘 허전했다. 도자기 공예, 액세서리 만들기 등 취미활동을 해보아도 얼마 지나면 재미가 없었다.
“이렇게 아무 것도 안하느니, 공부를 시작하자” 결심한 것이 지난 2009년, 그의 나이 93세 때였다. 목표는 100살 생일 전에 학위를 따는 것. 지난달 5일 이 흑인 할머니는 99살에 초급대학 졸업장을 받음으로써 꿈을 실현하고 목표를 달성했다.
학위취득 최고령 기록을 가진 사람은 캔사스의 놀라 옥스라는 노인이다. 1911년생인 이 할머니도 결혼으로 학업을 중단한 후 늘 아쉬움이 있었다. 자녀들이 성인이 되고 1972년 남편이 세상을 떠나자 그는 40여년 만에 다시 대학 강의실을 찾았다. 2007년 봄 95세에 학사학위를 취득한 놀라 할머니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대학원에 입학해 98세에 석사학위를 받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는 100세부터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여기 저기 초청받아 강연까지 하느라 할머니는 가장 분주한 90대 그리고 100대를 살고 있다.
“가만히 앉아만 있지 말고 뭔가 하라. 뭔가 새로운 일을 하라”는 것이 놀라 할머니가 노년층에 주는 충고이다.
노년의 삶에 활기를 불어넣는 비결은 성취할 뭔가를 갖는 것이라고 한다. 달성할 목표, 이뤄야 할 꿈이 있다면 노년의 날들이 젊은 날들과 다를 수 없다. 목표점을 향해 달려가는 동안 난관에 부딪치고 도전하고 극복하는 과정들이 팽팽한 긴장감으로 삶에 생기를 준다. 99세의 도리사 할머니는 대학생으로 사는 동안 뇌일혈로 두 번 쓰러지고 한때 시력을 잃기도 했지만 이겨냈다. 일어나서 할 일이 있기 때문이었다.
“이 나이에 꿈이라니?” “그 나이에 뭘 하겠다고 공부를 하나?” 같은 말은 장수시대에 맞지 않다. 노년은 건물로 치면 잠시 거치는 야영텐트가 아니라 번듯한 주택이다. 설계가 필요하다. 90세에 돌아보면 60세는 얼마나 싱그러운 나이일 것인가. 30년은 얼마나 긴 세월일 것인가. 남은 생애 중 가장 젊은 오늘, 푸르른 설계를 시작하자.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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