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성경 공부 시간에 ‘내 생애의 전성기는 과연 언제였었나?’라는 질문을 놓고 토론을 한 적이 있다.
각자의 답은 다양하게 나왔다 .대학 시절 이십대가 가장 좋았다는 대답에서부터 가장 많은 답이 사오십대였다. 나 혼자만 지금인 칠십대라고 말했다.
지난 수십년간 대학 교수로 또는 작가로 많은 칼럼을 써온 어느 철학자는 자신의 인생은 육십 오세부터가 가장 살만 했다고 고백한 글을 근래에 읽은 기억이 있다. 그분은 현재 구십세가 넘었는데도 강의와 글을 쓰는 왕성한 활동을 해서 주위로 부터 그렇게 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분은 아직도 몸을 많이 움직이고 늘 운동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고 고백했다. 내 경우에 칠십대인 지금이 가장 전성기라고 말한 것은 현재만큼 편안한 때가 없었기 때문이다 .또 지금만큼 바쁘게 살 때도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십대가 즐거웠던 것은 그때는 젊음의 찬란한 꿈이 있었고, 아름다운 외모가 있었고, 이 세상에 겁나는게 없던 도도한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삼십대는 이미 이혼을 한번 했고, 두 아이들을 데리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느냐의 기로에 있어서 많은 날들을 방황과 좌절 후에 재혼을 했지만 미국에 와서 아이들과의 오랜 이별때문에 또 슬픔과 기다림으로 가슴앓이를 해야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사십대는 두 남매를 더 낳고 자리를 잡았지만, 네 아이들을 기르느라 그 시절도 만만치 않던 때였다.
오십대는 아이들이 대학으로 떠나고, 그때부터 다시 수십년만에 글을 쓰기 시작해서 신문에 고정 칼럼을 쓰고, 책도 출판하고 해서 사실 오랫만에 살만하다고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두 아이들이 대학을 나오고 우연히 한국을 방문한 것이 인연이 되어 둘이다 한국에서 삼년을 살게 되었기 때문에 덩달아 나도 한국을 자주 드나들게 되었고, 몸과 마음이 안정이 되지 않던 시절이다.
육십대는 남편이 은퇴를 하고, 생전 처음 많은 돈과 좋은 집과 아름다운 정원 등, 가질 것을 다 가지고도 어느날 부터인가 내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껴지기 시작했다. 나는 그 길로 짐을 싸들고 오랫동안 열망하던 귀향의 꿈을 이뤘고, 한국으로 나가서 삼년을 살고 돌아왔다. 한국에서의 삶은 남편이 영어도 가르치고 여행도 많이 다니고 정말 신나게 산 삼년이었다. 그 시절을 남편은 지금도 그리워 하고 있다.
얼마 전에 친구 덕에 샌프란시스코 데이비스홀에서 개최한 베토벤 교향악 5번과 라프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을 감상할 기회가 있었다. 베토벤 5번은 운명으로 너무도 유명한 곡이어서 새삼 말할 필요가 없지만, 라프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곡이어서 정말 감회가 깊었다.
샌프란시스코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그 음악을 들으며 나는 어느덧 옛날 거의 오십년 전으로 돌아갔다. 그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이 오고 춥던 시절이었다. 나는 일을 마친 후 내 작은 하숙방에 돌아와서 늘 라프마니노프의 피아노 2번을 들었다. 창 밖에선 소리없이 눈이 내리고 나는 그 조그만 창을 통해 눈이 오는 것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이 음악에 심취해서 내 외로움을,내 방황을,내 슬픔을 다스리며 위안을 받았다.
그 시절 가슴 찢어질듯한 아픔에 비하면 지금의 나는 얼마나 편안한가, 얼마나 행복한가. 나는 어느듯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이 눈물은 슬픔이 아니고 기쁨의 눈물이었다. 감사의 눈물이었다. 마치 조그만 배 한척이 모진 풍랑과 비바람과 싸우다가 이제는 안전한 포구에 도착해서 평안히 쉬고 있는듯한 기분이었다.
전철을 타고 오면서 내 머리 속은 그 음악의 주제곡이 계속해서 흐르고 있었다. 지금 내 인생이 가장 전성기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내 주위에 모든 것이 조화된 기쁨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살고 있는 이곳 라스모어에 우리가 만든 교회가 있고, 성경 공부가 있고, 날마다 하루에도 몇번씩 만나는 친구들이 있고, 매일처럼 함께 운동하는 이웃들이 있고, 무엇보다 같은 곳을 바라보며 한곳을 향해 영적으로 전진하는 사랑하는 교회 식구들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랑하는 자식들, 손자손녀들이 다 잘 살고 있는 것이 더 없는 즐거움의 하나다.
"정말 우리들은 잘 살고 있어"하며 주위에 친구들은 늘 이렇게 말한다. 나는 아직도 운전하는 것이 즐겁고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을 불러서 맛있는 밥을 함께 해 먹는 것을 좋아한다. 내가 만든 요리를 그들이 잘 먹는 것을 보면 나는 행복해진다. 나이가 어떻든간에 새로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도전이다. 도전은 늘 새로운 흥분을 가져다 준다. 그 흥분은 또 엔돌핀을 만든다.
여름날 저녁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책 한권을 가지고 집 옆에 작은 정원에 나가 앉는다. 소나무로 뒤덮힌 곳이기 때문에 심호흡을 하면 페부에까지 좋은 공기로 가득차는 것 같다. 아! 무엇을 더 바랄 것인가. 이 아름다운 곳에서 노후를 살 수 있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나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도 하루를 잘 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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