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게이남성 친구와 룸메이트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충격을 받은 엄마가 있다. 엄마는 한인 1세, 딸은 2세이다. 전형적인 1세 엄마다운 반응에 딸은 설명을 했다. 여자들에게 최고의 친구는 게이 남자라는 것이다.
서로 성적으로 끌릴 일 없으니 한집에 살아도 부담이 없고, 여자 친구들 사이에서 있을 법한 질투나 시기심 생길 일도 없으며, 자상한데다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까지 해주니 이만한 친구/룸메이트가 없다는 것이다. 동성애자를 있는 그대로 볼뿐 거부감도 거리감도 없는 젊은 세대의 모습이다.
동성애 남성은 언제부터 여성의 ‘든든한 보디가드’ 역할을 해왔을까? 한국의 진화생물학자인 최재천 박사에 의하면 그 역사가 인류 역사만큼 오래되었을 수 있다. 적자가 생존하는 진화의 측면에서 보면 종의 번식에 기여하지 못하는 동성애자는 진즉에 멸종되었을 수 있다. 그런데도 동성애자가 꾸준히 진화해온 것은 ‘생물학계의 수수께끼’라고 최 박사는 전제한다.
그래서 여러 이론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동성애자 필요성’ 이론이다. 원시 수렵시대에 남자들이 사냥을 가려면 여자들을 보호하는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를 남기자니 ‘혹시라도 내 여자를 겁탈하면 어쩌나’ 불안하고, 모두 같이 떠나자니 이웃 지역 남자들이 쳐들어 올 위험이 있다. 이때 동성애자가 남아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의 모든 인간사회에는 동성애자들이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고 그는 한 대담에서 설명했다. 동성애도 자연의 한 부분, 진화의 산물이라는 해석이 된다.
항시 일정 비율로 존재해왔지만 오랜 세월 없는 듯 치부되어왔던 동성애자들이 마침내 존재를 드러내는 시대가 되었다. 20세기 유색인종과 여성에 초점이 맞춰졌던 인권운동은 21세기 성소수자 차별반대로 이어지면서 성과를 거두고 있다. 26일 연방대법원의 동성결혼 합헌 결정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굵직한 법적 장벽이 모두 무너졌다는 의미가 된다. 미국은 동성 간 결혼을 허용하는 21번째 국가가 되었다.
이번 결정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동성애 관련 미국인들의 시각이 급속히 우호적으로 바뀐 추세와 상관이 있다.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젊은 세대가 대거 성인인구로 편입된 것이 한 요인이 된다. 그 결과 2004년 매서추세츠를 선두로 불과 10년 만에 36개주와 워싱턴 DC가 동성결혼을 허용했다. 동성결혼은 사실상 인정되는 분위기였다.
반면 대법관 9명이 찬성 5 반대 4로 갈라진 것은 그대로 사회 분위기일 수 있다. 동성결혼에 대한 보수진영의 반대기류는 여전히 거세다. 한인사회에서는 더 더욱 반대 분위기가 강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도덕적 신념, 누구도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는 사랑의 정신 중에서 어느 편에 서야 맞는 것일까.
거의 50년 전인 1967년 6월에도 연방대법은 결혼과 관련한 역사적 결정을 내렸다. 백인과 흑인의 결혼을 금지한 주법은 위헌이라는 판결이었다. 원고 이름이 러빙(Loving)이어서 ‘사랑하는 부부(Loving couple)’ 케이스로 불리던 소송이다.
1958년 6월 버지니아의 백인청년 리처드 러빙(22)은 어릴 적 친구인 흑인여성 밀드레드 제터(17)와 결혼했다. 당시 버지니아 등 17개주는 흑백 간 결혼을 금지하고 있어서 워싱턴 D.C.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는 버지니아로 돌아와 신혼생활을 하던 중 누군가의 밀고로 러빙은 체포되어 1년 징역형을 받았다. 단, 버지니아를 떠나 25년 동안 돌아오지 않는다면 형 집행을 유예한다는 조건이었다. 당시 판사의 논리는 이러했다.
“전능하신 신은 백인, 흑인, 황인종 등을 창조하고 각기 다른 대륙에 살게 했다 .... 인종들을 떼어놓았다는 것은 인종 간 혼합이 신이 의도하는 바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백인과 유색인종의 결혼은 창조주의 뜻에 반한다는 논리이다. 버지니아에서 쫓겨난 러빙 부부는 워싱턴 D.C.의 친척들 곁으로 가서 살았다. 그리고는 5년 후 가족들을 방문하러 버지니아에 갔다가 다시 체포되었다. 흑인 민권운동이 한창이던 당시 러빙 부부가 로버트 케네디 법무장관에게 도움을 청하면서 ‘러빙 대 버지니아’ 소송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옳다고 혹은 틀리다고 확신하는 것들이 훗날 전혀 다르게 보일 수가 있다.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서 노예제도가 번창할 수 있었던 것은 교회가 성서를 근거로 이를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동성애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당장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누구나 사랑할 자유가 있고 결혼할 권리가 있다는 사실은 이제 인정해야 하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