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후반 대표적 미남배우였던 록 허드슨은 카메룬을 알고 있었을까? 카메룬, 콩고, 가봉 등의 중앙아프리카가 자신의 생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그는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할리웃 최고의 스타로 부와 명성을 누렸던 그가 열대 야생동물들을 사냥해 먹고 사는 아프리카 원주민들에 대해 어떤 사소한 인연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동성애자였던 록 허드슨은 1985년 59세에 에이즈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1980년 전후 에이즈라는 병이 세상에 처음 알려지고, 에이즈와 동성애자에 대한 사회의 시선이 극도로 차가웠던 때였다. 인상 좋고 평판 좋았던 대배우가 동성애자였다는 사실, 그가 에이즈에 걸려 죽었다는 사실은 미국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이었다. 그의 죽음이 에이즈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쉬쉬하던 에이즈 연구를 활성화했다는 평가가 있다.
에이즈는 바이러스라는 병원체를 널리 알린 첫 질병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HIV 바이러스이다. 야생동물에서 사람에게로 넘어와 병을 일으키는 인수공통전염병 중 가장 많은 생명을 앗아간 바이러스가 HIV이다. 1999년 앨라배마 대학 과학자들이 추적한 바에 의하면 시작은 침팬지의 한 부류였다. 감염된 침팬지의 피가 사람의 상처에 닿으면서 바이러스가 사람에게로 넘어왔다는 것이다.
카메룬 등 중앙아프리카 오지의 주민들은 식량이 따로 없다. 사냥을 나가서 원숭이 등 야생동물들을 잡아 끼니를 때운다. 사냥하고 고기를 잘라내는 과정에서 상처는 흔한 일. 록 허드슨의 이른 죽음은 중앙아프리카 오지 어느 사냥꾼과 침팬지의 우연한 접촉에서 잉태된 셈이다.
공간적으로 수만리 떨어진 사람들 사이를 바이러스가 연결시키는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 하등의 연관도 없다고 생각되던 사람들이 죽음의 원인을 공유하는 반갑지 않은 일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3년 전인 2012년 6월24일, 사우디에서 60세의 남성이 사망했다. 신장기능 마비로 인한 폐렴 합병증이 원인이었다. 당시 그의 죽음을 아는 사람은 대한민국에 한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들과 그 남성 사이에는 연결되는 끈이 있다. 메르스 바이러스이다. 메르스라는 병명이 만들어진 계기가 그의 죽음이었다.
그의 증상이 중증급성 호흡기증후군(SARS)과 유사하고 병원균이 둘 다 코로나바이러스라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중동호흡기증후군(MERS)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1990년대 이후 이름도 생소한 바이러스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1990대 말 조류 독감을 시작으로 니파 바이러스, 2000년대 초반의 사스, 인간광우병, 지난해 세계를 긴장시켰던 에볼라 바이러스 그리고 지금의 메르스. 공통점은 인수공통전염병이라는 사실이다.
삼림 속 야생동물들의 바이러스가 인간 사회에 갑자기 떼로 몰려들고 있다. 과학자들의 진단을 종합해보면 원인은 하나로 귀결된다. 바로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라이프스타일이다. 과도한 개발, 글로벌화, 도시화이다. 개발을 위해 삼림은 계속 파괴되고,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해 세계 어디든 수시로 오가며, 도시로 사람들이 몰려들어 어디를 가나 얼굴이 맞닿을 듯 복잡해진 현대인의 삶이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삼림 파괴로 야생동물들이 서식지를 잃어버려 인간 주거지 가까이로 나오면서 접촉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 시작이다. 에이즈 창궐 역시 밀림파괴와 상관이 있다. 인간과 침팬지의 접촉이 훨씬 빈번해 것이다. 바이러스에 감염되어도 과거에는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한 두사람 앓고 말았지만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HIV 바이러스가 처음 사람에게로 넘어온 시기를 과학자들은 20세기 초반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바이러스가 급격히 퍼지기 시작한 것은 비행기 여행이 보편화하면서였다. 그 결과 1980년대 에이즈라는 병이 전 지구를 공포로 몰아넣었다.
낙타라고는 구경도 못하는 한국에서 메르스가 기세를 떨치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거기에 복닥복닥 사람들이 붐비는 환경은 바이러스에 최적의 생존조건이 된다. 메르스를 초기에 잡았어야 하는 이유이다.
자연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졌다. 인간이 자연의 영역을 침범하고 파괴한 결과이다. 신종 바이러스는 자연이 주는 경고인지도 모른다. 아프리카 오지의 가난한 주민들로부터 할리웃의 스타까지 우리 모두는 연결된 존재라는 것, 어느 한구석의 매듭이 끊기면 언젠가는 전체가 망가지는 유기적 공동체라는 것 그리고 그 공동체 안에는 동물들도 포함된다는 경고이다. 더불어 같이 살라는 경고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 지난 13일자 칼럼의 ‘프로메테우스의 침대’는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로 바로 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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