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에서 대학까지 성적이 늘 얼치기였고 특히 수학시험에선 간신히 낙제점수를 면했던 나를 완전히 주눅 들게 만든 사람이 있었다. 1960년대 후반, 취직시험에서 거푸 미역국을 먹고 있던 나를 조롱하려는 듯 IQ 210의 천재소년 김웅용이 나타났다. 나는 5세까지 한글도 제대로 못 깨졌는데 그는 그 나이에 4개 국어를 말했고 미적분 문제를 풀었다고 했다.
올해 52세인 그는 4살 때 일본에서 지능검사를 받고 IQ 210을 기록해 1980년판 기네스북에 ‘세계최고 IQ 보유자’로 등재됐다. 내가 취직시험 상식문제집을 달달 외우고 있던 1967년 김웅용(당시 5살)은 일본 후지TV에 출연해 방청객들 앞에서 미적분 문제를 풀었고 일본어, 중국어, 독일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타갈로그어(필리핀)로 시도 읊었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청운의 꿈’을 품고 미국에 연수 온 1978년 김웅용은 반대로 8년간의 미국생활을 접고 귀국했다. 콜로라도 대 광업대학원에서 물리학 박사과정을 공부하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했지만 재미가 없었단다.
그가 또래들처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고교졸업 검정고시를 치르자 언론은 일제히 그를 ‘실패한 천재’로 매도했다.
한 TV뉴스는 검정고시장에 나온 김웅용을 ‘범인(凡人)이 돼 돌아온 신동(神童)’이라고 비아냥했다. 실제로 그의 행적에 아리송한 점이 없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는 일부 언론에 “아들을 미국에 보냈지만 적당한 천재 교육기관이 없어 바로 데려온 뒤 유학간 것처럼 해두고 아들의 정상발육과 교육을 위해 집에서 가르쳤다”며 미국에서의 그의 경력을 부인했다.
어찌 됐든 김웅용씨는 그 후 충북대학에 진학해 토목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때 국토환경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지만 지금은 충북개발공사의 평직원이다. 연세대 인지과학 교수인 부인과의 사이에 역시 평범한 두 아들을 두고 있다. 청주의 한 야간학교에서 중고교 과정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아줌마들에게 자원봉사 교사로 수학과 과학을 가르치기도 한다.
내가 잘 모르는 천재가 또 한명 있다. 얼마 전 한국 TV에서 본 송유근(19)이다. IQ가 김웅용보다는 한참 뒤지는 187이다. 초등학교 과정을 9개월에 마치고 중고교 과정을 독학으로 건너뛴 뒤 남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할 나이인 8세에 인하대에 입학해 물리학을 전공했다. 지금은 대전 과학기술 연합대학원 대학교에서 천문우주과학 분야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지난주 귀가 번쩍 뜨일 쾌보가 미주 한인사회는 물론 본국에까지 메아리쳤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신문사 특파원인 아빠를 따라 워싱턴DC에 유학 온 ‘수학천재 소녀’ 김정윤이 하버드대학과 스탠포드대학에 동시 합격했을 뿐 아니라 두 대학이 서로 데려가려고 하는 바람에 1~2학년은 스탠포드서, 3~4학년은 하버드서 나누어 공부하기로 결정됐다는 뉴스였다.
하지만 이 쾌보는 오보였다. 두 대학 모두 “그런 일이 없다”고 부인했다. 정말이라고 버티던 김양의 아버지도 결국 “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지난 주 사과했다. 그는 모두 자신의 잘못이라며 “그동안 아이가 얼마나 아팠는지 살피지 못하고 오히려 더 아프게 했음을 깊이 반성한다. 앞으로 아이를 치료하고 돌보는데 전력하면서 조용히 살겠다”고 말했다.
천재자녀를 갖고 싶고, 자랑하고 싶어하는 부모 마음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부모의 자랑이 자녀들에겐 독약이다. 그 자랑을 지속시키기 위해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김웅용씨도 “천재 딱지를 떼니까 너무나 행복하다”고 말했다. 한인 학생이 아이비리그에 합격하면 으레 대문짝만하게 보도하는 한인언론도 사실은 문제다. 그 역시 독약일 수 있다.
중학교도 못나온 멕시코 이민자의 아들이 올해 하버드와 예일을 포함한 전체 8개 아이비리그 대학을 비롯해 스탠포드와 주립대학인 UC어바인, 칼스테이트 풀러튼 등 총 11개 대학에 모조리 합격했다고 AP통신이 며칠 전 짧게 보도했다. LA 지역의 라티노 신문들은 얼마나 크게 보도했는지 모르겠다. 그가 한인이었다면 한국신문들은 모두 뒤집어졌을 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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