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무는듯하다. 그러나 이내 가고 만다. 그게 세월이다. 봄인가 싶었는데 벌써 6월이다. 이 6월이 그런데 그렇다. ‘6.10’, 6.25‘ 등으로 상징되는 역사의 무게 때문인지 항상 길게 느껴진다.
올해의 경우 6월은 아우성을 치며 달려온 것 같다. 그리고 유난히 더 길다는 느낌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 메르스 공포에 짓눌린 그 대한민국의 모습이 바다 건너로까지 여과 없이 전해지고 있어서 인지.
방역시스템이 무너졌다. 지하철이 한산하다. 학교가 폐쇄됐다. 경제가 흔들거린다. 정치가 스톱됐다. 외교마저 실종됐다.
보훈의 달이다. 이 6월이 오면 새삼 논쟁에 불을 지피는 게 대한민국의 존재이유(raison d´?tre’)를 밝히는 거대담론이다. 그 담론도 사라졌다. 오직 들리는 건 공포의 비명에, 아우성이다.
그리고 급기야 한미정상회담마저 취소되면서 외국 언론들은 메르스 공포로 마비된 대한민국을 주목하고 있다.
“질병은 때로 건강문제뿐만 아니라 정치문제도 야기 시킨다. 한국에서 번지고 있는 메르스가 그 경우다.” 이코노미스트의 보도다. “대한민국은 목하 두 가지 전쟁에 몰입해 있다. 그 하나는 질병과의 전쟁이다. 또 다른 하나는 공포와의 전쟁이다. 이 두 회전(會戰)에서 모두 악전고투, 들려오는 소식은 암담하다.” 계속되는 지적이다.
맨 얼굴이 드러났다고 할까. 메르스 기습과 함께 드러난, 201년 6월 시점의 대한민국 사회의 단면들. 그게 외국 언론에까지 가감 없이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줄 진작 알았다. 그렇지만 이번 사태를 통해 재차, 삼차 확인되고 있는 것은 한국 정부와 관료세계의 무능이다. 학습효과란 말이 있다. 그 말이 무색하다. 세월호 때 우왕좌왕하다 모든 걸 그르쳤다. 그 재판인 것이 메르스 기습 사태다.
‘무능한 정부가 메르스보다 더 무섭다’-. 작다면 작은 재난이다. 그 앞에서도 어쩔 줄을 모르다가 국가적 재앙으로 키우는 정부, 그 정부가 ‘공포스럽게’까지 느껴진다는 것이다.
광우병 사태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메르스 확진자 중 실제로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그러나 여전히 비과학적인 불안에 부화뇌동하기 쉬운 사회가 대한민국임을 다시 한 번 보여준 게 이번 메르스 기습사태다.
교육부는 덮어놓고 휴교를 권장했다. 그러나 방한한 세계보건기구(WHO)평가단은 그 부당성을 지적하고 수업재개를 권유했다. 무엇을 말하나. 공포와 싸우는 궁극적인 힘은 사실과 합리성에 대한 신뢰에서 온다. 이 점에서 대한민국은 후진성을 유감없이 보여준 셈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공포와 혼란을 조장했다는 점에서다.
온갖 음모론에 괴담이 난무한다. 그러면서 여론에 밀려 움직인다. 포퓰리즘에 휘둘리는 게 한국사회이고 한국정치다. 이것이 이번 사태에서 확인된 또 다른 병폐가 아닐까.
방문일정 나흘을 앞두고 미국과의 정상회담 취소를 발표했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53%가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대통령의 방미를 반대했다. 찬성은 39%였다. 그런 여론 앞에 갈팡질팡했다. 그리고는 6개월 동안 힘들여 추진해온 미국과의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이다.
여론에 밀렸다. 막연한 공포감에 사로잡혔다. 이러다가는 국정에 차질이 올 수 있다는.
미국과 일본은 신밀월시대를 열어가고 있다. 시진핑의 중국은 계속 팽창주의를 고수하고 있다. 게다가 북한은…. 이처럼 급변하고 있는 동북아 안보지형과 관련해 그 어느 때보다 미국과의 정상회담이 필요한 시기다. 그런데 ‘아니면 말고 식’으로 취소한 것이다.
뭐랄까 외교 포퓰리즘이라고 할까. 그게 한국외교임을 국제사회에 알린 셈이다. 그 대한민국을 미국은, 또 가상의 적대국들은 어떻게 보고 있을까.
이 모든 질문은 결국 한 곳으로 몰린다. 박근혜 대통령이다. 박 대통령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라를 이끌고 있는지 등의 질문이다. 임기 반이 지났다. 그러나 여전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맹방 간에 정상회담을 취소했다고 당장 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워싱턴은 임기 후반의 박 대통령의 진짜 의중이 무엇인지 알기를 원한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이란 게 한국 지도자들이 공공연히 하는 소리다. 그 말은 기회주의자 국가에 다름 아니란 소리로 들릴 수 있다. 한국이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혼란스럽기도 하다. 그러니 만약의 남중국해에서의 분쟁에서 한국이 어떤 원칙을 유지할 것인지도 관심사다. 에에 대한 한국대통령의 원칙과 소신을 알고 싶은 것이다.
그런데도 박 대통령은 말을 아낀다. 아니, 말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한다. 문제는 무엇을 뜻하는지 모호하게 들리는 것이다.
메르스 기습이 불러온 최대 피해는 무엇일까. 신뢰를 상실한 한국정부. 크게 틀리지 않은 이야기 같다. 그러나 그보다는 포퓰리즘에 휘둘린 외교가 더 정확한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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