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3일 간의 인사청문회가 맥없이 끝났다. 그에 대해 제기된 무수한 의혹들을 놓고 야당은 칼날 검증을 별렀지만 메르스라는 초대형 이슈에 청문회 자체가 묻혀버렸다. 게다가 요구받은 자료 제출은 미루거나 피하고, 질문에는 알맹이 없는 답변으로 일관한 총리 후보자의 청문회 대응전략도 먹혔다. 여당이 다수당인 현실에서 총리 후보자의 자질과는 상관없이 인준은 결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황 총리 후보자를 둘러싼 의혹은 ‘전관예우’에서부터 병역기피, 그리고 탈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듣도 보도 못한 피부질환으로 병역면제를 받았지만 정당성을 입증할 증거는 제시하지 않았다. 의혹을 제기한 측에 증명의 책임이 있으니 한 번 밝혀보라는 식이었다. 변호사 수임내역과 관련한 자료 공개도 늦추고 그나마 부실자료를 제출하는 데 그쳤다. 이는 그가 자신의 이익을 지키는 전술적 대응에 대단히 능한 인물임을 보여준다.
또 황 후보자의 편향된 종교관도 도마 위에 올랐다. 그는 사법시험 합격 후 신학교까지 다녔으며 현재 한 교회의 전도사이기도 하다. 그는 공직생활 중 기독교에 편향된 발언을 하고 자신의 책에 근본주의적 신앙관을 드러내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기도 했다. 무엇을 믿는가는 개인의 종교적 자유니 시비를 걸 생각이 없지만 최고위 공직자의 의식과 판단에 종교가 영향을 미친다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의혹들을 부정하는 황 후보자의 주장과 변명은 별 설득력이 없지만 어느 정도는 양보할 수 있다. 전관예우는 분명 일그러진 구태지만 오랫동안 당연시 되어 온 관행이었으니 황 후보자도 그 유혹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는 힘들었을지 모른다. 가려움증에 의한 병역면제 또한 100만명에 1명꼴로 거의 로토 당첨 확률이지만 황 후보자가 그 당사자가 되지 말란 법은 없으니 그렇다고 치자.
하지만 그가 자동차세 체납 등으로 차량을 다섯 차례나 압류 당한 바 있고 압류 당한 후에도 수년간 체납된 세금이나 과태료를 내지 않은 사실은 그냥 지나치기 힘들다. 의혹의 무게로 본다면 전관예우나 병역면제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황교안’이란 인물의 밑바탕에 대해서는 훨씬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인간에 대한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이뤄진다. 통상적으로는 다른 이들 앞에서 하는 말과 행동을 통해 평판을 형성한다. 공직자나 정치인들의 경우 대중은 연설이나 저술 등을 통해 그들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나 한 인간의 깊은 곳에 감춰져 있는 진정한 면모는 사소한 말과 행동을 통해 드러나는 경우가 훨씬 많다. 지나가듯 툭 던지는 말 한마디나 남들이 보지 않는 곳에서 하는 작은 행동 하나가 그 사람의 진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세금 납부는 시민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의무이다. 이것이 보통 시민들이 갖고 있는 의식이다. 그래서 고지서가 날아오면 무리를 해서라도 기일 내에 내려고 노력한다. 혹 체납통지서라도 받게 되면 불안감에 안절부절 못하기 일쑤다.
한 사회를 질서 있게 굴러가도록 해 주는 것은 시민들의 이런 강박에 가까운 의무감과 책임감이다. 그런데 황 후보자에게서는 이것을 찾아볼 수 없다. 자동차 세금 정도는 체납하고 과태료 통지는 무시해 버리면 그만이라는 교만과 특권의식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런 그가 공안검사로 일하면서 내내 입에 달고 산 것이 ‘국가질서’이다. 국가질서의 바탕은 사회질서이다. 황 후보자의 총리 자격을 논하기 전에 그의 시민 자격부터 따져 볼 필요가 있다. 가장 기본적인 사회질서조차 우습게 여기는 인물에게 ‘법과 국가질서를 엄중히 수호할 적임자’라는 평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좋은 총리’가 되기 전에 먼저 ‘좋은 시민’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궤변이다. ‘좋은 총리’는 고사하고 ‘평균적 시민’이라고 보기도 힘든 인물들이 권력을 가진 자리에 임명되는 그런 나라는 ‘좋은 나라’가 되기 힘들다. 정권의 무능은 국민들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하는 데서 비롯되며 그런 무능의 한 가운데는 이런 공직자들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