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는 지금 박수근 50주기 기념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한국 근대미술의 대표적 화가인 그의 작품들이 그가 살았던 서울 창신동 부근 DDP 전시장과 고향인 강원도 양구 박수근 미술관에서 전시되고 있다는 기사들을 읽었다. 직접 가볼 수 없으니 회고전 기사에 소개된 그림 사진들을 보며 그의 그림에 대한 기억들을 떠올린다.
소박한 사람들, 쓸쓸한 풍경들. 1950년대와 60년대 가난한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담은 그의 그림들을 보며 새삼 깨닫는 것은 소재의 평범함이다. 아낙들이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고, 우물에서 물을 긷고, 아이들이 골목에 모여놀고 … 그 시절을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매일 스쳐 지나갔을 광경들이다. 너무 평범해서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을 대상과 풍경들이 박수근이라는 화가의 내면으로 들어가 숙성되면서 50여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살아서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박수근은 평범함에서 가치를 찾던 화가였다. 예술에 대한 견해부터 평범했다. 밀레를 닮은 화가가 되고 싶었던 그에게 예술이란 거창한 게 아니었다.
인간의 선함과 진실함을 그리는 것이었다. 동네에서 늘 보는 지극히 평범한 할아버지, 할머니, 아낙, 아이들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 정감어린 이미지로 승화된 배경이다.
그의 그림은 대상을 단순화하고 평면화하면서 질박한 질감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한국 야산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돌, 화강암의 질감이다. 그의 그림들을 보면 두런두런 이야기 소리가 들리는 듯 정겨운 것은 소재나 질감 모두 우리에게는 너무나 평범해서 거리감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평범함이 갖는 힘이다. 박수근은 평범함을 소재로 비범한 이미지들을 끌어내는 데 성공했다.
평범함의 힘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어느 모임에서나 순간적으로 관심을 사로잡는 것은 비범한 사람, 잘난 사람들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는 눈에 띄지 않던 평범한 사람들의 존재감이 커지는 경우가 많다.
비범함이 톡 쏘는 콜라 같은 맛이라면 평범함은 뭉근한 숭늉 같은 맛. 전자가 일류 식당 요리라면 후자는 집밥이다. 미각을 자극하는 전자에 비해 후자는 맛이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오래 먹어도 물리지를 않는다. 평범함에는 숭늉 같고 집밥 같은 힘이 있다. 오래 가는 힘이다.
LA의 한인영화관에서 ‘악의 연대기’라는 영화를 상영 중이다. 주인공 손현주는 외모만 보면 배우 같지 않다. ‘배우’ 하면 탁월한 외모의 동의어쯤으로 여겨지는데, 손현주는 이웃집 아저씨같은 얼굴이다. 그런 평범한 외모로 그가 주연까지 할 정도면 연기력이 뛰어난 것은 물론이다. 그런데 그 탄탄한 연기력과 인기의 비결로 그는 자신의 ‘평범함’을 꼽는다. “평범함이야말로 지금까지 연기할 수 있게 해준 큰 힘”이라고 그는 말한다.
평범한 외모는 그에게 두가지 면에서 기여를 했다. 첫째는 연기력. 외모가 ‘장동건’이 아니다 보니 몇 배 더 열심히 연기에 매어달릴 수밖에 없었다. 얼굴이 평범한데 연기까지 엉성하면 그 날로 퇴출이기 때문이다. 둘째는 인기.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이 동네아저씨 같은 얼굴이면 오히려 설득력이 있어서 공감을 이끌어내는 힘이 크다고 한다. 평범한 얼굴로 비범한 배우가 된 비결이다.
평범한 대부분의 우리는 소수의 잘난 사람들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계속 작아지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역전이 가능하다.
평범함을 비범함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우선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것이다. 좋아하면 잘하고 싶어지고 잘하려면 계속 노력하게 된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사람을 이길 장사는 별로 없다.
다음은 ‘너 자신을 아는 것’이다. 지난 2012년 유럽에서 재미있는 논문이 발표되었다. 직원을 채용할 때 능력이 탁월한 사람보다 좀 떨어지는 평범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기업에 이익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3개국 학자들의 공동연구 결과를 보면 능력이 처지는 사람들은 스스로의부족함을 알기에 일할 기회를 준 기업에 빚진 느낌을 가지면서 업무에 최선을 다한다. 반면 능력이 특출한 사람은 채용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며 안일하게 일하는 경향이 있다. 자만이다. 인기 치솟던 주연급 배우가 일찌감치 도중하차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평범한 얼굴의 조연급 배우들은 장수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거북이 마침내 토끼를 이기는 평범한 이치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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