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토요일 아침 일찍 일어나 TV를 켜니 한국방송에서 1960~1970년대 한국을 추억하는 프로그램을 내보내고 있었다. 그날의 토픽은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 선수가 한국에 사상 첫 금메달을 안긴 이야기였다. 관계자들의 회고와 당시 영상은 양정모의 금메달이 얼마나 큰 감격을 국민들에게 선사했는지 생생히 증언한다. 아직도 노·장년층의 많은 이들이 몬트리올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던 1976년 여름의 그날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다.
양정모의 쾌거는 그의 개인적 영광에 머물지 않았다. 레슬링에서 첫 금메달이 나오자 전국의 수많은 아이들이 제 2의 양정모를 꿈꾸며 레슬링에 입문했다. 첫 금메달은 스포츠 열풍에 불을 붙였으며 결과적으로 한국 스포츠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올렸다. 한국이 몬트리올 다음으로 참가했던 1984년 LA 올핌픽에서는 모두 6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양정모 금메달의 가치는 이후 한국이 수확한 무수한 메달들의 그것과 똑같이 취급될 수 없다. 최초의 금메달은 한국선수들에게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 주었다. 막연하게 선수들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던 심리적 장벽을 허물어뜨린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의 올림픽 성적은 양정모 이전과 이후로 확연히 나뉘게 된다.
지난주 최초의 한인 LA 시의원이 탄생해 한인사회를 흥분시켰다. 솔직히 뚜껑을 열기 전까지 데이빗 류의 당선을 점치는 한인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데이빗 류는 보란 듯이 이런 회의적 시선을 잠재우며 ‘최초의 한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시의회에 입성하게 됐다. 그의 당선은 바위 같은 의지와 열정, 치밀한 전략, 그리고 약간의 행운과 우호적인 여건(모든 성공과 성취에는 이것이 어느 정도 뒷받침돼야 한다. 양정모는 맨 마지막 경기서 몽골의 국민영웅 오이도프에 패했지만 당시의 독특한 채점 방식 덕에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다)이 맞아 떨어지면 불가능해 보이던 것을 현실로 만들 수 있음을 실증했다.
영어에는 ‘첫 번째 펭귄’(the First Penguin)이라는 관용어가 있다. 첫 번째 펭귄은 불확실성과 위험이 가득한 거친 바다로 가장 먼저 뛰어내리는 펭귄을 뜻한다. 첫 번째 펭귄이 용감하게 뛰어내리면 머뭇거리던 다른 펭귄들도 비로소 뒤를 따라 바다로 뛰어든다. 보통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을 지칭하지만 성공과 성취, 그리고 전진이 전제되지 않으면 다음 펭귄들에게 용기를 주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첫 번째 펭귄은 용기 있게 뛰어들어 성공적으로 헤엄쳐 가는 펭귄이어야 한다.
한국 낭자들이 LPGA를 KLPGA로 만들어 버린 원동력의 근저에도 박세리의 투혼과 뛰어난 성취가 자리 잡고 있다. 1998년 박세리가 US오픈에서 보여준 맨발 투혼과 극적인 우승은 ‘세리 키즈’로 불리는 무수한 골프 꿈나무들에게 두고두고 자극이 됐다. 박세리의 도전과 성공이 없었더라면 한국 선수들의 LPGA 성적표도 크게 달라졌을 것이다.
요즘 한국의 프로야구 구장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의 발길이 부쩍 잦아졌다고 한다. 당초 부정적 평가와 우려 속에 한국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첫 야수 강정호가 기대 이상의 활약을 펼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강정호의 활약 덕에 한국 선수들에게는 열심히 뛰어야 할 또 하나의 동기가 생긴 것이다.
이처럼 첫 번째 펭귄들은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도전 바이러스를 확산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개인과 사회의 성장을 위한 밑거름이 된다. 특히 한인사회 같은 소수민족 커뮤니티는 첫 번째 펭귄들의 도전과 성공 위에서 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커뮤니티의 성장은 키의 성장과 비슷하다. 조금씩 자라다가 어느 한순간 쑥 자란다. 첫 번째 펭귄들의 등장은 바로 이런 성장 스퍼트의 기폭제가 된다.
한인사회에도 비즈니스와 정치, 학계, 그리고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의 성취를 이뤄낸 수많은 인물들이 있다. 이들의 기록은 곧 커뮤니티의 성장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만큼 한인사회 첫 번째 펭귄으로 기억될 만한 인물들에 관한 자료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가능하다면 이것을 전시할 만한 공간까지 마련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한인단체들이 주도해 이민사에 기록될 최초의 업적이나 성취를 이룬 인물들을 선정, 시상하는 ‘첫 번째 펭귄 상’을 제정하면 어떨까 싶다. 만약 이 상을 만든다면 첫 번째 수상자 후보로 언뜻 떠오르는 인물만 해도 한둘이 아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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