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가 한국에 사는 한 지인의 소식을 전해줬다. 공무원으로 오래 일하다 은퇴한 60대 중반의 남성인데 요즘 하루하루가 바늘방석이라고 했다. 그의 아내 때문이다. 수십년 아침에 나가서 밤늦게 돌아오던 남편이 갑자기 하루 종일 집에 있게 되자 그 상황에 적응이 안 되는 걸까? 그의 아내는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남편은 아내의 반응이 당황스럽다 못해 충격적이다. 평생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은퇴했으면 “수고 많이 하셨다. 이제는 편히 쉬시라” 정도의 대접은 받을 걸로 기대를 했었다. 그런데 자신의 존재로 인해 아내가 스트레스를 받다 못해 우울증에 걸렸다니 “그럼, 내가 매일 어디로든 나가야 하는 거냐?”고 그는 친구에게 하소연을 하더라고 했다.
남편의 입장에서 보면 남편이 안 됐고, 아내의 입장에서 보면 그 또한 이해가 된다. 전형적인 60·70대 한국남성을 전제로 할 때, 남편이 집에 있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단순히 남편이 곁에 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시중들어야 할 상전이 버티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은퇴해 집에만 있는 남편을 여성들이 ‘애물단지’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남편이 은퇴하면 아내의 건강이 나빠진다는 보고서가 한국에서 발표되었다. 남편이 밖에 나가지 않고 집에서 세끼를 다 먹는다고 해서 붙여진 ‘삼식이’ 스트레스가 사실로 입증이 되었다. 은퇴자 부부 91쌍과 미은퇴자 부부 273쌍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은퇴를 하면 부부 모두 건강이 나빠지는 데 특히 배우자 즉 아내의 건강악화가 심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는 3년이 지나면서 부부의 건강은 회복 된다고 한다. 은퇴생활 적응에 3년쯤 걸린다는 말이다.
미주 한인사회에도 ‘삼식이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은퇴 후 남편과 하루 종일 얼굴 마주 대하고 있으려면 숨이 막힐 것 같다는 주부들이 있다. 남편의 대인관계가 주로 일과 관련 되어있었던 경우일수록 아내들은 힘들다. 은퇴와 함께 관계들이 끊어져 남편은 만날 사람도 참석할 모임도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내만 따라다닌다.
60대 후반의 한 주부는 친구모임 한번 마음 편히 나갈 수가 없다고 하소연을 한다. 외출 준비라도 할라치면 남편이 “어디 가? 언제 떠나? 몇 시에 와?” 하며 질문이 끊이지 않는 데다 때로는 같이 따라나서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남편 조크’들이 백번 이해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면 50대 이상 여성들이 가장 좋아하는 남편은 싹싹한 남편도 잘 생긴 남편도 아니다. 집에 없는 남편이라는 조크이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미국에서는 ‘삼식이 스트레스’가 덜 하다고 은퇴생활 10년 차인 한 주부는 말한다. 한국의 60·70대 여성들은 대부분 전업주부인데 반해 미국에서는 여성들이 남편과 맞벌이를 한 것이 차이를 만든다고 그는 설명한다.
“한국 주부들은 아침에 식구들 나가고 나면 완전히 자유예요. 그렇게 수십년 홀가분하게 살다가 남편이 은퇴해 집에 있으면 행동에 제약을 받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는 부부가 같이 일하다가 같이 은퇴해서 함께 쉬는 것이니 스트레스는 별로 없어요. ‘삼식이 스트레스’라고 하지만 두 사람 먹는 것 만드는 게 뭐가 힘들겠어요?”‘삼식이 스트레스’가 없다고 ‘삼식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아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을 뿐 대부분 노년층 남성들은 ‘삼식이’ 남편들이다. “우리 세대 남편들 중 스스로 밥 차려 먹을 줄 아는 사람은 열에 두 명 정도일 것”이라고 60대의 한 여성은 말한다.
“아들네 집에 가느라 며칠 집을 비울 때면 음식을 다 만들어서 이름 써 붙여 냉장고에 넣어두고 가요. 그런데도 돌아와 보면 (남편은) 그것도 제대로 찾아먹지를 못해요.”남편이 ‘삼식이’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은 남편을 위해서도 아내를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은퇴 후 아내들의 공통적 관심사가 남편을 어떻게 하면 자립할 수 있게 훈련시킬까 이다. ‘내가 집에 없어도, 내가 세상에 없어도’ 남편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해둬야 안심이 된다는 것이다. 첫째는 간단한 요리 가르치기. 평생 안하던 음식을 남편이 만들게 하려면 “아내가 좀 약아야 한다”고 한 주부는 귀띔한다.
“내가 손이 아파서 할 수가 없으니 대신 해보라고 했지요. 간단한 아침식사였어요. 그리고는 무조건 잘했다, 맛있다 칭찬을 하는 게 요령이에요.”둘째는 각자의 시간 갖기. 부부가 각기 다른 봉사단체에 가입하거나, 다른 그룹과 취미활동을 하는 것이다. 집에서도 항상 붙어있지 말고 각자 다른 방에서 지낼 필요가 있다. 그리고는 이따금씩 마주 앉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다독이고 이해하는 시간을 갖는다. 함께 그리고 따로 시간을 보내면서 행복한 부부가 건강한 부부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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