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론조사 전문기관들의 신뢰도가 말이 아니다. 이들의 선거 예측이 빗나가는 일이 다반사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영국 총선에서 여론조사 기관들은 완전히 스타일을 구겼다. 뚜껑을 열어보니 이들의 예측과 완전 동떨어진 선거 결과가 나왔다. 그래서 이번 총선 최대 패자는 여론기관들이라는 냉소적 평가까지 나오고 있다.
총선 전 여론조사에서 나타난 보수당과 노동당 지지율은 32~36% 사이로 승자 없는 선거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주류였다. 하지만 보수당은 331석을 얻으며 가볍게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반면 노동당은 232석에 그치며 참패했다.
오히려 도박업체들이 더 정확하게 보수당의 승리를 점쳤다. 총선 사흘 전 도박업체들은 5대1의 확률로 보수당의 승리를 내다봤다. 선거 결과가 정말 궁금하다면 여론조사 수치가 아닌 도박업체 배당률을 들여다보는 게 더 낫다. 여론조사에 대한 조롱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다. 도박업체들의 예측 능력은 놀라울 정도이다. 도박업체들은 1868년부터 1940년까지의 미국 대선에서 1916년 단 한차례를 빼고는 모두 승자를 맞췄다.
그러나 정확한 선거결과 예측을 위해 꼭 전문도박사일 필요는 없다. 변화하는 시대적 추세와 변화하지 않는 인간 본성에 대한 적당 수준의 이해만 있다면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선거 결과를 예측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 나는 안개 속 판세라던 이번 영국 총선과 한국의 재·보궐 선거에서 보수가 손쉽게 승리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 근거 가운데 하나는 여론조사에서는 응답자가 자기 속마음을 그대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으며 통상적으로 보수적 유권자들이 좀 더 그런 경향이 있다는 사실이다. 또 한 가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적극성이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투표장에 더 열심히 나간다. 그것이 어떤 동기에서 비롯되는지는 나라 별 상황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이런 일반적 경향은 뚜렷하다. 전반적 고령화가 정치의 보수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는 진단도 부정하기 힘들다. 지난 한국대선에서의 연령대 별 투표율과 박근혜 후보 지지율을 보라.
이런 요소에 더해 선거 전략에서도 진보는 보수에 크게 밀린다. 영국 총선에서 보수당의 캠페인 전략은 아주 간단했다. 경제를 살리겠다고 약속하면서 동시에 노동당이 의석을 더 많이 얻으면 스코틀랜드 독립당과 연정을 하게 되고 그러면 영국은 해체의 길을 걷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민족주의 감정을 건드리는 방식으로 보수적 유권자들의 두려움을 자극한 것이다. 한국의 여당이 ‘경제’와 ‘종북’을 선거의 단골 레퍼터리로 써 먹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보수를 결집시키면서 아주 효과적으로 먹힌다.
선거를 지배하는 것은 이성과 논리가 아니라 두려움과 열정 같은 감정이다. 이것은 아주 간혹 위대한 혁명의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만 대중을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끌기도 한다. 감정에 호소하는 매체로 TV만큼 유용한 게 없다. 그러니 TV 전파를 장악한 세력은 상대보다 훨씬 유리한 조건에서 선거를 치를 수 있다.
유권자들의 결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후보의 객관적 자질과 공약, 그리고 사실이 아니라 이미지다. 그래서 언론인 출신 역사학자인 리처드 솅크먼은 “언제나 넓은 붓질로 그림을 그리는 정치인들이 사실과 수치로 무장한 사람들보다 더 유리하다”고 지적한 것이다.
지금 진보에 시급한 것은 판세를 정확히 읽을 줄 아는 ‘독법’과 유권자들에게 감성적으로 다가설 수 있는 ‘어법’이다. 여론조사에서 나타나는 진보 지지율에는 거품과 거짓이 끼어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지지율에서 3%포인트 정도는 깎아내고 봐야 한다. 정확한 판세 분석 없이 올바른 전략을 세울 수는 없는 법. 이런 수치의 기만성을 알아채지 못하면 패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또 유권자들의 느낌을 장악할 수 있는 언어와 구호, 그리고 이슈를 고민해야 한다. 유권자들을 가르치려 드는 말투로는 아무리 그 내용이 정의롭고 옳아도 어필하기 힘들다. “우익은 거짓을 말하고 있지만 인간에게 말하고 있고, 좌파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사물에 말하고 있다”는 정치판의 격언을 기억해야 한다.
정치지형과 사회적 추세, 미디어 환경 등 여러 여건들은 진보에 유리하지 않다. 자신들 앞에 놓인 숙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하는 한 진보의 고전은 한동안 계속될 것 같다. 권력을 놓고 다투는 현실정치 속에서 유권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진실이란 한갓 꿰지 못한 구슬일 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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