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70년 동안 한반도에서는 격동기라 할 만큼 거센 역사적 풍랑들이 여럿 있었다. 8.15 해방, 6.25 동란, 4.19 학생혁명, 그리고 5.16 군사혁명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이들은 실상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는 연속적 사건이었다.
“5.16군사혁명을 어떻게 보아야만 할까?” 군사정권의 시퍼런 칼 앞에서 함석헌 선생이 ‘사상계’에 발표했던 역사에 남는 논설 제목이다. 군사혁명세력을 한 밤중에 자유민주주의를 강탈한 도적놈들이라고 일갈했다. 혁명과업 완수 후 원대복귀 하겠다는 공약에 대해 “사람이 껌을 씹다가 뱉기도 아까워하는데 과연 그 좋은 권력을 놓고 원대복귀를 할 수 있겠느냐”고 경고했다. 예편한 뒤 민간인으로 집권하려는 음모를 알고는 “원숭이가 사람 옷을 입는다고 사람이 되느냐”며 힐난했다. 젊은이들의 가슴을 후련하게 했던 어록들이었다.
최근 김종필 전총리가 “5.16군사혁명의 진실을 밝힌다”며 회고록을 쓰고 있다. 군사혁명의 실질적 주도자였고 중앙정보부장으로서 함석헌 선생을 체포하여 심문했던 당사자였다.
그런데 그 때 ‘함석헌은 늙은 정신병자’라고 폭언했었다. 혁명주체세력들은 함 선생을 정신병자 취급했고 함선생은 그들을 자유민주주의 도적놈들로 단죄했다.
5.16군사혁명에 대한 평가는 후세 역사가들에게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직접 겪은 목격자들의 평가가 후세 역사가들의 것만큼 중요할 수도 있다. 따라서 4.19학생혁명 세대의 5.16군사혁명 평가는 그 값이 넉넉하다. 물론 바르게 평가하려면 냉혹한 이성적 시각과 역사 전체를 보는 혜안이 있어야 한다. 지나친 미화나 감정적 전면부정은 안 된다.
4.19학생혁명은 독재정권을 무너뜨리고 인류의 가장 이상적 가치인 자유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런데 참된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주권재민, 생존권, 자유, 평등, 인권 등의 기본요건이 보장된 법치국가여야 한다. 특히 국민주권행사의 핵심인 선거가 공명정대해야 한다.
그렇다면 5.16군사혁명이 과연 민주주의를 증진시켰는가. 그런 공적도상당히 있다. 만약 4.19학생혁명 이후의 극심한 혼란이 계속되고 그것이 적화통일의 빌미가 되었다면 지금쯤 우리는 김씨 조선의 난폭한 독재치하에서 공포에 질려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온 측면 또한 상당히 크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의 30여 년 동안 ‘주권재민’은 명목상일 뿐 실상은 ‘주권재군’이었다. 따라서 연속되는 철권 정치로 생존권, 자유, 평등, 인권, 법치는 무참하게 짓밟혔다. 중앙정보부, 안기부, 긴급조치, 장발 강제단속 등으로 상징되는 폭력적 수단들이 ‘주권재군’을 웅변으로 증언한다.
지식인과 양심세력들이 정당한 재판절차 없이 투옥, 구타, 학대, 위협, 직장퇴출 등의 불이익을 당했던 어둠의 세월이었다. 북한과 싸워 이길 최대 무기는 바로 자유민주주의라는 주장이 설 땅을 잃었다.
깡패들을 소탕하고 사회질서와 건전한 기풍을 세우는데도 5.16이 어느 정도 기여했다. 부정선거의 악습도 상당부분 제거한 공적도 있다. 새마을운동을 통한 국민기풍진작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다. 그러나 그 당시 박순천 야당 당수의 말처럼 ‘구악을 일소’(혁명공약)했는지 모르지만 신악이 구악보다 더 엄청났었다.
유신정책으로 국민선거권을 원천 봉쇄한 것이 최대 신악이었다.
4.19학생혁명의 또 다른 원인은 청년실업인구의 폭발이라는 경제사회적 시각도 있다. 먹고 입는 문제는 생존과 직결되어 있다. 기적에 가까운 산업경제개발 성과를 올린 것은 군사혁명정부의 최대 업적이다. 그러나 ‘함께 잘 살기’, 즉 균형적 분배, 경제민주화, 복지사회 건설에는 함량미달이었다.
민족 최대의 과제인 남북통일에는 어떻게 기여했는가. 4.19학생혁명 후 통일열기가 분출했으나 5.16군사혁명이 나면서 완전히 얼어붙을 정도였다.
따라서 통일정책에서는 기대할만한 업적을 남기지 못한 채 긴 세월을 낭비했다. 오히려 남북독재정권들이 ‘적대적 협력자’가 되어 권력 강화에 통일문제를 악용했다는 의혹만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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