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림에 죽어가는 아프리카 어린아이들을 도와달라는 구호기관들의 호소가 많은 한인 TV방송들의 전파를 타고 있다. TV를 틀면 한 번은 꼭 보게 될 정도이다. 이런 홍보를 보면서 구호기관들의 접근 방식이 조금씩 바뀌고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과거에는 참상을 알리고 사업의 명분을 설명하면서 도움을 요청하는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처참한 환경의 아이가 구호를 통해 어떻게 달라진 삶을 살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춘다. 또 후원을 시작하면 후원자의 돈이 어떤 아이에게 전달되고 있는지 신상정보와 사진까지 보내준다.
구호기관들의 이런 방식은 더 할 수 없이 효과적인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왜 그런지는 미국의 사회학자들이 실시한 한 실험의 결과가 잘 설명해 주고 있다. 이들은 실험대상자들에게 1인당 5달러씩 참여수당을 지급한 후 그룹을 둘로 나눴다. 그리고 각 그룹에 다른 내용의 정보를 제시했다.
첫 번째 그룹에는 아프리카의 식량부족으로 매년 수백만명이 죽어가고 즉각적인 식량 구호가 필요한 사람이 수천만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숫자와 함께 알려줬다. 다른 그룹에는 로키아라는 한 소녀의 이름과 그녀의 비참한 생활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그리고는 갖고 있는 돈 가운데 얼마를 기부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첫 번째 그룹은 자신들이 받은 대가의 23%를 기부하겠다고 밝힌 반면 구체적인 이름을 들었던 두 번째 그룹은 48%의 기부를 약속했다. 기부액이 무려 두 배 이상 차이가 난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결과를 ‘인식가능 희생자 효과’로 풀이했다. 고통 받는 사람을 인식할 수 있을 때, 즉 그 사람의 얼굴과 그 사람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을 때 우리는 더 큰 동정심을 갖게 된다는 말이다.
그래서 가족과 친구는 물론이고 우리가 아는 어떤 사람이 어려운 처지라는 소식을 듣게 되면 우리는 머뭇거리지 않고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또 개인적 관계가 아니더라도 한인들의 딱한 사연이 언론에 보도되면 기꺼이 도우려 하고 모국에 참사가 발생하면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연민과 동정심이라는 감정은 물결의 파장과 유사하다. 나와의 정서적인 거리가 가까울수록 감정의 파장은 커지고 멀어질수록 약해진다. 그래서 내가 알거나 가깝게 느끼는 개인의 비극에는 쉽게 마음을 열고 지갑까지 열지만 무수한 사람들을 고통에 빠뜨리는 먼 곳의 비극에는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2007년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에 ‘숫자에 무뎌진’(Numbed by Numbers)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됐다. 기사는 대량학살과 대형 참사 보도에 언급되는 엄청난 희생자 숫자가 오히려 이를 접하는 사람들을 무감각하게 만들고 ‘동정 피로증세’까지 초래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한 명의 죽음은 비극이지만 100만명의 죽음은 통계일 뿐”이라는 말을 남겼다. 비극의 크기가 너무 크면 사람들이 그것에 무감각해지는 경향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특히 요즘처럼 지구촌 곳곳에서 엄청난 재해와 참사 소식들이 끊이지 않고 들려올 때는 더욱 그렇다.
열흘 전 네팔에서 발생한 대지진으로 인한 사망자자 5일 현재 7,000명을 넘어섰다. 사망자가 1만명을 넘을 수도 있다는 암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진 발생 후 본보가 시작한 모금캠페인을 통해 지금까지 3만달러의 구호기금이 모아졌다. 한인 비즈니스와 단체들, 그리고 개인들이 보내온 온정의 결실이다.
적지 않은 액수이긴 하지만, 한 사람의 딱한 사연만 소개돼도 수천달러를 훌쩍 넘는 성금이 답지하는 데 비춰보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사실이다. 하룻밤 자고 나면 수백명 단위로 올라가는 사망자수를 접하면서 우리 또한 대참사의 비극성에 조금씩 둔감해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거액의 재산을 얼굴도 전혀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인류를 위해 아낌없이 쾌척하는 일부 수퍼리치들을 볼 때마다 확장된 연민의 힘을 생각하게 된다. 그런 확장된 연민이 그들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규모는 결코 같을 수 없겠지만 우리 또한 얼마든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 비극을 통계가 아닌, 비극 자체로 느낄 수 있는 감수성을 가지고만 있다면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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