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만에 만난 대학 후배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화제가 자녀들 소식으로 이어졌다. 아들과 딸 모두 대학을 졸업했는데 아들이 아직 취직을 못한 것이 그에게는 걱정거리였다. 아들은 용돈 정도 버는 일을 임시로 하고 있다고 했다. 적은 돈으로 학자금 융자 상환금까지 갚느라 빠듯하게 살고 있는 걸 생각하면 아들에게 미안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게 왜 미안한가?” 물었더니 “아들 친구들은 학자금 융자 받은 걸 대개 부모가 갚아준다”는 것이었다. 아빠로서 재력이 부실한 걸 그는 미안해했다. 남매가 고등학교 시절, 타 지방에서 근무하느라 가족과 떨어져 지낸 그는 “아이들이 한창 자라던 시기에 옆에서 돌봐주지 못한 것도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사람 좋은 그는 미안한 게 많았다.
그를 보며 우리 부모 세대로부터 불과 한 세대 사이 우리의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가부장 전통이 확고했던 당시 가장이 타지에서 근무를 하면 가족들의 첫 번째 관심은 ‘가장의 고생’이었다. ‘가족들 먹여 살리느라’ 객지에서 고생하는 남편/아빠의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아내는 살림에, 자녀들은 공부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믿었다. 가장의 고생을 두고 볼 수 없어 자녀를 조부모에게 맡기고 아내는 남편 곁으로 가는 경우도 흔했다. 아이들은 뒷전이었다. 가족들 우선순위에서 가장은 확고한 ‘1번’이었다.
한 세대가 지나면서 가족들 우선순위가 바뀌었다. 어느 집이나 자녀가 ‘1번’이다. 주거지역을 정할 때 우선 고려되는 것은 가장의 출퇴근 거리가 아니다. 자녀의 학군이다. 빠듯한 살림에서 지출순위 1번은 단연 아이들 학원비나 레슨비이다. 집집마다 ‘왕자’와 ‘공주’를 키우고 있다.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부모는 하늘에 있는 별이라도 따줄 태세이다.
부모가 자녀를 이렇게 떠받들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기본적으로 미안함과 불안함이라는 생각이다. 물질주의와 성공주의가 배경이다.
부부가 맞벌이 하는 사회가 되면서 부모, 특히 엄마들은 항상 미안하다. 자는 아이 깨워 데이케어에 데려다 주는 것도 미안하고, 같이 있어달라는 아이 떼어놓고 일하러 가는 것도 미안하고, 주말이면 밀린 집안일 하느라 아이와 충분히 놀아주지 못하는 것도 미안하다. 그러다가 아이가 아프기라도 하면 자책감에 죄인 아닌 죄인이 된다.
그래서 아이가 갖고 싶다면 두 말 않고 장난감을 떠안기고, 좀 잘못을 해도 꾸짖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거기에 더해지는 것이 아이를 최고로 만들고 싶은 욕심.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아이가 성공하려면 남들보다 한 발짝이라도 앞서가게 해야 한다는 강박감,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아닌가” 싶은 불안감이 부모들을 한 방향으로 몰아세운다. 자녀의 미래는 ‘1등-일류대학 - 일류직장’ 이 보장한다는 믿음에 자녀의 공부나 성적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마다 않는다. 아이의 기를 살려주기 위해 웬만한 요구에는 ‘노우’를 못하고, 아이가 못되게 굴어도 성적만 좋으면 문제 삼지 않는다. 성적지상주의이다.
며칠 전 한국의 한 TV 방송이 청소년들의 욕 습관을 보도했다. 초등학생과 중학생들의 일상적 대화를 녹음해보니 욕설이 너무 많이 들어가 옆에서 듣는 어른들이 민망할 정도라고 했다. 그런데 그에 대한 한 중년여성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옛날 같으면 (아이들에게) 뭐라고 했는데 요즘엔 뭐라고 못한다. 잘못하면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고 했다.
어른들이 겁이 나서 아이들을 훈계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사람 교육을 시키지 못한 결과이다.
아이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도덕교육, 즉 인성교육이라고 강조한 사람은 아리스토텔레스였다. 그는 ‘사람’에 대해서 별로 믿음이 없었다. 태어난 그 상태로는 ‘야만인’과 같아서 도덕교육을 시켜야 비로소 제대로 된 시민이 된다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적당한 체벌과 상을 주면서 엄하게 훈육할 것을 그는 강조했다.
5월5일 어린이날을 맞으며 오늘의 어린이들을 생각한다. 1923년 방정환 선생은 어른들의 매질과 고된 가사노동으로 부터 아이들을 해방시켜야 한다며 ‘어린이 날’을 제정했다. 천도교도인 선생은 아이들도 어른과 같은 인격체라며 ‘하늘’로 대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오늘의 자녀교육은 그 시대와 정반대로 문제가 있다. 자녀를 너무 하늘처럼 받들다 보니 버릇없고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아이들이 양산되고 있다. 무엇이든 너무 쉽게 주어져서 아이들은 참을성이 없고 자립심이 없다. 아이들을 왕자병, 공주병 환자로 만들지 않는 것이 부모로서 1차적 과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