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무수한 분절의 연속이다. 하나하나의 분절은 직선이다. 하지만 그것들을 연결해 놓은 전체는 직선이 아니다. 계속 앞으로만 뻗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오기도 하고 옆으로 벗어나기도 한다. 삶은 아주 가까이서 보면 직선이지만 멀리 떨어져 보면 온갖 굽이들로 점철된 기나긴 길이다.
성공을 거머쥐거나 행운이 찾아오면 하늘을 날 듯 기뻐한다. 탄탄대로가 이어질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교만해지기까지 한다. 그러다 비극이 찾아오거나 어려운 일에 직면하면 곧바로 하늘이 무너져 내린 듯 절망한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끝이 있는 법. 끝없이 지속되는 행운과 불행이란 없다. 또 이런 순환의 주기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한마디로 불확실성의 연속이다. 그래서 삶은 오묘한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무슨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것이 마지막인 양 너무나 쉽게 일희일비 한다.
불과 석 달 전 이완구 의원이 국무총리로 지명됐을 때 그는 온 세상을 다 가진 듯 보였다. 국무총리 지명에 여야를 막론하고 호평이 쏟아졌다. 인준은 따 놓은 당상처럼 여겨졌다. 충청권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면서 대권도전에 성큼 다가섰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왔다. 이완구 정치 인생의 클라이맥스였다.
하지만 그는 지금 나락으로 떨어져 있다. 스캔들로 인해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정치생명 자체가 위태로운 궁색한 처지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혐의가 사실로 확인되면 처벌을 피할 수 없다. 내려놓은 총리 자리의 아쉬움보다 잇단 거짓말로 악화된 세간의 평판이 그를 더욱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이완구는 평생을 양지에서 살아왔다. 그는 철저하게 무엇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가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처신했다. 하지만 자신이 살아 온 삶의 궤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깨달을 정도의 소양은 갖추지 못했던 것 같다. 한마디로 분수를 몰랐던 것이다. 만약 그가 분수를 지켰더라면 치욕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롤러코스터 같은 이완구의 출세와 몰락을 보면서 새삼 떠올리게 되는 것은 ‘새옹지마’(塞翁之馬)의 교훈이다. 새옹은 변방에 사는 노인이다. 그가 가지고 있는 말 한 마리 때문에 화와 복이 번갈아 가며 찾아온다. 복처럼 보이는 것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라 여긴 것이 오히려 복이 되기도 한다.
이완구의 총리 지명이 불행의 씨앗이 될 것이라 내다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그의 인생에서 가장 빛났던 영광은 가장 어두운 치욕의 시작이었다. 총리 지명을 받은 후 그의 얼굴을 덮었던 ‘파안대소’와 총리직에서 물러나며 흘린 ‘눈물’은 변화무쌍한 인생의 굴곡과 반전을 상징해 준다.
이와는 반대로 역경이 오히려 좋은 일의 씨앗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영어에도 이것을 이르는 ‘Blessing in Disguise’(위장된 축복)라는 표현이 있다. 나쁜 일, 불행으로 여겨졌던 상황이 오히려 축복의 바탕이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우연과 행운에 의해 그렇게 되기도 하지만 의지와 노력으로 이런 반전을 이뤄내기도 한다. 우리가 전기나 자서전을 통해 접하는 인생들 대부분이 그렇다.
프랑스의 정신의학자 보리스 시륄닉은 이렇듯 반전의 삶의 바탕이 된 고통에 대해 ‘멋진 불행’이라는 찬사를 바쳤다. ‘멋진 불행’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는 분명 ‘불행한 성공’도 있을 것이다. 수천 년 전 새옹이 보여준 지혜는 바로 이것에 대한 깨달음이었다.
이 지혜의 핵심은 평상심이다. 평상심은 무슨 일이 닥치든 일희일비하기보다는 담담하게 응시할 줄 아는 태도를 이른다. 고사는 ‘새옹지마’라는 사자성어를 남겼지만 우리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은 새옹의 말이 아니라 새옹의 마음, 즉 ‘새옹지심’(塞翁之心)이다.
이완구에게 현재의 곤경은 극복이 결코 쉽지 않아 보인다. 이런 때 그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새옹의 지혜를 떠올리는 일일 것이다. 누가 아는가. 지금의 시련이 인생 반전의 씨앗이 될지. 그것이 정치적인 영광은 아니겠지만 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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