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뉴욕 공항에서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이 심심찮게 화제 거리를 던져주고 있다. “설마 그렇게 까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하다가 “하긴, 정도의 차이일 뿐, 어딘 안 그런가!” 하게 되는 내용은 소위 ‘로열 패밀리 서비스’에 관한 것이다.
당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에게 폭행과 폭언을 당한 여승무원은 현재 뉴욕 법정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한 상태이다. 며칠 전 공개된 그의 소장에 의하면 사주 가족이 탑승할 때 승무원들은 특별 교육을 받는다.
예를 들어 조 전 부사장 탑승에 앞서 그 승무원은 “조씨에게 말할 때 어떤 단어를 피해야 하고, 그가 비행기 안으로 들어오면 기내 음악의 볼륨은 어느 정도로 해야 하며, 그가 먹을 스프는 어느 온도로 맞춰야 하는지 등 개인적 취향에 관한 교육을 두 번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꼼꼼하게 로열패밀리 맞을 준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카대미아를 봉지 째 내놓았다가 사달이 난 것이었다.
똑같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어떤 사람은 호령을 하고, 어떤 사람은 그 비위를 다 맞춰야 하는가, 사람은 평등한가 … 생각을 해보게 된다. 이 경우, 갑과 을로 두 사람을 분명하게 가른 한 가지 요인은 ‘아버지’이다. 조씨가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 결정적으로 잘한 것은 아버지를 잘 만난 것이다.
신분제도가 없는 민주사회에서 부모 혹은 아버지를 잘 만나야 성공하는 세상은 문제가 있다. 그들의 성공이 배 아픈 게 아니라 그외 다수가 성공으로 진입할 기회를 공평하게 부여받지 못하는 게 문제이다. 미국도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하버드 대학의 인기교수인 로버트 퍼트남 박사(74)는 미국에서 부모 잘 만난 아이들과 잘못 만난 아이들의 격차가 위험할 정도로 벌어지고 있다고 경고한다. 그가 지난달 발간한 저서 ‘우리 아이들 : 위기의 아메리칸 드림’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그는 미국 사회의 문제가 소득 불평등 수준을 넘어섰다고 말한다. 부의 불균형에 따른 경제적 양극화가 사회계층 간 분리현상을 만드는 것이 심각한 문제라는 것이다. 부유한 아이들과 가난한 아이들이 완전히 동떨어진 채 전혀 다른 조건에서 자라면서 계층은 대물림되고 계층 간 격차는 날로 커지고 있다. 그가 말하는 ‘부유한’ 계층은 부모의 학력이 대졸이상인 가정, ‘가난한’ 계층은 부모가 고교중퇴 이하인 경우이다.
부유한 가정 아이들이 누리는 것은 넉넉한 용돈만이 아니다. 아이를 성공 재목으로 키우려고 관심과 시간, 돈을 아낌없이 쏟아 붓는 부모가 있고, 좋은 학교의 좋은 교육이 있으며, 지원과 조언을 아끼지 않는 친척과 이웃 등 인맥이 있다.
아울러 이 아이들에게는 ‘에어백’이 있다. 뭔가 잘못을 저질러도 보호를 받을 수가 있다. 자동차가 충돌하면 에어백이 터져 다치지 않듯이 사회적 에어백이 터진다. 부모가 최고의 변호사를 구하거나, 심리치료를 받게 하거나 가정교사를 구해서 말끔하게 어려운 상황을 벗어나게 해준다.
빈민층 아이들로서는 생각도 못할 혜택들이다. 자라면서부터 이렇게 차이가 나니 빈민층 아이들이 무슨 수로 경쟁을 하겠는가. 학력에서부터 격차가 벌어지면서 부유한 계층과 가난한 계층의 골은 대를 이어 깊어진다.
퍼트남은 자신의 고향인 오하이오, 포트 클린턴의 경우를 예로 들었다. 중하층 서민들이 살던 그곳에서 가난한 학생들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장학금을 받아 대학에 가거나 공장에 취직을 했다. 대학을 선택한 퍼트남은 캠퍼스에서 만난 여학생과 결혼을 했고, 그의 아이들은 하버드에 입학했으며 이제 손주들이 대학생이거나 진학을 앞두고 있다.
반면 1959년 졸업 당시 공장취직을 선택한 동창들은 제조업이 붕괴하면서 일자리를 잃었고, 그 자녀들은 일자리 부족과 저임금에 허덕였다. 손주 세대에 이르자 부모도 없이 하층민으로 전락하는 케이스들이 생겨났다. 예를 들어 ‘매리 수’라는 여성은 5살 때 부모가 헤어지고, 스트립 댄서 엄마 밑에서 거의 버려진 채 자랐다. 사회로부터 완전히 소외되고 철저히 망가진 채 바닥 인생을 살고 있는 그의 잘못은 단 하나, 부모를 잘못 만난 것이라고 퍼트남 교수는 말한다.
개인의 능력보다 부모의 재력이 성공을 좌우한다면 ‘아메리칸 드림’은 설 자리가 없다. 가난한 아이들도 부유한 아이들처럼 꿈을 꿀 수 있어야 미국이다. 2016년 대선에서 부의 불균형 문제가 주요 이슈가 될 전망이니 기대를 걸어본다. 사회적 양극화는 결국 사회적 부담으로 값을 치르게 만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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