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 1월5일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자신의 공장 노동자들 일당을 5달러로 올리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5달러라는 일당은 당신 포드공장 노동자들의 평균 일당 2.34달러의 두 배를 넘는 파격적 액수였다. 포드의 선언에 미국 노동계는 발칵 뒤집혔다. 포드가 미친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나왔다.
포드는 냉철한 기업인으로 소문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노동자들의 ‘키다리 아저씨’가 된 것은 종업원 사랑이나 연민에서가 아니었다. 노동자들의 주머니를 충분히 채워주면 그들은 결국 소비자가 돼 포드자동차의 구매자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노동계는 임금체계의 통념과 표준을 확 바꿔놓은 이날을 ‘5달러의 날’로 지정해 기념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에서 가장 뜨거웠던 경제 화제는 시애틀의 한 신용카드 결제회사 CEO가 직원들의 최저연봉을 7만달러로 대폭 올리겠다고 발표한 뉴스였다. 이 회사의 젊은 CEO 댄 프라이스는 “평소 생활고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 직원들을 보며 안타까웠다. 불평등 문제와 관련해 뭔가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 뉴스가 전해지자 제2, 제3의 프라이스가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이런 기대는 환상일 뿐이다.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을 받으며 일해야 하는 무수한 노동자들에게 7만달러 최저연봉은 꿈같은 남의 얘기일 뿐이다. 하지만 불평등 해소를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프라이스 메시지의 방향성만은 옳다.
계몽적 사고방식을 가진 경영주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바람보다 좀 더 현실적인 접근은 경제 양극화 속에서 갈수록 보잘 것 없어지는 최저임금을 실질적인 수준으로 끌어 올리는 일일 것이다. 현 최저임금은 최저생활을 꾸리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한 달 내내 뼈 빠지게 일해도 주거비를 감당하기조차 버겁다. 열심히 일하는 노동자들이라면 최소한의 생활은 할 수 있도록 보장해 주는 것이 양식 있는 사회의 의무이다. 젊은 CEO 댄 프라이스의 철학이 바로 이것이다.
프라이스의 철학을 도덕적 당위론이라 한다면 포드의 철학은 철저히 현실적이다. 돈은 피와 같아서 잘 돌아야 경제가 건강해진다. 최저임금 인상은 ‘돈맥경화’와 경제의 혈전현상을 해소하고 경기를 활성화 시키는 데 꼭 필요한 조치이다. 그러니 최저임금 인상을 가난한 노동자들에게 베푸는 시혜로만 여겨서는 안 된다.
돈이 가난한 사람들 손에 많이 들어갈수록 더욱 잘 돈다는 것은 증명된 사실이다. 돈이 돌고 돌아 경제에 미치는 효과를 ‘승수효과’라 한다. 부자들이 갖고 있는 돈의 승수효과는 0.23(1달러가 23센트의 경제효과 창출)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푸드스탬프의 승수효과는 1.73이라는 연구결과도 있다. 복지 선진국들이 경기침체기를 훨씬 잘 이겨내는 것은 구조적, 제도적으로 돈이 돌도록 만들어 놓은 시스템 덕분이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일자리가 많이 사라질 것이라는 위협적 논리는 갈수록 힘을 잃고 있다. 보수진영 내에서조차 그렇다. 이번 달 시장경제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골드만삭스가 발간한 최저임금 영향 분석보고서에 일자리 감소와 관련한 언급이 전혀 없어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올 초 USA투데이는 최저임금이 단계적으로 오르고 있는 샌호제 지역 탐방기사를 실었다. 기사 요지는 최저임금이 인상된 후 저소득층 생활은 조금 나아졌으며 당초 우려와 달리 비즈니스와 일자리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에는 온정적 업주와 소비자들이 생각보다 많다.
2001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 스티글리츠 교수는 자신의 책 ‘불평등의 대가’에서 “미국사회의 불평등은 숙명이 아니라 만들어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불평등으로 인해 미국은 경제성장 둔화, 사회적 불안정, 민주주의의 약화, 국가적 정체성 위기 같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스티글리츠 교수의 지적처럼 불평등이 숙명이 아니라 잘못된 정책의 결과라면 적어도 개선의 희망은 있다는 얘기다. 이런 희망이 현실이 될 수 있을지 여부는 결국 경제적 배분에서 소외됐으면서도 수적으로는 가장 많은 계층이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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