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와스모어 대학에서 사회이론을 가르치는 배리 슈워츠 교수는 청바지를 즐겨 입는다. 그는 동영상 대중 강연인 ‘테드’에 나와 최근 청바지를 사러 갔던 경험을 이렇게 들려준다. “가게에 들어가 ‘청바지를 하나 사고 싶은데 이게 제 사이즈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점원은 ‘슬림 핏을 드릴까요? 이지 핏? 아니면 릴랙스트 핏을 드릴까요? 지퍼와 버튼 중 어떤 것을 원하세요? 색감은 어느 정도로 원하십니까? 오래된 것 같은 느낌을 넣을까요? 통이 좁아지는 스타일을 드릴까요?’라며 쉬지 않고 질문을 이어갔습니다. 정신을 차리기 힘들 정도였죠.”
슈워츠 교수는 한 시간 동안 수많은 청바지를 입어보고 나서야 가게를 나설 수 있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덕분에 품질 좋고 몸에 딱 맞는 청바지를 살 수 있었지만 기분은 별로였다고 덧붙였다. 사이즈 하나만 고르면 그만이었던 과거와 달리 선택의 폭이 넓어지면서 청바지 샤핑조차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간단치 않은 일이 돼 버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인생은 무수한 선택의 결과물이다. 우리 앞에 놓인 것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상황은 죽을 때까지 이어진다. 자장면을 먹을 것인지 아니면 짬뽕을 먹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사소한 일에서부터 진로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에 이르기까지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택의 여지가 많은 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항상 그런 건 아니라는 것을 설명하려고 슈워츠 교수는 강연에서 자신의 청바지 구입 얘기를 한 것이다.
슈워츠 교수는 선택의 폭이 확대될수록 이것이 자유를 안겨주기보다 오히려 결정을 어렵게 만든다는 ‘선택의 역설’ 개념을 제시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대형 투자회사인 밴가드의 내부 자료를 분석한 내용을 한 사례로 소개한다. 밴가드 직원이 고객에게 추천펀드 수를 늘릴 때마다 고객의 가입비율은 오히려 줄어들더라는 것이다.
‘선택의 역설’ 현상은 컬럼비아 대학 아이엔가 교수의 그 유명한 ‘잼 구입 실험’에서도 확인된다. 마트에서 6종류의 잼이 진열된 시식코너를 지나는 손님들은 30%가 잼을 구입했지만 24종류의 잼이 진열된 곳을 지난 손님들 가운데 잼을 구입한 사람은 3%에 불과했다. 선택할 수 있는 여지가 지나치게 많으면 오히려 만족도가 떨어지고 심지어 선택을 포기하기까지 한다. 과잉은 모자람만 못하다는 역설이 여기에도 적용된다.
대학합격 통보시즌이 끝났다.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은 많은 대학들로부터 잇달아 날아 든 합격통지서들로 두 손이 가득하다. 동부 아이비리그와 서부의 명문대를 비롯해 모두 14개 대학으로부터 합격통지를 받은 한인 우등생도 있다. 땀과 노력으로 풍성한 수확을 거둔 졸업생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하지만 모두가 이런 기쁨을 맛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집 근처 그저 그런 대학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야 하는 처지의 학생들이 훨씬 많을 것이다. 내심 기대했던 대학으로부터 합격 통지서를 받아들지 못한 학생들은 우울할 수도 있다.
이처럼 희비가 엇갈리고 있지만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는 법이다. 수많은 명문 대학들로부터 합격 통지를 받았어도 갈 수 있는 대학은 결국 한 곳뿐이다. 합격통지서들은 쌓아둘 수 있는 재산이 아니다. 두 손 가득 쥐고 있는 합격 통지서들 가운데 단 하나만 빼고는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다.
슈워츠 교수는 선택 가능한 옵션들의 가치가 높을수록 포기한 것들에 대한 기대감과 미련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버림으로써 발생하게 되는 ‘기회비용’ 때문이다. 예일과 스탠포드 중 한 곳을 포기해야 할 때와 칼스테이트 LA와 롱비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경우를 비교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이들이 부러워하는 선택에도 이렇듯 감정의 대가가 뒤따른다. 그러니 원하던 결과를 얻지 못했다고 너무 실망만 하지는 말기 바란다.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다는 것은 그만큼 결정이 쉽고 용이하다는 뜻도 된다. ‘선택의 역설’로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주어진 것에 집중하고 노력하면 된다.
궤변처럼 들릴지 모를 이 조언 속에도 일말의 타당성은 있다. 세상 모든 일에는 양면이 있음을 다시 한 번 기억했으면 한다. 대학 입학은 단지 하나의 단계일 뿐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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