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영 라디오방송, NPR이 한국의 ‘먹방’을 소개했다. 아침 출근길에 방송을 듣고 있는데, 한인들에게도 낯선 한국말 ‘먹방’이 미국방송에 나와서 반갑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먹방’은 ‘먹는 방송’의 줄임말. 어떤 특별한 음식이나 조리법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고 먹기 대회를 하는 것도 아니다. 말 그대로 누군가가 먹는 장면을 보여주는 방송이다. 웹캠과 마이크, 컴퓨터만 있으면 누구나 방송을 할 수 있는 인터넷 개인방송, 아프리카TV에 몇 년 전 등장한 후 지금은 ‘먹방 대세’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인기라고 한다.
스토리나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꾸역꾸역 먹는 모습에 사람들이 왜 끌리는 걸까. NPR에 소개된 ‘애봉이’라는 BJ(브로드캐스트 자키)의 녹화 방송분을 유튜브로 보면서 생각해보았다. 웹캠 앞 비좁은 테이블에 대여섯명 먹을 분량의 음식을 좍 차려놓고 그는 먹기를 시작했다. 라면을 후루룩, 김밥을 쩝쩝, 뜨거운 국물을 호호 하며, 간간이 음식 소개를 하며, 여성은 먹고 또 먹었다.
생방송은 매일(주말 제외) 밤 9시부터 12시까지 진행된다고 한다. 실시간으로 채팅도 하면서 그의 폭식에 동참하는 시청자는 매번 1,000명 이상. 덕분에 그는 본업 보다 ‘먹방’ 부업 수입이 더 좋다고 한다.
그 여성이 입이 터져라 음식을 밀어 넣고 먹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처음에는 거부감이 일었다. 아무 내용도 없는 걸 시간 들여 본다는 자체가 마음에 불편했다. 그런데 5분, 10분 보다보니 계속 보게 만드는 묘한 중독성 같은 것이 있었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얼마나 살이 찔까 걱정도 하지 않으며 마냥 먹는 모습에서 어떤 친숙함이 느껴졌다. 식구들이 둥근 상에 비좁게 둘러앉아 우적우적, 쩝쩝 거리며 밥을 먹던 푸근하고 친근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가 있었다. 우리가 잃어버린 느긋한 삶에 대한 그리움 같았다.
1인 가구 증가로 혼자 밥 먹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뭔가를 먹으려면 죄책감부터 드는 젊은 여성들의 다이어트 강박증이 ‘먹방’의 인기요인으로 분석되고 있다. 혼자 저녁 먹는 사람들은 인터넷 저편의 누군가를 보며 함께 먹는 듯한 느낌을 갖고, 몸매 걱정에 먹지 못하는 여성들은 누군가의 폭식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낀다는 것이다.
어떤 근원적 허기가 ‘먹방 대세’의 배경이라면, 채워지지 않는 허기로 인해 대세를 이루는 것이 또 있다. 성형수술이다. 생긴 그대로에 만족하지 못해서, 여기 저기 칼을 대는 일이 한국에서는 일상화했다. 쌍까풀 수술 정도는 아이가 중고등학교 때 으레 해주는 것으로 되어있고, 중년여성들에게 보톡스 주사는 영양크림 바르는 정도로 가볍다.
취업과 결혼을 앞둔 20대에게는 특히 성형 압박감이 크다고 한다. 외모는 경쟁력, 성형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는 인식이 갈수록 보편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이 인구대비(2011년 기준, 1000명 당 13.5건) 세계 1위의 성형대국이 된 배경이다. 서울에 사는 여성 중에서는 3~5명 중 한명, 20대 여성 중에서는 두 명 중 한명이 성형수술을 받았다는 조사도 있다.
한국이 압축 고속성장하면서 갑자기 늘어난 경제적 여유, 갈수록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감, 남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조밀한 인간관계, 남들 다하면 나도 기어이 해야 하는 경쟁심리, 그리고 한류 열풍 등이 작용하면서 ‘성형 대세’를 만들어 내는 것 같다.
미국도 성형수술이 ‘대세’이기는 마찬가지다. 2011년 기준, 인구대비로는 4위(1000명당 9.9건), 수술 총량으로는 1위(311만 건)이다. 외모에 대해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말이다.
비누회사인 도브가 지난 2013년 외모에 대한 여성들의 자의식을 조사하는 실험을 했다. 여성들이 각자 자신의 얼굴 모습을 설명하면 몽타주 화가가 커튼 뒤에서 듣고 그대로 스케치를 했다. 이어 화가는 그 여성을 처음 본 사람이 설명하는 대로 또 스케치를 했다. 결과를 보면 같은 여성을 그린 두 개의 스케치가 상당히 달랐다. 본인의 설명 보다 제3자의 설명에 따른 얼굴모습이 훨씬 아름다웠다. 여성들이 자신의 외모에 대해 상당히 부정적이라는 결론이다. 도브는 실험과정을 담아 ‘진짜 아름다움 스케치’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 발표했었다. 여성들이 외모에 자신감을 갖도록 하기 위한 캠페인이었다.
심리적 허기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삶은 내내 고달프다. 사람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쌍까풀이나 높은 코가 아니라 뇌라는 사실을 명심하자. 자신감만큼 사람을 빛나게 하는 요소는 없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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