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정책이 폭력에 미치는 영향을 오래 연구해 온 제임스 길리건 교수는 재소자들을 상대로 한 심층 인터뷰를 수도 없이 해왔다. 길리건 교수는 자신이 인터뷰한 범죄자들이 진짜 범행 이유를 설명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한 표현은 “그가 나를 깔보았다”였다고 들려준다. 한 범죄자는 살인을 통해 무엇을 얻고 싶었느냐는 질문에 ‘자부심, 존엄, 자존감’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그는 또 한 가지, 은행 강도들이 돈 때문에 범행을 저지르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더 강하게 작용한다고 밝힌다. 그러면서 “누군가에 총을 겨눴을 때만큼 내가 존중 받아본 적은 없다”는 한 재소자의 진술을 인용했다.
다른 이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인간의 기본 욕구다. 고고성을 울리며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부모와 친구들, 그리고 사회의 인정을 받으려 안간힘을 쓰며 살아간다. 이런 인정욕구는 우리를 행동하게 만드는 강력한 동기이다. 대개의 경우 인정욕구는 더 나아지도록 스스로를 채찍질하는 긍정적 힘이 된다. 하지만 비뚤어진 인정욕구에 사로잡히게 되면 거짓과 기만, 범죄까지 서슴지 않는다. 그것은 파괴적 결과를 가져온다.
김기종이라는 이름의 시대착오적 사고를 가진 극단주의자가 지난주 주한 미국대사를 칼로 공격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사건 발생 후 배후를 추측하는 보도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그에 대한 주위의 평가와 증언들을 종합해 볼 때 빗나간 인정욕구가 초래한 개인의 일탈행위로 보여 진다.
김씨는 한 때 꽤 알려진 운동단체를 이끌었지만 그의 과격한 언행에 부담을 느낀 주변 사람들이 떠나면서 사실상 1인 단체로 전락한 상태였다. 그는 이런 무관심을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몇 년 전부터 이상 돌출행동을 계속해 온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병든 욕구의 표출이었다. 물론 이런 행위들은 그의 소외를 더욱 가속화 시켰을 뿐이다.
그런데 사건이 일어나자 집권세력은 이를 ‘종북몰이’용 카드로 적극 활용하려는 속셈을 숨기지 않고 있다. 수사를 차분하게 지켜보자는 야당에 대해 집권당은 ‘종북숙주’라는 원색적 표현까지 사용하며 색깔론을 제기했다. 또 서울 한복판에서는 이성적 사회의 모습이라 보기 힘든 일들이 이어졌다. 대사를 위한 기도회에서 난타와 부채춤이 공연되고 서울 중심가에서 한복을 입은 주부들이 미국 대사관 쪽을 향해 사죄의 절을 올리는 광경은 ‘숭미’라는 말로도 부족한 과공의 극치였다.
나는 세 가지 요소가 현재 한국사회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고 본다. 안보 면에서 가장 큰 위협은 물론 북한이다. 또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가계 부채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경제 시한폭탄이 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한국사회를 위협하고 있는 또 하나의 병리는 극단주의의 확산이다.
김기종으로 대표되는 병든 극좌 못지않게 병든 극우들에 의한 일탈 역시 더 이상 방치하기 힘든 수준에 이르고 있다. 일베에 의한 세월호 희생자 어묵 비하라든가 단식을 조롱하기 위한 폭식투쟁, 고등학생에 의한 황산투척 같은 게 대표적이다. 이것들 역시 비뚤어진 인정욕구에서 비롯된 치기 어린 행위들이다.
병든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공통점은 관심에 목말라 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들은 비난조차 관심으로 받아들이며 이를 피학적으로 즐긴다. 일베 회원들이 비난을 개의치 않고 얼굴을 드러낸 채 벌인 폭식투쟁은 이런 피학적 성향이 집단적으로 드러난 사례였다. 지난주 휠체어에 앉은 채 영장 실질심사를 받으러 법원에 들어가던 김기종은 눈을 감은 채 묘한 미소를 흘렸다. 그의 미소에서는 관심 끌기에 성공했다는 만족감이 읽혔다. 극과 극은 통한다는데 병든 극우와 병든 극좌는 서로를 너무나 닮아 있다.
합리적인 사고능력을 잃은 채 극단으로 치우치는 대한민국 국민들이 점차 늘어나는 데는 정치인들과 언론의 책임이 절대적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목적을 위해 인정욕구에 목말라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적극적으로 선동하고 동원한다. 그러면서 한국사회는 더욱 더 멍들고 곪아 간다. 각종 규탄집회마다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내는 피곤한 표정과 허름한 행색의 참가자들을 볼 때 서글픔과 함께 분노가 치미는 것은 이 때문이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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