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대1로 싸우면 이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상대 후보 개인이 아니라 그 뒤에 있는 시스템과 싸우는 것이니 어렵지요.”
3월3일 LA시의원 선거에 출마한 데이빗 류 후보는 지난 몇달 선거운동을하면서 체중이 10여 파운드 줄었다고 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오전에는 회의와 전화 캠페인, 오후에는 가가호호 방문, 저녁에는 포럼이나 토론회 참석 그리고는 그날 일 마무리하고 집에 돌아오면 보통 밤 12시. 새벽 한두시에 잠자리에 들어 너덧 시간 눈 붙이고 나면 다시 또 일정 빡빡한 하루가 시작된다. 말 그대로 고난의 행군이다. 살이 안 빠지면 이상한 일이다.
2015년 LA시 선거는 한인사회로 볼때 의미가 있는 선거이다. 어렸을 때이민와서 미국교육 받고 한인 커뮤니티에서 오래 봉사해 양쪽 사회와 문화를 잘 아는 1.5세 젊은이 두명이 시의원 선거에 출마했다. 4지구에 출마한류 후보와 10지구에 출마한 그레이스 유 후보이다. 나이 마흔 전후, 미혼, 정계 첫 도전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이들은 각자 지역구에서 ‘무명’의 핸디캡을 이겨내며 어려운 싸움을 싸우고있다.
후원금 모금, 자원봉사자 확보 등 하나부터 열까지 쉬운 게 없지만, 결정적 어려움은 거대한 정치조직에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류 후보는 말한다. 탐 라본지 현 시의원이 임기제한으로 물러나면서 무주공산이 된 4지구에는 10여명이 출마해 현재 대여섯명이 막판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류 후보는 라본지 의원의 수석보좌관 출신인 캐롤린 램지, 케빈 드 레온 주상원의장(민) 보좌관 출신인 스티브 베레스 후보들을 예로 든다. 자신이 맞서는 상대는 사실상 라본지 정치조직, 주의회 민주당 조직이라는 것이다.
그레이스 유 후보는 막강한 정치세력에 직접 도전장을 던진 케이스이다.
10지구에서 3선에 나선 허브 웨슨 시의장은 LA의 뿌리깊은 흑인 정치계보를 잇는 대표적 로컬 정치인이다. 1963년 톰 브래들리가 시의원이 된 후 50여 년간 흑인 시의원이 전통으로 굳어진 10지구에서 웨슨 지지는 거의 절대적이다. 지난 2007년 선거에서는 99.7%의 몰표를 받았을 정도이다.
그처럼 강고한 기존 정치세력에 도전하는 1.5세 후보들을 보며 1세들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라고 안타까워한다. 고생하는 자녀를 보는 부모의 심정이다.
계란을 던진다고 바위가 깨어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계란은 바위에 흔적을남긴다. 노예해방도, 여성 참정권도, 유색인종의 민권도 시작은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150여년 전만 해도 노예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 없었다. 100년전에는 남녀가 같이 투표하는 세상, 50년 전에는 흑백이 평등한 세상을 생각할 수 없었다. 그 각각의 부당함에 대한 지적, 항의, 시위는 공고한 기존질서에 대한 어설픈 도전으로 간주되었다.
그런 도전의 흔적들이 이어져서 세상은 바뀌었다.
데이빗 류와 그레이스 유 후보는 ‘계란으로 바위치기’라는 비유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제는 아시안 시의원이 등장해야 할 때, 한인 유권자들이 똘똘뭉쳐 투표하면 승산이 있다고 그들은 믿고 있다. 투표율이 10여 % 정도로 저조할 전망이니 한인 표가 결집되면 위력이 커진 다는 계산이다.
LA시 선거 투표율은 낮아도 너무 낮다. 지난 2013년 시장 선거 당시 투표율은 23.3%, 에릭 가세티 시장은 등록유권자 10명중 한 두명(12.4%)의 지지, 총 22만2,300표로 당선되었다. 근 400만 인구를 가진 도시에서 극소수가 시장을 뽑은 격이다. 인구가 훨씬 적었던 1933년 시장선거 이후 가세티는 LA 사상 최소 득표 시장으로 기록된다. 시민들이 기어이 투표소로 향할 만큼 어떤 절박함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원인이다.
LA 시장 선거 투표율이 76%에 달한때가 있었다. 1969년 톰 브래들리가 백인 현직 시장 샘 요티에 도전한 때였다.
흑인들은 말 그대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절박한 심정으로 모두 투표소로 향했던 것 같다. 그해 바위는 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다음 선거인 1973년 브래들리는 LA시 사상 최초의 흑인 시장이 되었다.
한인 유권자들의 가슴에도 어떤 절박함이 있었으면 한다. 유태인, 흑인, 라티노 등 소수계는 저마다 정치조직이 있어 날로 정치력을 확대하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 조직이 없다. 우리도 언젠가는 백악관에도 연방의회에도 진출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번 LA 시의원 선거가 그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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