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숙 <전 ESL 교사>
젊은 시절, 1년 반 정도를 수도생활을 하다가 접고 사회로 돌아오니 왜 그리 적응이 안 되던지…. 곧 노처녀의 딱지가 붙게 생겼고 다른 동기들은 이미 가정을 가졌거나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어 다니고 있었기에 열등감이 생겼다.
교사를 했었지만 가르치는 일은 접고, 어느 작은 무역 회사 영업부의 공채시험에 응했는데 여직원은 혼자였다. 40대 1의 경쟁을 뚫고 취직이 된 기쁨도 잠시, 한 달 뒤 월급을 받고 보니 나와 같이 채용된 남자 직원들과 많은 차이가 나서 얼마나 속이 상하던지 옥상으로 올라가 울고 말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2년간 교사로 있었을 때는 체험 못했던 일이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회사 운영이 부진한 것 같아 채용은 되었는데 하는 일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이것 역시 내게는 양심이 편치 않아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일이 없어서 어렵사리 출근하는 중에 다른 어려움도 있었다. 대학을 나온 여성은 나밖에 없는데 여고 여사환들이 내게 하는 차별 대우였다. 책상을 닦을 때나 커피를 타다 줄 때 고교 출신의 나이든 여자경리에게는 타다 주고 책상도 닦아주면서 ‘여성이니 네가 알아서 해라’는 식으로 꼭 내 몫은 빼놓았다. 물론 그들은 내가 입사하기 전에 있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어려움 중에 단하나 위로되는 일은 내 직속상관인 영업부 과장이 좋은 분이라는 것이었다. 사장에게서 상무, 부장, 과장 평사원으로 책임 추궁이 내려올 때도 우리 영업과장만은 한 번도 사원에게 싫은 소리를 하지 않았다.
주의 줄 일이 있다면 과장이 웃음 띤 얼굴로 무안하지 않게 가르쳐 주곤 했다. 내게 잘해서 호감을 갖게 된 것은 아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부인에게서 전화가 오곤 했는데 전화를 받을 때 목소리가 갑자기 낮아지면 집의 전화라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싫어하는 내색이나 회사로 전화를 걸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것은 못 들었다. 찡그린 얼굴이나 싫은 소리를 하지 않는 것도 특이했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장의 장점은 따로 있었다. 다른 회사의 급사들이 심부름 올 때 그는 아주 온화하고 친절하게 그들을 맞이했다. 늘 무엇인가 그들에게서 새로운, 좋은 것을 발견해서 말해주었다. 이를테면 ‘미스터 김, 오늘 입은 셔츠가 아주 잘 어울리는데… ‘, ‘미스터 리, 그 구두 어디서 샀지? 아주 보기 좋아’하는 식이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그들이 전할 물건을 전하고 떠날 때는 꼭 복도까지 따라가서 배웅을 하곤 했다. 급사를 완전히 V.I.P.를 대하듯 했다. 그는 불과 나보다 세살 위인 만 30세였다. 그런 과장의 태도를 몹시 부러워하면서도 40년이 지난 지금조차 나는 조금도 그런 태도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그 과장의 훌륭한 모습은 내 마음속에 아름답게 새겨져 있었다.
작년에 인터넷에서 장난삼아 서치하는 란에 내 이름을 치고 돌아다니다가 기억에도 또렷한 ‘정재훈’이란 유튜브를 발견했다. 사진이 있었기에 별로 변하지 않은 모습을 보고 얼른 알아볼 수가 있었다. 그가 유튜브에 뜬 이유는 부인의 이름이 나와 같았기 때문이다. (성은 달랐겠는데 둘 다 정씨와 결혼해서 이름 석 자가 같게 되었다) 부부동반으로 전도를 하고 다닌 모습이 내게 잡힌 것이다.
점차 알고 보니 나사가 주목하고 우주왕복선의 결함을 발견해서 챌린저, 콜롬비아처럼 폭파되는 것을 막는데 일등 공헌을 했다는 세계적인 우주과학자, 정재훈 박사이다. 무척 반갑고 부럽기도 했다. 그 뒤로 연락을 조금 하게 되어 디비드를 받게 되었는데 여러 가지 장점이 있었지만 160명 되는 직원들(한국인은 정사장 혼자임)은 한결같이 그가 화를 내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 가장 부러웠다. 어떻게 어려운 회사운영을 하면서 온화하게 직원들을 한 결같이 대할 수가 있겠는가 말이다.
또 하나 신기한 것은 젊은 시절, 아니면 소녀시절, 내가 참으로 좋게 본 이들을 어떻게든지 향방을 알게 되더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들은 한결같이 사회에서 대단히 선한 일을 하고 있음을 또한 알게 되는 것, 이것도 크나큰 기쁨인데 사람을 좋아하는 내게 하느님께서 특별히 마련해주시는 큰 선물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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