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어 갈수록 여러 기능들이 퇴보하면서, 세심히 돌보아 주고 사용을 달리해야 하는 몸의 부품들이 자꾸만 늘어난다. 나의 경우, 큰 골칫거리 중의 하나가 잠자리에서의 이명이다. 조용할수록 그리고 그 소리에 집중을 할수록 이명의 존재는 더욱 기승을 부린다.
그런데 여기에 갱년기까지 겹치니 평소 불면증이 약간 있던 상태에서 4,5부 작이 보통인 조각 잠 아니면 완전 불면증으로 발전해 내 일상을 송두리째 흔들기 시작했다. 잠자리에 들기가 점점 불안해지고 이런 긴장감까지 더하니 이명은 더 큰 골칫거리가 되어갔다.
긴장감과 이명을 잊고 편히 잠들 수 있도록 도와 줄 편안한 소음이 절실해 졌다. 이런 저런 시도 끝에 자리 잡게 된 도우미들 중 가장 효과적인 프로그램이 한 뉴스 팟캐스트였다. 그런데 갑자기 이 프로그램이 없어지게 되었다. 정확히 얘기하면 주인공이 하차하게 되면서 비디오 팟캐스트는 없어지고 오디오 프로그램만 남게 된 것이다.
잠자리용이기도 하지만 아침 재생용이기 때문에 오디오만으로는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그리고 그 주인공과 지난 몇 년간 일방적이나마 쌓아온 친숙함 때문에 섭섭하기도 했다. 그 주인공이 바로 NBC 밤 뉴스의 앵커 겸 편집 책임자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앵커로 꼽히던 브라이언 윌리엄스이다.
윌리엄스는 지난 2012년과 2013년 ‘데이빗 레터맨 쇼’에 출연해 이라크 전쟁 취재 중 자신이 탄 헬기의 피격 일화를 소개하면서, 2003년 이라크 전쟁 취재 당시 “야간 비밀작전을 수행하는 해군 특전단(네이비실)의 ‘팀6’ 요원들과 함께 헬리콥터를 탔었”고 “빈 라덴 제거 작전 때 부서진 헬리콥터의 한 조각을 기념품으로 받기도 했다’고 말한 것으로 언론들은 전했다.
그러나 해군 특전단 관계자들은 “언론인을 포함해 어떤 민간인도 작전 중인 특전단원과 같은 비행기에 탈 수 없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결국 윌리엄스는 당시 자신이 탑승한 헬기를 혼동했으며 상황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했노라 사과를 하게 되었고 NBC측은 그에게 6개월 정직처분을 내렸다. 그리고 그의 다른 발언들에 대해서도 그 진위여부가 논란이 되었다.
윌리엄스의 ‘거짓말 논란’을 접하며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속 시원하고 부럽다’ 였다. 물론 거의 매일 아침과 밤에 듣던 친숙한 이가 사라지는 섭섭함도 컸다. 하지만 언론인이기에 더욱 막중한 이‘거짓말’에 대한 처벌이 너무도 속 시원했다. 그리고 이 당연한 처분이 실제로 행해진다는 사실이 부러웠다. 이렇게 책임소재가 규명되는 당연함이 아마 많이 그리웠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윌리엄스의 사과에 등장하는 ‘기억의 오류, 오작동’도 흥미로웠다. 기억은 ‘마음 내키는 곳에 드러눕는 개와 같다’는 어느 심리학자의 말이 생각이 났다. 한마디로 제 마음대로 라는 얘기다. 주인이 원하는 곳에 자리 잡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가 지우고 싶은 기억은 꼭 붙어 있다가 시도 때도 없이 불거지고, 원하는 기억은 어느새 연기처럼 사라져 버리고 없다. 불안정하다 못해 과장되고 왜곡되고 또 지워진다. 그리고 이렇게 남아있는 기억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지금의 나라는 존재인 것이다. 어쩌면 ‘기억’이라는 정체에 대해 모든 것이 확실히 밝혀질 때까지는 이 불완전한 기억과 함께 잘 지내봐야 할 것이다.
내 기억에 조심하고 남의 기억 또한 조심해야 할듯하다. 그리고 내 기억에서 오류나 오작동이 발견되면 그냥 넘기지 말고 그 이유를 반드시 살펴봐야 하겠다. 이런 이유로 관계나 시스템과 문제가 발생하면 그 결과에 책임을 지면서 배워나가고 말이다.
어쩌면 내 정신건강을 점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내 기억의 작동현황을 살피는 작업인 듯싶다. 문득, 내 기억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충동이 생긴다. 하지만 너무 지나쳐 수면방해로 이어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경고가 곧 이어 떠오른다.
수면장애가 내겐 아주 큰 이슈임에 틀림이 없다. 앞으로는 무엇을 수면 친구로 삼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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