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창흠(논설위원)
윤흥길 작가의 소설 ‘완장’의 주인공 임종술. 그는 반거충이며 날건달과 다름없다. 어느 날 교도소에 다녀온 뒤 고향으로 내려온다. 그 때 부동산 투기로 돈을 번 졸부의 눈에 든다. 그래서 저수지 감시원이란 ‘감투’를 쓴다. 낚시꾼을 쫓아내는 ‘완장’을 차게 된 것이다. 그러더니 사람위에 군림하고, 행패를 부린다. 그것도 감투라고 안하무인으로 날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가 뒤늦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완장을 저수지에 버리고 떠난다.
소설 속 주인공은 완장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완장을 감투로 믿고 권력을 휘두르기도 한다. 작가는 그런 권력의 의미와 허상을 풍자적으로 표현했다.
‘완장’은 별것 아닌 권력을 으스대는 꼴을 비하할 때 쓰는 상징적 용어다. ‘감투’는 벼슬을 속되게 이르는 말을 의미한다. 결국 완장이나 감투의 의미는 부귀영화나 권력의 무상함을 역설적으로 대변하는 용어가 아닌가 싶다.
완장과 감투에 어리석은 사람은 소설 속 주인공만은 아니다. 한인사회에도 얼마든지 있다. 한인회, 직능단체, 사회봉사단체 그리고 종교단체 등에 이르기까지 헤아릴 수가 없다. 어깨에 힘 좀 주는 회장, 이사장, 사장, 위원장 등 소위 한인사회의 장(長)들. 그들 중에는 ‘벼락감투’를 쓰고 완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 있다. ‘감투싸움’을 하며 ‘한 지붕 두 가족’을 만드는 이들도 부지기수다. 어제 오늘의 문제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감투를 아름답게 내려놓는 장들의 모습이 그립다.
조그마한 권력이라도 잡으면 휘두르고 싶은가 보다. 닭 벼슬만치도 못한 감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더 심하다. 알량한 완장 하나 차고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더욱 기고만장이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 못하고 안하무인의 행동을 보인다.
쥐뿔도 없다가 완장하나 얻어 차니 180도로 돌변한다. 장도 아닌 자리하나 맡은 것도 감투라고 거들먹거리니 볼썽사납다. 권력을 내세워 군림하려는 꼬락서니는 눈뜨고 못 볼 지경이다. 이외수 작가가 “소인배들은 완장을 착용하게 되면 갑자기 자신을 영웅시하여 권력을 악용하고 타인을 멸시하려는 습성을 가지게 된다”는 말이 딱이다.
“감투가 크면 어깨를 누른다”는 속담이 있다. 제 능력보다 과분한 지위에서 일을 하게 되면 감당하기 어려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헌데, 요즘 한인사회는 어떤가? 감투가 커서 감당을 못하는 이들이 있다.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이들이 작은 감투라도 꼭 쓰려고 애를 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는 한심하다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오래전부터 한인들의 ‘감투욕심’은 유별나다. 고질적인 병폐 중에 하나로 자리 잡은 게 바로 ‘감투욕심’이다. ‘감투’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발버둥 친다. 한번 찬 ‘완장’은 절대 벗지 않고 버티려고 한다.
어디 그뿐 이겠는가? 한 번 감투를 썼던 단체장들 대부분은 조용히 물러서지 않는다. 어떻게든 또 다른 ‘감투’를 쓰려고 한다. ‘한인인사’로 계속 불리고 싶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각종 명분을 만들어 감투를 쓰려고 안간힘을 쓴다. 거기서 그치면 그나마 다행이다. ‘감투욕심’이 ‘감투싸움’으로 번질 때도 있으니 그 것이 문제인 게다.
그러다보니 정작 감투를 꼭 써야할 사람들은 나서지 않는다. 감투를 써서도 안 되고, 쓸 일도 없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나대는 모양세가 심히 우려될 뿐이다.
물론, 자신이 속한 단체나 공동체에서 정말 헌신적인 모습을 보이는 한인들도 제법 있다. 감투욕심 없이 열심히 봉사하면서 자리에 연연하지 않고 떠날 때 떠날 줄 하는 한인들도 있다. 언제나 그렇듯, 제 앞가림과 제 할일도 못하면서 자리 욕심만 내거나, 자리만 차고 앉아 행세하는 모습들이 적지 않으니 문제란 말이다.
요즘 한인사회는 뉴욕한인회장과 각종단체장들을 뽑는 선거철이다. 선거에 나선 출마자들은 ‘자리다툼’을 하기보다는 공정한 선거풍토 조성에 앞장서자. 그것이 후보자들이 해야 할 역할이다. 그러면 한인사회의 과열, 혼탁선거도 사라질 수 있다. 그렇게 당선된 회장일수록 ‘완장’과 ‘감투’에 연연하지 않는다. 떳떳하고 최선을 다한 봉사자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 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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