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해영 <병원근무>
“가족이 네 명인데 그중 삼재 있는 사람이 셋이나 되는군요, 조심해야 되겠어요”
오랜만에 친구가 만나자고하며 데리고 나온 멀쩡한 여자가 실은 그 방면에 신이 내렸다던가? 게다가 최근에 신기가 떨어진 듯해서 산에 들어가 다시 신기를 받고 내려온 터라 따끈따끈한 신통력이 기똥차다고 했다.
그리하여 내 운수를 맡겨 보라는 자비심에 데리고 나왔다는 여자가 내가 내민 가족 신상명세서를 들여다보고 거침없이 내뱉은 운수다. “그 삼재라는 것이 뭐예요?”
관운이 없어 감옥에 가는 일, 질환이 생겨 병원에 가는 일, 재산을 잃는 일.
이 세 가지 악재가 삼재라고 한단다.
그냥 싸악 덮어 버리고 웃어버리기에는 무언가 마음속에 재수 없다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그 거침없는 말투와 눈초리가 마음에 걸리더니 한여름 소나기 먹구름 끼듯 단박에 내 하루 일진을 망쳐 버리고 만다.
가족들의 이름 석 자와 생년월일만 가지고 요 조심 내려진 경고문은 따끈따끈한 신기가 내려진 여자에게 차라리 머리를 조아리고 해결책을 강구 받아 그 삼재라는 것을 피해볼 길을 찾아보는 것이 더 현명하지 않을까?
“그러면 이 삼재를 피할 방도는 없을까요?”
물어보는 내게서 탐색의 냄새를 맡았는지 아니면 별 볼일 없을 것이라는 감을 잡았는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따끈따끈한 신기를 가진 여자는 그것은 오직 내 운세며 그들의 운세며 (삼재에 속해 있다는 가족들) 변할 수 없는 지고의 운명이라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동안 그 방면의 전문가(그녀는 자신을 전문가라는 표현을 썼다)로서 경험했던 갖가지 사연들을 나열하기 시작하였는데 솔깃한 사연도 있고 제법 감동적인 사연 또는 소름 끼치기도 하는 구구절절 언변이 참으로 화려 하였다. 그러면서 슬쩍 흘리는 말이 그 삼재를 피하는 길이 사실인즉 있으며 어떤 사람은 자신의 처방을 준수한 결과 딴 사람들이 무더기로 당한 악재 속에서 한 겨울의 푸른 소나무같이 청청하게 살아남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 처방은 약국에서 처방전으로 살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고 나쁜 귀신이 싫어하는 어떤 부적을 자신이 직접 조제하는 것이라 했다. 그것이 본론인지도 모른다. 친구를 봐서 특별활인으로 싸게 만들어 주겠다고 큰 아량으로 오퍼까지 했는데….
나는 그 특별 할인된 부적을 해서 재앙을 막을 돈도 없고 또 그럴 마음도 없어서 생각해 보겠다고 한 후 헤어졌다.
속으로는 정말 웃기네, 나는 예수 믿는 사람이다. 어림도 없지, 내가 그런데 속아 넘어갈 사람으로 보이냐 하면서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데 고백할 것이 있다. 워낙 마음이 간사한지라 그 이후 살면서 조금이라도 마음속에 언짢은 일이 생길 때마다 혹 그 삼재라는 것이 힘을 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내가 영아부에서부터 고령노인과에 속하는 이날에 이르기까지 전 생애를 예수 믿는다고 하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슬그머니 고개를 드는 것이었다.
굳이 조목조목 따져 보려니까 운전면허를 받은 이래 단 한 번도 티켓을 받아본 적이 없는 운전 경력이 무색하게 3개월 사이에 두 장의 속도위반 티켓을 받아 포인트라도 감량을 받을 양으로 난생 처음 타운의 재판소를 출입하게 된 일이나, 어디에선가 지갑을 잃어버린 일, 한 겨울을 지나며 온 가족이 골고루 유행성 독감을 앓고 보니 그것이 삼재에 속한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손해는 될 수 있는 대로 안보고 사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진리대로 이 삼재라는 것이 내게 감사라고 하는 이익을 가져다 준 것이다.물론 가족 중에 관직에 있는 사람이 없는지라 관운이 나빠 감옥에 갈일은 애초에 없지만, 그래도 감옥이 바로 옆에 붙어있는 타운 재판소에 다녀옴으로 액운 하나를 때워서 감사하고, 워낙에 쌓아놓은 재산이 없으니 탕진할 재산이 없는 고로 20여 달러와 동전 몇 개가 들어있는 지갑의 분실로 두 번째 액운을 때웠으니 감사하고, 까짓 유행성 독감 앓는 일로 세 번째 액운을 때웠으니 감사하고…
그렇게 감사한 일로 가득 하니 삼재 아니라 삼십재가 와도 두려워 할 일이 없는 것이다. 두렵기는커녕 수십 배의 감사가 가을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할 것인즉 특별할인을 받아 부적이라는 것을 만들어 가졌더라면 얼마나 큰 손해를 보았을 것인가.
재수 없다고 툴툴거렸을 이 일들이 따끈따끈한 전문가(?)덕분에 감사함으로 끝나게 되니 삼재가 아니라 축복의 해라고해도 되지 않을까 결론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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