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말 한국에 갔었다. 한국은 ‘겨울’이었다. 얼음 얼고 눈 내리니 겨울이고, 국민들의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있으니 또 겨울이었다. 대통령과 국민, 여와 야, 진보와 보수, 강남과 강북,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 어느 하나 시원하게 소통되는 구석은 없었다. 흐름이 막힌 사회에서 불어나는 것은 불신과 냉소, 그리고 무게 없는 말들. 확인되지 않았고, 확인할 수도 없고, 확인할 생각도 없는 말들이 넘쳐났다. 한국은 시끄러웠다.
소음 공세는 인천공항에서 차에 오르는 순간 시작되었다. 길을 안내하고 교통상황을 알려주 는 내비게이션의 ‘그녀’가 잠시도 입을 다물지 않았다. 살아가면서 잘못된 길로 가지 않으려면 세 여자의 말을 잘 따라야 한다는 조크를 친구가 전해주었다. 엄마와 아내, 그리고 내비의 ‘그녀’란다.
그런데 ‘그녀’가 이상한 호칭을 붙이며 안내를 했다. “회장님, 500미터 앞에서 좌회전입니다” “회장님, 10미터 앞에 과속 방지턱이 있습니다” … 한마디 할 때마다 ‘회장님’이었다. 과거에는 아무나 ‘사장님’으로 부르던 것이 이제는 ‘회장님’으로 바뀌었나 보다. ‘회장님’ ‘회장님 따님’의 안하무인 행동에 상처받고 분노하는, 그러면서 부러워하는 시민들에게 가짜 만족감을 줘보자는 상술인데 그 자체가 불통으로 경직된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니 씁쓸했다. 대한항공에 상하 소통의 조직문화가 있었던들 ‘땅콩 회항’은 없었을 것이었다.
힘 있는 자들의 오만방자함 앞에서 무기라고는 입 밖에 없는 일반시민들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알맹이 없는 말들, 루머, 가십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사람들 모인 자리마다 빠지지 않는 것이 ‘조현아’였다. 누구도 진실 여부에는 큰 무게를 두지 않았다. 말 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믿어도 그만 안 믿어도 그만이었다. 답답한 마음들을 말로써 풀어내는 것 같았다. 불통즉통(不通卽痛) - 통하지 않고 막혀 있으니 사회 구석구석에 아픔이 많을 수밖에 없다.
불통의 여왕은 단연 박근혜 대통령. 한국의 친구들은 ‘박근혜’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2년여 전 박근혜 대선승리에 환호했던 ‘강남’ 친구들은 입을 다물었고, 낙심했던 ‘강북’ 친구들은 “아직도 임기가 3년 남았다”며 말을 잃었다. 고집스럽게 이어가는 ‘불통’ 통치에 국민들은 체념해 기대를 접고 대통령은 서서히 청와대의 화석으로 굳어지는 게 아닌 지 불안했다.
미국의 전설적 싱어 송라이터 밥 딜런(73)이 새 앨범을 냈다. 반전 등 사회운동 성향의 음악을 하던 그가 이번 앨범에는 50, 60년대의 인기 대중가요만 모은 것이 특이하다. 그리고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얼마나 프랭크 시나트라를 좋아했는 지를 밝혀서 눈길을 끌었다.
“시나트라는 관중을 ‘향해’ 노래하지 않는다. 관중 ‘에게’ 노래한다. 그에게 배워서 나도 항상 누군가 ‘에게’ 노래하려 했다.”고 그는 말했다. 시나트라가 갖는 엄청난 호소력의 비밀을 말하는 것이었다.
가수가 무대에 서서 관중을 ‘향해’ 노래할 때 관중은 그들, 3인칭이다. 반면 관중 ‘에게’ 노래한다면 그들은 2인칭이 된다. 가수와 관중은 ‘나와 너’의 관계가 되고, 노래는 나의 가슴으로부터 솟아나와 너의 가슴 속으로 들어가 그곳에 뿌리 내린다. 완벽한 소통이다.
대화나 연설도 마찬가지이다. 소통의 대가로 꼽히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만나본 사람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클린턴과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는 마치 자신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사람 같은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그만큼 상대방에게 공을 들이며 집중하는 것, 그의 탁월한 친화력의 비결이다.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얼마나 말을 잘 하느냐보다 얼마나 상대방에 귀를 기울이느냐라는 말인데, 대표적인 예가 에이브라함 링컨이다. 위대한 소통의 대통령, 링컨은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나는 주어진 시간의 1/3은 내 입장과 내가 할 말을 생각하는 데 쓰고, 2/3는 상대방의 입장과 그가 무슨 말을 할 지를 생각하는 데 쓴다”고 했다.
내 말을 하기 앞서 상대방의 말을 먼저 듣는 경청의 자세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신뢰가 쌓이고 진실성이 부각되면서 그는 중요한 정치적 합의들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하곤 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소통 미흡’ 때문이라는 여론조사 결과이다. ‘불통’이 문제라는 것은 여론조사 하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전 국민이 아는 사실이다. ‘지구는 둥글다’고 세상 사람들이 다 말하는 데 혼자만 ‘지구는 네모나다’는 ‘수첩’ 들여다보는 일을 그는 언제까지 할 것인가. ‘열 자식 안 굶기는 어머니 마음’으로 ‘국민 행복’ 시대는 언제나 열 것인가. ‘수첩’ 그만 들여다보고 국민들의 마음을 들여다보았으면 한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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