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정부가 몹시 당혹해 있는 모양이다. 한 장의 초청편지 때문에.
광복 70주년이다. 동시에 분단 70주년이다. 그렇지만 광복보다는 분단 70년이 더 무겁게 다가오는 해가 2015년이다. 그 분단 70주년의 해에 한반도 분단의 주체 당사자인 러시아로부터 초청 편지가 날라들었다.
푸틴의 러시아가 오는 5월에 열리는 2차 대전 승리 70주년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의 참석을 요청하고 나선 것이다. 북한의 김정은과 함께. 물론 다른 나라 지도자들도 초청하면서.
그 기념행사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해야 하는가. 가자니 염려스럽고 안 가자니 찜찜하다. 이게 한국정부의 입장으로 이 문제를 놓고 난감해 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이슬람국가(IS)와의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이 우크라이나 사태다.” 뉴욕타임스의 토머스 프리드먼의 주장이다. 미국의, 더 나아가 서방의 가장 중요한 가치관인 민주주의가 걸려 있다. 그게 우크라이나 사태이기 때문이라는 거다.
푸틴 러시아의 도둑정치(kleptocracy)와 유럽형 민주체제, 그 양자 중 민주체제를 선택했다. 이와 동시에 참여민주주의 체제로 거듭나고 있다. 그 우크라이나를 파괴하려들고 있다. 그 사태를 방치하면 러시아접경 친 서방국가들은 모두 위험에 빠지게 된다. 때문에 미국이, 서방이 결코 물러설 수 없는 것이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설명이다.
“우크라이나의 유로마이단 시위는 이집트의 타흐리르 광장 시위와는 양상이 다르다. 진정한 민주시위라는 점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유로마이단 시위는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에 못지않은 자유화 행진의 한 이정표다.” 미국 민주주의진흥재단의 칼 거쉬먼의 말이다.
그 시위 발생 1년여 후. 우크라이나는 새로운 정체성의, 새로운 민주주의 체제로 다시 태어났다. 그 우크라이나가 심각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민주체제로의 변신을 막으려는 푸틴 러시아의 침공 때문이다. 그 침공을 막아내고 우크라이나가 민주체제로 우뚝 설 때 몰려올 민주화 파장은 우크라이나를 넘어 러시아까지 뒤덮을 것이다. 계속되는 거쉬만의 주장이다.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크라이나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유럽연합(EU)의 안보, 더 나아가 미국의 이해와 직결돼있다.” 오픈 소사이어티 재단의 조지 소로스 주장이다.
휴전협정이 무시됐다. 그러면서 또 다시 전운이 짙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사태와 관련해 쏟아지고 있는 논평들이다.
그 논평들이 그렇다. 푸틴은 아예 ‘thug’(흉악범)로 묘사된다. 거기다가 떨어지고 있는 석유가 반등을 위해 군사적 모험을 저지를 수도 있는 위험한 인물, 외교적 협상은 전혀 모르는, 그래서 힘을 통해 콧대를 꺾어야만 양보가 가능한 인물이라는 진단도 따른다.
무엇을 말하나. 푸틴은 결코 세계질서유지의 파트너가 될 수가 없는, 서방의 ‘기피인물 1호’가 됐다는 이야기다. 동시에 나오는 것은 기껏 길어야 2년이면 푸틴시대는 끝날 수도 있다는 진단이다.
경제가 엉망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석유 값은 계속 떨어진다. 이런 정황에서 푸틴은 내부의 모순을 전쟁으로 호도하려다가 망한 제정 러시아, 또 소비에트 러시아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관련해 흥미를 끌고 있는 것이 벨라루스, 아르메니아 등 러시아의 충실한 동맹국들이 모스크바와의 관계를 재고하고 있다는 최근의 보도다. 싱크 탱크 스트랫포의 분석으로 러시아와 서방과의 대립이 심화되면서 푸틴의 오랜 친구들조차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는 거다.
이야기가 길어진 건 다름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나’- 앞서의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찾아지는 것이 아닐까 해서다.
소련군의 북한 점령으로 초래된 게 한반도 분단이다. 그런 데 무엇을 축하하기 위해 분단의 시발점이 된 행사에 분단 장본인이 분단국가 대통령을 초청한 것인가. 그 뻔뻔함에, 무신경이라니….
푸틴은 국제사회 기피인물 1호다. 정치적 장래도 불투명하다. 게다가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과 상당수 유럽 국가들이 러시아 전승 기념행사를 보이콧할 가능성도 높다.
그런 마당에 푸틴이 남북한 평화중재자를 자처하고 나섰다. ‘그런 푸틴 중재로 모스크바에서 60대의 박근혜 대통령이 30대 초의 소년 독재자와 대면을 한다’- 그 그림은 국제사회에 도대체 어떻게 비쳐질까.
한국정부는 대통령의 2차 대전 러시아 승전기념식 참석요청에 분명히 ‘No!’라는 답변을 보내야 한다. 명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국가적 실익에서도 득이 없다. 코너로 몰린 푸틴이 각본과 연출을 맡은 푸틴을 위한 ‘싸구려 흥행극’이 5월의 모스크바 행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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