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 suis Charlie’(내가 샤를리다)-. 유럽의 심장부 파리에 있는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무장 이슬람이스트 과격분자들이 난입했다. 이 최악의 언론테러에 저항해 프랑스는 물론 유럽 전역에서 사람들이 거리로 나섰다. 그러면서 내건 표어다.
이슬람 창시자 무하마드를 풍자한 만평을 실었다. 그 행위를 이슬람의 ‘최고 존엄’에 대한 모독으로 간주했다. 그리고 마침내 무자비한 테러를 가한 것이다.
민주주의의 핵심은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에 있다. 그 핵심적 가치관을 말살하려고 들었다. 폭력으로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을 겁박한 것이다. 그 사태에 경악했다. 동시에 분노했다. 그래서 전 유럽은 들고 일어서 표현과 언론의 자유에 연대 지지를 보낸 것이다.
비판을 수용하지 못한다. 풍자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시대착오적인 집단들이 보이고 있는 특징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태’도 그렇다. 이슬람이스트 극단주의자들의 광신적 행태가 불러온 참사다.
유럽을 공포와 분노로 몰아넣은 최악의 언론테러. 거기에 그런데 한 가지 불길한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느낌이다.
걸핏하면 대한민국의 언론사를 폭파하겠다고 위협한다. 김정은을 모독했다, 논조가 마음에 안 든다 등등의 이유로. 그리고 마침내 코미디 영화 ‘인터뷰’가 김정은을 모독했다고 온갖 위협과 함께 제작사인 소니사에 무자비한 사이버테러를 가했다. ‘최고 존엄’이란 우상 지키기에 광분하고 있는 그 북한체제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것이다.
그 북한을 국제사회는 어떤 시각으로 보고 있을까. “이 지구상에서 가장 극악한 곳이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태 와중에 나온 영국 시사주간지 위크지 보도다. ‘오직 수령과 그 측근들이 창녀나 끼고 시시덕거리며 권좌를 지키기 위해 전 주민은 영구적인 영양부족상태에 방치하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혹평을 서슴지 않은 것.
문화나, 진정한 의미의 교육, 지식에의 접근 등은 완전부재상태다. 그리고 공포만 존재하는 나라, 악이 통치하는 나라가 북한이라는 거다. “온통 거짓이란 기반위에 세워진 나라다.” 유에스 뉴스 & 월드 리포트지의 지적이다. 수령찬양 일색뿐인 거대한 수용소가 북한이라는 거다.
동시에 ‘네오콘’전성시대의 한 유행어가 새삼 회자되고 있다.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타도)다.
세계 최악의 반(反)인륜범죄 국가다. 그래서 유엔이 나서서 그 범죄행위의 수괴격인 김정은을 국제사법재판소에 회부할 수 있는 결의안을 마련했다. 그런데 그 북한이 미국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를 겁박하고 나섰다.
그 북한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그 체제의 존재를 아예 종식시켜야 한다. 레짐 체인지를 통해.” 포린 릴레이션 카운슬의 리처드 하스의 주장이다.
한동안 전략적 자산으로 간주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부담이다. 중국이 북한을 바라보는 시각이다. 그 중국과, 한국, 미국 세 나라가 김정은 체제를 종식시키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 한반도 통일을 이룩하는 것을 미 해외정책의 목표로 명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는 것이다.
한국, 일본, 미국의 안보를 위협한다. 북한주민에게는 더 위해적인 존재다. 더 나아가 반(反)민주주의, 반(反)문명 세력이 북한체제라는 것이 점차 확산되어가는 국제사회의 시각이다.
이와 함께 유엔, 미국의 북한제재 명령 등 국제사회의 공조 노력도 탄력을 받고 있다. 말하자면 반(反)인륜범죄 국가 북한체제에 대한 세계인들의 분노가 높아가면서 김정은의 처지는 사면초가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한국의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남북회담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한 것이다. 그러자 김정은은 신년사를 통해 “최고위급 회담도 못할 이유가 없다”고 한술 더 떴다. 뭐랄까. 한국 내 한 논객의 표현대로 한국정부가 궁지에 몰린 김정은을 돕는 ‘구원투수’ 역할을 한 것이다. 그 갑작스런 대화모드에 국제사회도 어리둥절한 표정이다.
더 괴이한 모습은 한국 언론들의 반응이다. 느닷없는 대화제의에 보수 언론은 일제히 비판의 날을 세웠다. 반면 진보 언론은 정부여당의 그 같은 제의를 지지, 피아간에 혼선을 빚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일이 더 이상하게 됐다. 대한민국 국회가 모처럼 하나가 돼 남북대화촉구 결의안을 가결해 북측에 제시했으나 북한 측이 거부하고 만 것이다.
이를 어떻게 보아야 하나. 대화만능주의가 불러온 사태다. 일부의 지적이다. ‘딴은….’ 그러나 그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인 ‘불통’, 혹은 ‘나홀로’가 불러온 혼선은 혹시 아닐까.
“샤를리 에브도 테러사태는 문명, 그 자체와 문명을 거부하는 자들 간의 충돌로 보아야 할 것이다.” 존 케리 미 국무장관의 말이다. 남북갈등도 같은 측면에서 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대한민국과 대한민국의 존재를 아예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세력과의 갈등으로.
왜 김정은과의 대화에 그토록 안달일까, 국제공조의 틀까지 무시하고. 도대체 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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