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처럼 순한 한해가 되기를 바랐던 기대는 새해 첫 주에 무너졌다. 파리에서 발간되는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에 지난 7일 이슬람 테러범들이 들이닥쳐 처형하듯 총을 쏘아댔다. 이 주간지는 종교나 정치 지도자들을 조롱하고 희화화하는 만평으로 유명한데 특히 단골로 삼은 인물이 이슬람교 창시자인 무하마드였다. 테러범들은 주간 편집회의 시간에 맞춰 사무실에 난입해 편집국장, 만평작가들, 기자들에게 총격을 가한 뒤 “신은 위대하다” “선지자 무하마드를 위해 복수했다”고 외쳤다. 알카에다 소속인 이들로서는 신년의 ‘성전’인 셈이었다.
이날 테러로 12명이 목숨을 잃었고, 테러범 3명 역시 이틀 후 경찰과 대치 중 모두 사살되었다. 이로써 사건은 일단락 났지만 테러가 남기는 파장은 깊다. 유럽이 더 이상 백인들끼리 백인들의 가치와 시각만 가지고 살 수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슬림 인구가 날로 늘고 있는 유럽에서 이번 같은 테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가 있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는 보도에 대한 보복인 만큼 언론의 자유, 표현의 자유에 대한 공격으로 규정된다. 자유 민주주의의 근간인 표현의 자유가 테러 당했다며 전 세계 지도자들과 매스컴들이 규탄의 목소리를 높였다. 대중적 분노도 엄청나서 테러 위협에 굴하지 않고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겠다는 집회가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펜’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총’을 휘두르는 테러는 어떤 상황에서도 용납될 수 없는 야만적 행위이다.
그렇다면 ‘표현의 자유’에 우리는 얼마나 너그러울까? 만약 샤를리 에브도가 벌거벗은 무하마드 대신 엉덩이를 내놓은 예수를 만평으로 그리며 조롱했다면 어떨까? 기독교인이 대다수인 미국사회 그리고 한인사회에서 지금처럼 ‘표현의 자유’만 지지할 수 있을까? 종교적 모욕감을 참지 못한 테러범들의 심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톨레랑스 즉 관용을 내세우는 프랑스라고 다르지 않다. 지난 2011년 봄 아비뇽의 현대미술관에는 수백명의 가톨릭 근본주의자들이 몰려들었다. 망치를 들고 한 사진작품을 가차 없이 훼손한 이들에게 ‘표현의 자유’는 안중에 없었다. 문제가 된 작품은 미국인 사진작가 안드레 세라노의 ‘오줌 예수’.
황금빛과 붉은 빛이 감도는 액체 속에서 십자가상이 은은하게 빛을 발하는 이미지는 아름답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제목을 보는 순간 관람객은 아연실색한다. 작가가 유리병에 자신의 오줌을 받은 후 플래스틱 십자가상을 담그고 촬영한 이 작품은 미국 현대 미술사상 가장 논란 많은 작품으로 꼽힌다. 전시 때마다 ‘신성모독’이라며 기독교 단체들의 반대시위가 이어졌고, 작가와 작품에 대한 테러위협이 끊이지 않았다.
그는 왜 이런 불경스런 작품을 만들었을까? 예술가로서의 ‘표현의 자유’이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통념, 고정관념, 권위에 정면으로 도전함으로써 보는 이에게 충격을 주고, 충격으로 열린 눈으로 사물을 새롭게, 다르게 보게 하려는 것이 예술 작업의 의도이다.
그는 가톨릭 신자이다. 같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 안의 예수를 돌아보게 하려고 이 작업을 했다고 밝혔다. 십자가상이 싸구려 플래스틱으로 대량 생산되며 일개 액세서리로 전락한 현실, 예수의 사랑과 가르침은 뒷전이고 예수 팔아 돈벌이하는 데 급급한 종교계에 대한 비판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예수는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렸지만 우리는 여전히 죄 속에 빠져 살고 있는 상황을 오줌 속 십자가상으로 표현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표현의 자유’가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우리’를 돌아보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의심없이 받아들이는 가치나 권위를 비틀거나 깨트림으로써 때로는 웃음, 때로는 깨달음을 주는 것이 풍자이고 해학이다.
프랑스 주간지의 무하마드 풍자는 ‘우리’가 아닌 ‘그들’의 가치와 권위를 모욕했다는 점에서 문제의 소지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멀리 중동이나 아프리카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파리 교외에 거대한 빈민촌을 이루며 제2의 시민으로 살고 있다는 점이 문제이다. 그래서 프랑스 주류사회에서는 단순한 풍자와 유머일 수 있는 것이 이들 무슬림 이민자 사회에서는 오만과 조롱으로 받아들여질 수가 있다. 미 주류언론이 한인 비하 만평이나 기사를 실을 경우 우리가 풍자로 넘길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험한 것은 알카에다 등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이들 무슬림 청년의 좌절과 분노를 부채질해 이들을 자살폭탄으로 훈련시키려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제2, 제3의 샤를리 에브도 사건이 언제 터질 지 모른다.
다인종 다문화 사회에서 ‘표현의 자유’에는 조건이 따른다. ‘표현’에 앞서 ‘다름’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표현의 자유’와 ‘조롱의 자유’는 다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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