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해. 정말로 잘 못 했다. 그리고 사랑해…” 모두가 마음으로 미안해했다. 살아있다는 것을 죄스러워했다. 그리고 무력감에 사로잡혔다. 정작 사과해야 할 사람들은 피하거나 마지못해 하는 데 많은 사람들이 진정으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펴보지도 못한 꽃봉오리들이 차가운 바다에 가라앉았다. 모두가 눈뜨고 멀쩡히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2014년 4월16일에 일어난 일. 그 세월호 사건에 너무 가슴이 먹먹해서였다.
2014년 1월, 2월, 3월. 그 나날들은 기억의 캘린더 속에 하얀 백지로 남아 있다. 세월호참사가 너무 큰 충격으로 다가온 탓일까. 세월과 함께 그러나 그 충격이 피로감으로 바뀌면서 망각되어간다. 그 타이밍에 찾아든 것이 청와대 문건파동에, 대한항공 ‘땅콩리턴’사태다.
비정상의 연속이랄까. 파란이 꼬리를 물고 있다고 할까. 그게 멀리서 보이는 대한민국의 2014년이다. 그 2014년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뻔뻔함과 혐오감이다. 소통부재다. ‘갑(甲)질’이다. 여기저기서 나오는 한탄이고 지적이다.
기득권층은 스스로의 스테이터스에 대한 자신감이 지나쳐 뻔뻔할 정도다. 그 뻔뻔함을 바라보는 비(非)기득권층의 시각은 혐오감으로 가득 차 있다.
비행기든 국가든 내 것으로 여긴다. 그런 분위기에서 쌍방소통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오너의 일방적 지시만 있을 뿐이다. 경직된 상황에서 주위 사람들이 감히 한마디도 못하는 불통분위기가 자연히 형성되는 것이다. 청와대문건 파동과 대한항공 ‘땅콩회황’- 그 두 사태를 본질상 동종의 사건으로 보면서 제기되는 지적이다.
극단적인 갑을(甲乙)관계의 사회가 대한민국 사회다. 그리고 그 ‘갑질’의 대명사로 떠오른 사람이 대한항공의 조현아 부사장이다. 국민의 눈높이를 모르는 오만한 권력이다. 또 다른 측면에서의 문제제기다.
2014년의 대한민국. 그 키워드는 무엇일까. 다시 한 번 질문을 되뇌어 본다. ‘뻔뻔함’, ‘불통’, ‘갑질’…. 한 가지가 더 있다. ‘야만성’이다.
어린이 행복지수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가운데 꼴찌인 나라. 사회통합지수가 최하위인 나라. 경쟁과 성공만을 최고가치로 여기는 나라. 자살률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대한민국이 보이고 있는 지표들이다.
이 각종 지표의 뒤에서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야만성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정치제도다. 동시에 삶의 방식이다. 하나의 문화인 것이다. 선거제도가 보장되어 있다고 해서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다. ‘열린’(open), ‘관용적인’(tolerant), ‘공정한’(fair)사회가 민주 사회다.
그런 면에서 민주주의는 하나의 문화인 동시에 도덕적적인 사회다.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乙)에 처한 사람은 쓰레기처럼 폐기되는 그런 사회가 아니다. 자유와 동시에 평등 그리고 평화라는 세 가지 이상을 함께 구현하는 사회다.
“정치와 언론자유로만 평가되는 게 아니다. 공정한 선거로만 평가되는 것도 아니다. 정부가 얼마나 유능한가, 또 책임감이 있는가도 정치적 민주화의 중요 잣대다.” 하버드대학의 벤저민 프리드먼의 말이다.
무능했다. 거기다가 무책임했다. 그러면서 아랫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대한항공 ‘땅콩사태’에서 재벌그룹이 보여준 모습이다. 청와대문건 파동, 그리고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세월호 참사에서 권력이 보여준 행태도 다를 게 없다.
민주주의는 삶의 방식이고 문화다. 그런데 그 민주적 가치가 내화되어 있지 않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경제권력’은 물론 정치권력 그리고 심지어 ‘문화권력’마저 ‘문화맹’(盲)에 가까운 게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아닐까하는 것이다.
새삼 한 가지 단어가 떠올려진다. ‘시빌리티’(civility)란 말이다. 정중함, 공손함 등 단순히 시민으로서의 교양이나 품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 본질은 황금률-남에게 대접받고 싶으면 그만큼 대접하라-에서 출발한다.
겸손, 관용, 정직성, 민주성, 합리성 등이 모두 포함된 문명성과 선진성의 총체적 개념으로 시빌리티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초석이고 한 나라의 국민, 국격의 수준을 나타낸다. 미국적 시빌리티의 상징은 미국인들의 입에 밴 ‘익스큐즈 미’(Excuse me)에서 찾아진다.
여기서 한 번 상상을 해본다. ‘세월호 참사를 맞아 하루라도 빨리 함께 아파하는 보통 사람들 정도만이라도 권력이 사과를 했더라면’, ‘청와대 문건사태에서도, 또 ‘땅콩회항’ 사태에서도 먼저 정중한 사과부터 했더라면‘하는 상상이다. 그랬더라면….
관용이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시빌리티는 아예 부재 상태다. 끝없는 갈등 속에 혼돈의 블랙홀을 헤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연하기만 한 권력. 멀리서 보이는 그 대한민국이 어쩐지 서글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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