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NPR 방송을 듣던 중 가슴에 꽂히는 말이 있었다. ‘사람들 안에 있는 위대함’이라는 말이었다. 크리스마스 날 개봉되는 영화 ‘언브로큰’의 감독 안젤리나 졸리가 영화의 실제 주인공 루이스 잠페리니의 말을 전했다. 올림픽 국가대표선수로, 전쟁영웅으로 존경받았던 잠페리니는 자신의 생애를 영화로 만든다고 하자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내가 얼마나 위대한 지, 비범한 지에 관한 영화는 만들지 마시오. 사람들이 자신들 안에 위대함이 있다는 걸 깨닫게 하는 영화를 만들어 주시오.”사람들, 다시 말해 우리 모두의 안에는 위대함이 있다는 말이다.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 잠재력이 씨앗처럼 우리 안에 있는데 우리 대부분은 그 싹을 틔우지 못할 뿐더러 그런 씨앗이 있다는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다는 말로 해석이 된다.
그가 말하는 ‘위대함’은 무엇일까. 그의 생애를 들여다보며 사람이 어떤 탁월한 존재로 거듭나는 순간, 이전 것은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위대한’ 순간을 찾아보았다. 그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일’이라고 표현한 것, 우리 모두 할 수는 있지만 할 생각조차 못하는 것, 그는 ‘용서’를 말했던 것 같다.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주었던 누군가를 마침내 용서할 수 있게 되는 상태, 원수를 사랑하게 되는 지고지순의 경지를 말하는 것 같다.
영화제작이 마무리되던 지난 7월, 97세로 사망한 잠페리니는 이탈리아 이민 2세였다. 19살이던 1936년 최연소 국가대표선수로 베를린 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육상선수로 이름을 날렸던 그는 2차 대전이 터지면서 삶이 지옥으로 바뀌었다. 공군으로 참전 중 정찰기 고장으로 태평양 한가운데서 추락해 47일을 배고픔과 상어떼의 위협 속에 표류했고, 이후 전쟁포로 수용소에 수감돼 일본군 간수들의 잔혹한 고문 속에 짐승보다 못한 생활을 2년 이상 했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영웅’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그는 폐인이 되어 있었다. 밤마다 수용소 악몽에 시달리면서 일본군 간수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특히 그에게 악랄했던 한 간수를 기어이 죽여야겠다는 생각에 일본행 비행기 여비를 모으기까지 했다.
알콜중독으로 망가져가던 그의 삶이 전환점을 맞은 것은 1949년 가을이었다. 아내에게 등 떠밀려 참석한 LA 빌리 그래함 부흥집회에서 신앙의 눈을 뜨게 되었다. 지옥 불같이 타오르던 미움과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었다. 1년 후 일본으로 선교여행을 간 그는 전범 교도소에 수감되어 있던 옛 간수들을 찾아갔다. 그들을 본 순간 그의 마음에 차오른 것은 미움이 아니라 연민이었다. 그들을 용서한 것이었다.
“세상에 증오만큼 치명적인 독은 없다. 누군가를 미워하면 고통 받는 것은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치유 받는 길은 용서”라는 말을 그는 평생 신앙 간증으로 전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누군가 때문에 피가 거꾸로 치솟는 경험을 하는 일이 있다. “용서란 제비꽃을 짓밟은 발꿈치에 꽃이 뿜어주는 향기”라고 마크 트웨인은 말했지만 어느 발아래 짓밟히고, 존재자체가 문드러지는 과정에 우리는 분노와 모멸감 너머를 바라보기가 어렵다. 하지만 우리 안에 어떤 위대함이 있어서 제비꽃처럼 용서의 향기를 뿜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예는 드물지만 있다. 지난 4월에는 이란의 한 어머니가 ‘용서’의 위대한 힘을 발휘했다.
사메레 알리네자드라는 여성은 7년 전 18살짜리 맏아들을 잃었다. 아들을 흉기로 살해한 20대 청년은 사형수로 복역 중인데 피해자 가족이 용서할 경우 사형을 면할 수 있는 것이 그 지역 법이라고 한다. 아들 죽인 원수에 대한 증오심으로 하루 하루를 버텨온 그 여성에게 용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그런데 사형집행일이 되고 교수대에서 용서를 비는 청년을 본 순간 그는 마음이 바뀌었다. 사형수도 누군가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성은 교수대로 올라가 따귀를 한 대 때리고 청년을 용서해 주었다. 그러자 놀랍게도 지난 몇 년 자신을 괴롭혔던 분노가 사라지고 마음에 평안이 찾아들더라고 그 여성은 말했다.
한국에서는 지난달 ‘그 사람, 그 사랑, 그 세상’이라는 영화가 개봉되었다. ‘한센 환자의 아버지’로 헌신적 삶을 살다 순교한 손양원 목사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그는 1948년 여순사건 때 두 아들을 죽인 청년을 용서하고 양자로 맞아들인 사건으로 유명하다. 아들들을 잃은 슬픔 속에서도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이 나오게 하셨으니 감사하다”는 기도를 올렸다고 한다. 우리 안의 ‘위대함’의 표본이다.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예수가 세상에 오신 성탄시즌이다. 미움과 분노로 삶이 고통스럽다면 치유가 필요하다. 우리 안에 있는 위대함, 사랑과 용서라는 카드를 좀 써보면 좋겠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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