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애<수필가>
여고시절 어느 음악시간이었다.현란한 피아노 연주소리가 음악실로 향하는 복도에 까지 들렸다. 우리학교로 오신지 얼마 안 되는 핸섬한 음악선생님은 눈을 지그시 감고 신들린 듯 한 손놀림으로 ‘솔베이지의 노래’를 연주하고 있었다. 연주를 마치고 선생님이 일어났을 때 교실 안은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조용했다. 알 수 없는 슬픔 같은 묵직함이 처녀들의 가슴을 눌러 내리고 있었다.
‘그 겨울이 지나 또 봄은 가고 또 봄은 가고 그 여름날이 가면 또 세월이 간다 세월이 간다’ㅠ이 솔베이지의 노래는 노르웨이 작곡가 Edvard Grieg (1843~1907) 의 곡으로, 같은 노르웨이 태생의 문호 입센의 희곡 ‘페르퀸트’ 전 24곡 중에 하나이다.
방랑의 길을 떠난 주인공 페르퀸트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리는 솔베이지의 영원한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1875년에 쓰였다. 찬 겨울이 지나 봄이 수 십 번 다시 오지만, 약혼자 페르퀸트는 돌아오지 않고 아름답고 순결한 처녀 솔베이지는 매일같이 사랑하는 이가 돌아올 마을 앞, 산 고갯길을 바라보며 늙어간다.
천신만고 끝에 페르퀸트가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시고 머리가 하얗게 쇤 솔베이지가 역시 다 늙어 버린 노인 페르퀸트를 맞는다. 자신의 무릎에 머리를 누이고 눈을 감은 연인을 안고 ‘솔베이지의 노래’를 부르며 그녀도 페르퀸트의 뒤를 따라 눈을 감는다. 선생님으로부터, 이 곡의 애절한 사연을 전해 들으며 우리 모두는 눈물을 훔쳐냈다.
내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웃에 사는 아이들 친구 엄마가 가끔 우리 집에 놀러 오곤 했다. 그 집과 우리 집은 홀로 된 시어머님을 모시고 사는 공통점이 있었다. 그 분은 자신의 시어머님 이야기를 내게 들려주었다.
그 분의 시아버님은 결혼 한 지 두 해 만에 스무 살 젊은 아내와 돌도 채 안된 아들 하나를 남겨놓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단다. 그 곳에서 학도병으로 끌려가 전쟁을 치르고 일본여인을 만나 가정을 이루어 일본에 눌러 앉았다. 시아버님은 그 동안 두어 번 한국에 나와 아들가족과 옛 아내를 잠깐 만나고 갔다한다.
그녀의 시어머님은, 남편이 떨구고 간 아들 하나를 키우면서 행여 돌아올까 하염없이 기다리며 늙어갔다. 남편을 기다리던 수많은 봄이 그녀를 그냥 지나쳐 가버렸다.
장성한 아들을 짝 지워 손주들을 얻은 시어머니는 이제 머리가 허옇게 쇠어가지만, 아직까지도 남편이 돌아 올 것을 기다리며, 한 번도 덮지 않은 새 비단이불을 준비해 놓고 있다고 한다. 젊은 며느리는 이런 시어머니를 이해 할 수 없다며 혀를 내둘렀다. 그 분의 시어머니는 솔베이지처럼, 사랑하는 이를 자신의 무릎에 누이고 같이 마지막 숨을 거두게 되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이광수의 소설, ‘사랑’에서 석순옥은 가정이 있는 남자, 가질 수 없는 사람, 안빈을 위해 자신의 그 어떤 욕망도 철저히 자제하며 오직 사모하는 사람을 도우며 살아간다. 타인이 보기엔 희생한다 로 밖에는 이해 할 수 없는 사랑법으로...
사랑은 원래 무모[無謀]하다. 연인[戀人]간의 사랑이란 말 속엔 희생이란 단어가 포함 되지 않는다고 생각 한다. 나를 위해 그에게 주고, 나를 위해 참고, 나를 위해 기다린다 고 할 수 있는 것이 이성[異性]간의 사랑이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내가 되기 때문이다.
연모하는 이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 놓지 못하고 애만 태우던 우리시대의 어설픈 세월은 다 지나간 듯하다. 한 번도 덮지 않은 이불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그 할머니나, 솔베이지 같이 사랑하는 이를 기다리며 자신의 온 생애를 바치는 것이 비이성적인 삶이라고 치부하기엔 그들의 순수함이 오히려 거룩해 보인다.
얼마 전, ‘하모니’ 란 한국영화를 보았다. 거기에서 여자 수형자들이 합창으로 부른 곡이 ‘솔베이지의 노래’였다. 각기 다른 인생길에서 수형자로 그 곳에 만난 그들의 사연들은 아프고, 안타깝고, 억울하기까지 한 슬픔을 지니고 있었다. 사랑하는 가족과 같이 할 수 없는 별리[別離], 그들이 부른 그 노래는 숨이 멎을 듯이 애절히 듣는 이 의 가슴을 울렸다. 노래를 부르는 그들의 내면은 이미 순결한 솔베이지가 되어 있다고 생각 되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그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라고,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사랑을 그렇게 정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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