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우리의 생각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는 곧 우리가 어떤 생각과 의식을 가지고 있는가를 드러내준다. 그래서 말을 할 때는 신중하고 단어를 잘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조심하고 신중을 기해도 언젠가는 입에서 나오는 말을 통해 그 사람의 의식과 됨됨이가 결국은 드러나게 된다.
특히 정치인들에게 말은 최대의 무기이자 적이다. 위로의 언어, 설득력있는 연설을 통해 국민들의 마음을 얻기도 하고 말 한마디 잘못하는 바람에 한순간에 추락하기도 한다. 정치는 말로 시작해 말로 끝난다고 할수 있다. 특히 대통령의 말은 그의 위치와 영향력으로 볼 때 절대적인 무게감과 의미를 지닌다.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 한 마디 한 마디, 단어 하나 하나는 항상 치밀한 분석과 해석의 대상이 된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 청와대 국무회의에서 규제 철폐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일자리 창출과 투자를 가로막는 규제들을 한꺼번에 단두대에 올려 처리해야 한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단두대란 단어가 안겨주는 어감은 섬뜩하다. 박 대통령이 이처럼 살벌한 어휘를 사용한 것은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몇 달 전에도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며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을 자꾸 죽이는 암 덩어리로 생각해야 한다”고 말해 비판의 도마에 오른적이 있다.
강력한 의지를 나타내기 위한 의도로 사용했다고 해도 ‘단두대’ ‘쳐부술 원수’ ‘암덩어리’라는 표현은 듣기에 거북하다. 대통령이 약속한 ‘국민 행복’이 실현되려면 엔돌핀이 솟아야 하는데 이런 단어들은 엔돌핀은 커녕 듣는 것만으로도 코티졸을 자극해 스트레스 지수를 높여준다.
박 대통령은 달변가가 아니다. 사용하는 어휘들도 대부분 건조하다. 그런까닭에 절제된 표현을 하는 정치인으로 평가받아 왔고 그런 점은 정치이력에 플러스로 작용해 왔다. 하지만 대통령은 특정 정당과 계파에 속한 일반 정치인들과는 다른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대통령은 국민들을 다독이는 감성의 언어, 위로의 언어를 많이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대통령이 되고 난 후 그의 입에서는 거친 단어들이 더 자주 나온다.
‘비선 국정농단’이 이슈화된 가운데 대통령이 지난해 8월 문화체육부장관을 부른 자리에서 문체부 국장과 과장의 이름을 거명하며 ‘참 나쁜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는 보도가 곁가지로 터져 나왔다. 당시 장관은 보도를 사실로 확인해 준반면 청와대는 이를 부인해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어떤 사람에 대해 이런저런 평가를 내릴 수는 있다. 상대가 공무원이라면 유·무능과 청렴도는 얼마든 따질 수는 있다. 하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표현을 사용할 때는 지극히 신중해야 한다. 이 말 속에는 그 사람의 인격, 그리고 도덕성과 관련한 의미가 함축돼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기를 바라지만 장관의 주장대로 정말 그런 표현을 했다면 실망스러운 일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참 나쁜 대통령’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이 표현은 노 전 대통령이 원 포인트 개헌을 제안한 데 대한 반응으로 나왔다. 물론 노무현을 싫어하는 사람들은 환호했다. 이 말은 정치인 박근혜의 간결어법을 상징하는 것으로 오래 회자됐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해 보자. 개헌제안이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부도덕하고 악한 일인지.
그렇다면 선거 때 달콤한 장밋빛 공약들을 남발하고 권력을 잡은 후에는별다른 해명이나 사과도 없이 이를 뒤집는 대통령은 무어라 불러야 적당할까. 게다가 그 자신도 4년제 중임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지 않았던가.
박근혜 대통령의 어법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것은 그의 이분법적 사고이다. 그에게는 중간이 없어 보인다. 좋은 것이 아니면 그것은 나쁜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스캔들’이라는 이중기준 또한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박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표현을 빌린다면 ‘참 나쁜’어법이 아닐 수 없다.
반복되는 인사실패와 야당과의 극한대립, 소통부재는 여기서 비롯된다고 보면 된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좋거나 절대적으로 나쁜 것이란 별로없다. 인간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타협과 소통은 이런 인식 위에서 가능하다는 것을 부디 대통령이 깨달았으면 한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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