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구원파, 유병연. 관피아. 특검제 도입…. 갑오년(甲午年), 2014년의 대한민국의 아픔을 드러낸 단어들이 아니었을까.
젊다 못해 어린 수 백 명이 영혼이 수장되어가는 실제상황을 국가는 눈 뜨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 정황에서 되뇌어지고, 또 되뇌어진 질문은 ‘이게 과연 나라인가’ 하는 것이었다. 그 한탄이 점점 멀리 아득히 들린다. 망각이란 진통제와 함께.
그리고 맞은 세밑이다. 지질하다. 자조적이다. 게다가 경망스럽게까지 들린다. 십상시, 찌라시, 문고리 권력 등등. 그런 단어들이 요란스럽게 신문의 머리를 장식한다. 그리고 두 주도 채 못 돼 새삼 한 가지 질문이 던져진다. ‘이게 과연 청와대인가’라는.
한마디로 엉망진창이다. 난장판에 아수라장이다. 막장 드라마가 따로 없다. 청와대는 대한민국 최고의 권부다. 일반인의 출입은 철저히 통제된다. 그곳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삼족까지 신원조회가 실시된다.
그 청와대에서 공식문건이 무더기로 유출됐다. 그래서 먼저 나온 반응은 ‘아니, 청와대에서…’다. 그 청와대를 무대로 대통령의 피붙이와 측근세력 양 측이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그 와중에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전직, 현직 청와대 비서관끼리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권력주변에서는 언제나 암투가 있게 마련이다. 박정희 시대에서 문민시대, 그리고 이명박 시절에 이르기까지 권력의 뒤안길에서는 항상 치열한 다툼이 있었다. 정치 선진국이라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정도, 질(質)이라는 게 있다. 정권말기도 아니다. 2년차다. 그런데 청와대 문건이 무더기로 유출되고 얽히고 뒤섞여 권력을 둘러싸고 패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싸움은 과거의 싸움에 비해 더 저질이고 악성이다.
상황전개는 날이 갈수록 더 가관이다. 대통령이 방향정리에 나섰다. 짜라시에 불과한 문건이라며 문고리 권력으로 불리는 부속실 3인방을 비호하고 나선 것. 그 대통령의 말을 한 전직 비서관은 정면으로 부인하고 나섰다. 대통령의 권위에 상처가 난 것이다.
거기에 전직 장관이 호응했다. “대통령이 수첩을 꺼내 국장과 과장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나쁜 사람들이더라고 해 인사조치 할 수 밖에 없었다.”고 폭로하고 나서면서 파장은 더욱 커지고 있다. 자칫 위기로 번질 기세다.
동시에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이 그동안 소문으로만 무성했던 비선정치의 의혹이다. 그림자 실세로 불리는 정윤회의 월권과 인사전횡 흔적이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또 문고리 권력, 부속실 3인방이 거짓말을 한 정황도 속속 드러나고 있다.
무엇을 말하나. 그 답은 ‘이게 과연 청와대인가’란 질문 속에서 찾아지는 것은 아닐까.
문서의 진실여부는 무시한 채 문서유출에만 초점을 맞추었다. 비상식적이고 불균형한 대응책에 안주한 것이다. 거기다가 앞뒤 안 맞는 해명으로 상황을 더 꼬이게 한다. 그 과정에서 엿보이는 것은 책임감이나 공공성을 같은 것은 찾을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게 현 청와대의 수준으로, 자체적 해결 능력도, 정무적 판단 능력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새삼스레 나오는 한탄이 ‘이게 과연 청와대인가’하는 것이다.
상황은 점차 심각한 방향으로 가고 있다. 자칫 대통령 자신이 직접 해명해야 할지도 모를 위기에 몰리고 있는 것이다. 여론의 흐름도 그렇다. 세월호 상처가 잊혀 지면서 박근혜 대통령지지도는 회복세를 보였다. 그 지지도가 40%로 선으로 다시 떨어지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이런 상황을 불러왔나. 문고리 권력도 아니다. 그림자 실세도 아니다. 그 비난의 화살은 점차 대통령 본인을 향해 겨누어지고 있다. ‘박근혜식 나홀로 인사’ ‘불통인사’ ‘비밀주의인사’가 바로 근본 문제로, 이번 사태는 그런 의미에서 ‘예견되어온 참사’라는 것이다.
“대통령의 공적 가치에서 국가주의적 냄새가 난다. 그 누구 보다 공적 의식이 투철한 박 대통령이지만 민주주의 원리와 가치가 내면화 되어 있지 않아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국내의 한 원로 정치인의 박근혜 리더십에 대한 지적이다.
“자신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기 때문에 항상 도덕적으로 옳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선의와 원칙을 지나치게 앞세워 온 것이다. 거기서 나온 것이 나홀로의 지시적 리더십이고 경직된 청와대 분위기다. 문제는 본인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는 것이다.” 계속되는 비판이다.
박 대통령 지지율이 한 주 사이 2%포인트 떨어져 42%로 낮아졌다. 반대로 부정적 평가 율은 3%포인트 올라 48%가 됐다. 무엇을 말할까. 어찌됐든 박근혜다. 그게 보수성향의 한국 유권층의 박근혜 사랑이다. 그 보수 유권층이 숙고를 거듭, 기대치를 접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분위기는 투명성을 일제히 요구하고 나선 보수언론의 논조에서도 감지된다. 다른 말이 아니다. 리더십 스타일을 바꾸지 않을 때 안타까움은 분노로 바뀌고 레임덕 현상은 일찍 올 수도 있다는 거다. 2014년 갑오년은 이래저래 ‘끔찍한 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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