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창흠(논설위원)
불교는 깨달음과 실천의 종교라 한다. 그 실천의 핵심은 ‘보시’다. ‘보시’는 재물이나 가르침을 베푸는 일이다. 보살행의 실천덕목인 육바라밀의 첫째는 ‘베풂’이다. 불자의 사섭법 중 첫째도 ‘베풂의 손길’이다. 불자들의 행동실천이 바로 베풂인 것이다
보시에는 재보시, 법보시, 무외보시 등 세 가지가 있다. 재보시는 재물을 베푸는 일이다. 법보시는 진리의 삶을 일깨워 주는 여러 가지 일을 통틀어 말함이다. 그리고 무외보시란 마음속의 두려움을 없애주는 일들이다. 다시 말하자면 격려해주고 위로해주고 불안에 떨고 있는 이웃과 함께 있어주는 일들인 것이다.
불교는 ‘도움을 받는 남’과 ‘도움을 주는 나’를 한 몸으로 여긴다. 그래서 ‘보시바라밀’이 보시의 으뜸이다. ‘남에 대한 베풂과 봉사와 도움’등의 단순보시와는 다르다. 티 나지 않는 베풂이다. 누군가에게 내가 무엇인가를 베푼다. 그럼에도 나조차 베풀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것이 진정한 베풂이란 말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 뒤 흐뭇한 마음이 든다. 이는 상거래와 같은 ‘단순보시’일뿐, ‘보시바라밀’은 아니란 얘기다. 아낌없이 베풀고 또 베푼다. 그러면서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는다. 물론 베풀었다는 생각조차도 갖지 않는다. 그 것이 바로 참다운 보시란 것이다.
“힘들다고 해서 없는 살림에 도움을 줬더니 살만하니까 연락도 하지 않더라!”
누군가에게 좋은 마음으로 정성을 쏟고 뭔가를 베푼다. 그런데도 상대방은 나의 기대와 달리 행동을 한다. 그러면 속상하거나 화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모든 이가 다 그런 마음으로 살지는 않는다.
요즘처럼 비즈니스가 어려울 때는 곤경에 처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그러다보니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선뜻 돈을 건네는 사람들도 생긴다. 그들은 지인이 잘되기를 바란다. 돈을 돌려받을 수 있으면 다행으로 여긴다. 못 받아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재기하지 못함을 더욱 안타까워한다. 그런 이들이 우리 주변에 제법 있다. 그야말로 참다운 베풂의 실천이 아닌가 싶다.
누군가에게 선행을 베풀 때에는 피드백을 기대한다. 그건 참 선행이 아니다. 진정한 선행은 대가나 기대를 하지 않는다. 그저 주고나면 그만 인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주고받는 ‘GIVE AND TAKE’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다. 그러다보니 선행조차 은근한 화답을 기대한다. 물질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고마운 표현이나 칭찬을 바란다.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줬다고 받기를 원한다면 그 것은 거래일뿐.
베풂은 아닌 듯하다. 선행은 ‘GIVE AND FORGET’이다. 주고 나서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더 나아가 ‘GIVE AND THANK YOU’와 같은 의미다. 내가 주었는데 상대방이 받아 줘서 오히려 감사하다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은 선행을 가진 자만의 특권으로 여긴다. 자신은 재물이 없으니 베풀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다. 돈이 없어도 남에게 베풀 수 있다.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베풀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의 베풂은 미소를 띠고 정답게 대하는 것(화안시-和顔施), 공손하고 아름다운 말로 대하는 것(언사시-言辭施), 착하고 어진 마음으로 대하는 것(심시-心施), 호의를 담은 눈빛으로 대하는 것(안시-眼施), 힘을 써서 남을 돕는 것(신시-身施), 자리를 양보하는 것(상좌시-狀座施) 그리고 편안하게 쉴 공간을 제공한 것(방사시-房舍施) 등이 있다. 이것이 바로 무재칠시(無財七施)로 재물이 없어도 마음으로 행할 수 있는 일곱 가지의 베풂인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남의 좋은 점을 보는 것이 눈의 베풂이고, 환하게 미소 짓는 게 얼굴의 베풂이며, 사랑스런 말소리가 입의 베풂이고, 자기를 낮추어 인사하는 게 몸의 베풂이며, 곱고 착한 심성이 마음의 베풂이라고 한다. 결국, 베풀 수 없다는 핑계(?)는 베풀 것이 없어서 베풀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베풀려는 마음이 없어서일 뿐이다.
2014년, 한 해의 끝자락. 을미년 새해의 양떼들이 성큼 몰려온다. 연말연시는 그 어느 때보다 나눔과 베풂이 절실할 때이다. 이럴 때일수록, 우리는 베풂의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베풀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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