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아프리카의 에볼라 창궐지역에는 떠나는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는 세상을 떠나고, 산 자는 감염이 무서워 떠나는 라이베리아·기니·시에라리온의 에볼라 발병지역을 굳이 찾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환자들을 치료하고 추가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목숨 걸고 고생길을 선택하는 사람들이다. 남들이 모두 나가는 길을 거꾸로 들어가는 사람들, 국경없는 의사회(MSF)가 대표적이다.
MSF의 긴급구호 프로그램 팀장이 지난달 한국을 방문했다. 건축가 출신인 위그 로베르 팀장에게 기자가 “(죽을 지도 모를 그곳에)왜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희생정신이나 헌신을 말하지 않았다. 대신 “큰 보상을 받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을 살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내겐 보상”이라고 했다.
죽음의 마수로부터 생명들을 구해내면서 그가 체험했을, 한 점 이해 얽히지 않은 맑고 순수한 기쁨을 상상해본다. 다른 어떤 일로도 맛볼 수 없는 숭고한 기쁨이 거기 있으니 남들 떠나는 그곳으로 그는 달려가는 모양이다.
생애 말년을 자선사업으로 보내는 커크 더글러스도 비슷한 말을 했었다. 10여년 전 부터 그는 평생 모은 것들을 내어주는 삶을 살고 있다. LA 통합교육구 학교들에 놀이터 400개를 짓고, 마약·알콜 중독 여성노숙자들을 위한 회복센터를 설립하고, 커크 더글러스 고교나 커크 더글러스 극장을 만들어 장학사업을 하는 등 사회 환원 프로젝트가 다양하다.
자신의 프로젝트들을 소개하면서 그는 말했었다. “내가 얼마나 좋은 사람인지 말하려는 게 아니다. 사실 나는 대단히 이기적인 사람이다. 남들 돕는 일에는 보상이 있기 때문이다.”남을 도우면 도움 받는 그들보다 자신의 마음에 먼저 기쁨과 평안이 찾아든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보상이라는 말이다.
더글러스는 오는 9일이면 98세가 된다. 나이가 많다보니 지난주 피플 웹사이트에 부고기사가 잘못 올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는 이번 생일에 맞춰 삶을 돌아보는 시들을 모아 시집을 출간했을 정도로 정정하다. 노년에 누리는 충만한 기쁨을 그는 ‘행운의 뇌졸중’ 덕분이라고 말한다.
지난 1996년 뇌졸중으로 쓰러지면서 그의 삶은 180도 바뀌었다. 뇌졸중 후유증으로 말을 못하게 되자 ‘배우로서 감독으로서 끝’이라는 절망감에 우울증이 심각했다. 성공에 성공을 거듭하며 앞으로만 달려오던 그의 삶이 벼랑 끝을 만난 것이었다. 앞으로 내딛으면 죽음, 자살이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그곳에서 그는 방향을 틀었다. 이제까지와는 정반대로, 거꾸로 살기 시작했다. 온통 자신에게만 향했던 관심의 방향을 남들에게로 돌리고, 평생 모으고 쌓기만 하던 ‘더하기’ 삶을 덜어내고 내어주는 ‘빼기’ 삶으로 바꾸었다.
그 결과 그는 두가지 진리를 터득했다. 우울증은 너무 자기 자신만 생각해서 생기는 병, 남을 생각하고 돕다보면 낫는 병이라는 것. 그리고 내어주고 나눠봐야 비로서 인생사는 법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자신을 쓰러트린 뇌졸중을 그가 ‘행운’이라고 부르는 이유이다.
성탄절의 의미를 새겨야 할 12월, 한해의 삶을 차분하게 돌아봐야 할 연말이 실종되었다. 블랙 프라이데이, 스몰 비즈니스 새터데이, 온라인 먼데이 그리고 이어지는 각종 연말 세일들로 세상은 벅적대고 시끄럽다. 선전과 샤핑, 상업주의와 소비문화가 이 계절의 주인행세를 한 지 오래다.
온통 ‘샤핑’에 쏠린 관심의 방향을 거꾸로 돌릴 수는 없을까,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이 소유하는 대신 뭔가 의미 있는 일에 기부하는 문화를 만들 수는 없을까 … 하는 고민에서 탄생한 것이 ‘기부 화요일’이다. 온라인 먼데이 다음날 하루만은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는 데 할애하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지난 2012년 시작돼 올해로 세 번째 맞은 기부 화요일이 성공적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2012년 모금액 1,350만달러였던 것이 지난해 2,800만 달러, 올해 4,600만달러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작은 액수나마 기부하고 나면 가슴 뿌듯해지는 기억을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다는 말이 된다. 기부 화요일은 지나갔지만 기부 캠페인은 물론 계속된다.
많이 모아서 얻는 행복감이 있다면 덜어내서 얻는 행복감이 있다. 전자가 기름진 음식을 마음껏 먹은 포만감이라면 후자는 싱싱한 샐러드를 먹고 난 상쾌함 같은 것. ‘더하기’ 대신 거꾸로 ‘빼기’를 연습해보라는 것이 성탄의 계절이 들려주는 삶의 지혜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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