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감사절인 27일 퍼거슨은 평온했다. 지난 24일 대배심 결정이 나온 후 시위와 약탈, 방화가 뒤섞이며 활화산처럼 폭발했던 성난 민심은 추수감사절 하루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총격경관에 대한 불기소 결정에 불같은 분노를 토해냈던 젊은 군중은 아마도 각자 집으로 돌아가 명절을 맞았을 것이다. 어머니의 명절 음식을 먹으며 지치고 거칠어진 심신에 쉼을 얻었을 것이다. 밤마다 불길 치솟던 도시는 이날 밤 평온했다.
추수감사절 다음날인 28일 LA 타임스에는 한 특별한 ‘엄마’가 소개되었다.
퍼거슨 인근에 사는 캣 대니얼스(53)라는 흑인여성이다. 퍼거슨 시위를 주도하는 민권활동가들 사이에서 ‘엄마 캣’이라고 불리는 여성이다.
지난 8월9일 흑인청소년 마이클 브라운(18)이 백인경관 대런 윌슨(28)의총격을 받고 사망하자 퍼거슨에는 전국에서 인권옹호 단체 회원들이 모여들었다. 백인경관의 총격을 인종차별적 과잉진압으로 규탄하며 정의구현 촉구시위를 하기 위해서였다.
대니얼스는 이들이 모여든 8월부터 매주 일요일 식사를 제공했다. 처음에는 혼자 주머니를 털어 준비하다가 차츰 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 도움을 받았다. 서로 안면 없던 시위 참가자들은 매주 같이 밥을 먹으며 그간의 진전 상황을 나누고 대책을 논의했다. 객지생활에 지치고 때로 극심한 두려움에 시달리는 그들에게 대니얼스는 조리사이자 친구, 카운슬러가 되어주었다. 그렇게 3개월,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를 ‘엄마’라고 불렀다.
그가 식사를 준비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앞에서 싸우는 것은 젊은 세대의몫, 나이든 세대는 뒤에서 지원하는 것이 역사의 바른 편에 서는 길이라는 생각이다. 추수감사절에도 집으로 갈 수없던 시위대를 위해 그는 세인트루이스 인근 교회에 ‘엄마 밥상’을 차렸다.
어머니란 귀기울여주고 품어주는 존재. 사회를 어머니로 본다면, 인종차별이란 어머니로부터 구박받고 외면당하는 아픔이다. 사회 구성원들을 고르게품어주고 그들의 주장에 똑같이 귀기울여주어야 마땅한데 미국이라는 ‘어머니’는 편애가 심하다. ‘적자’와‘ 서자’가 있어서, 사랑을 대물림해 받는 집단은 기득권을 당연시하고, 무관심과 핍박을 대물림해 받는 집단은 울분으로 피해의식만 쌓여간다.
퍼거슨 사건의 진상은 불투명하다.
정확히 어떤 상황에서 백인경관이 10대 흑인소년을 사살했는지 우리는알 수가 없다. 경관은 ‘정당방위’를 주장하고 죽은 소년은 말이 없다. 진상은 알 수 없지만 사건구도는 너무도 익숙하다. ‘경관은 백인, 용의자는 흑인 그리고 총격사살’인 사건이 너무 자주 반복되어 왔다.
사건을 보는 시각도 똑같이 반복된다. 백인들은 경관이 거구의 흑인 용의자 앞에서 느꼈을 공포심에 공감하고, 흑인들은 흑인청년을 무조건 위험인물로 보는 인종적 편견에 분노한다.
그래서 이번 사건에 대해서도 경관이 처벌받아야 한다는 응답자는 흑인의 경우 64%인 반면 백인은 22%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 사회가 흑인들의 주장은 대충 건성으로 들으면서 백인들의 주장에는 자상하게 귀를 기울여준다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다.
사회를 ‘어머니’에 비유한다면 사회구성원인 우리 각자는 ‘어머니’의 한부분을 이룬다. 우리의 인종차별 의식이 모여 인종차별 사회가 된다는 말이다. 스스로 인종차별과는 거리가 멀다고 믿는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저지르는 인종적 불공정 사례가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예를 들면 병원. 지난 2002년 연구에 의하면 똑같이 다리 골절상을 입어도 환자가 백인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에 비해 진통제 처방을 훨씬 쉽게 받는다. 인종에 따라 통증이 다를 리 없지만 백인 환자의 말에는 의사가 더 귀를 기울여준다는 해석이 나온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유사한 잘못을해도 흑인학생은 백인에 비해 정학 받을 확률이 3배 이상 높다. 흑인과 백인의 마리화나 사용 비율은 비슷하지만 마리화나 소지혐의로 경찰이 체포하 는비율은 흑인이 백인에 비해 3.7배 높다는 통계도 있다.
형제가 같이 잘못했는데 어머니가 형은 봐주고 동생만 벌을 준다면 동생의 앞날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는 자신을 증명해 보이느라 두배 세배 노력해서 기필코 성공하는 케이스. 아주 소수에게 가능한 일이다. 둘째는 좌절과 분노로 비뚤어져서 결국 인생의 패배자가 되는 케이스. 대부분 흑인 커뮤니티의 현실로 두고두고 미국에 부담이 된다.
어머니가 형제를 차별하면 가정이 편할 날이 없다. 차별이 불신을 낳고 불신이 불안을 낳아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다인종 미국사회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퍼거슨’은 개별적 사건이 아니다.
미국이 인종차별을 극복하지 않는 한 계속 이어질 사건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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