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사랑하는 가족과 내 모든 친구들이여. 오늘은 내가 선택한 날, 내게서 너무도 많은 것을 앗아간 나의 불치병, 이 끔찍한 뇌암에도 불구하고 의연하게 이 세상 떠나기로 작정한 날이다. … 세상은 아름다운 곳 … 안녕 세상이여.”지난 1일 29살의 젊고 아름다운 전직 여교사는 페이스북에 하직인사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늦가을 낙엽 떨어지듯 홀연히 그는 세상을 떠나고, 세상은 그의 죽음이 던진 파장으로 불편한 술렁임에 휩싸여 있다.
1970년대 식물인간이었던 캐런 앤 퀸란 케이스, 1990년대 테리 시아보 케이스 그리고 ‘죽음의 의사’ 잭 케보키안 케이스 등을 징검다리 삼아 지속적으로 제기되어온 존엄사/안락사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 인간은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는가.
북가주에 살던 브리타니 메이너드가 뇌종양 판정을 받은 것은 지난 1월이었다. 처음에는 치료방법이 있을 것으로 여겨졌었다. 하지만 4월 추가검사 결과 ‘뇌암 4기, 6개월 시한부’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치료는 불가능하고 몸의 기능이 점점 마비되며 인지능력을 잃게 되고 극심한 통증이 수반될 것이라고 의사들은 설명했다.
삶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았던 신혼의 20대 여성에게는 날벼락 같은 선고였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고 남편과 부모와의 상의 끝에 그가 내린 결론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유지하다 가겠다는 것이었다. 존엄성을 상실한 채 처절하게 목숨만 이어가는 비참한 삶은 거부하겠다는 것, 존엄사를 선택하겠다는 뜻이었다. 존엄사를 허용하는 오리건으로 그는 이사를 했다.
오리건에서는 6개월 이하 시한부 환자들의 경우 의사로부터 약물을 처방받아 원하는 때에 죽음을 택할 수가 있다. 의사가 직접 환자에게 주사를 해서 사망하게 하는 안락사에 반해 존엄사는 경구용 약물처방만 한다는 점에서 소극적 안락사로 분류된다.
오리건에서는 지난 1997년 미국 최초로 존엄사법을 시행한 후 17년 동안 거의 1,200명이 ‘죽음의 약’을 처방받고 그중 750명 정도가 실행에 옮겼다. 오리건에 이어 워싱턴과 버몬트가 존엄사법을 시행 중이다.
메이너드는 생의 마지막을 마음껏 가족들과 지내고 원 없이 여행을 즐긴 후 스스로 결정한대로 11월1일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여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세상을 하직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미국에서는 한동안 잠잠했던 존엄사 찬반논쟁에 불이 붙었다. 우리에게 죽을 권리가 있는가, 사람을 살려야 할 의사가 죽음을 돕는 것이 윤리적인가 등이 주요쟁점이다.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에서 10명 중 7명은 존엄사를 지지한다. 말기암 환자 등 회복 가능성은 없고 생명이 지속되는 한 고통뿐인 시한부 환자들에게 생을 끝낼 길을 열어주는 것이 인도적이라는 의견이다.
반면 존엄사를 절대 반대하는 그룹은 가톨릭교회이다. 십계명 중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근거로 낙태, 자살과 같은 맥락에서 존엄사를 반대한다. 피조물인 인간에게는 스스로 죽음을 택할 권리가 없다는 해석도 추가된다.
죽음 앞에서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 인간도 자연의 일원이니 자연의 모든 생명체가 그러하듯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나무에서 스르르 떨어져 잎의 수명이 다하듯, 때가 되면 동물들이 아무도 없는 곳으로 가서 먹기를 중단함으로써 죽음을 맞듯.
자연의 일원으로 죽음을 맞은 대표적인 예는 스캇 니어링 박사이다. 경제학자로 20세기 초반 사회운동을 주도했던 니어링은 나이 50쯤 되던 1932년 도시의 물질문명에 등을 돌리고 버몬트의 시골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니어링 부부는 농사를 지어 자급자족하고, 40여권의 책을 저술하며 단순한 삶 운동의 대부가 되었다. 왕성하게 일함으로써 건강을 유지하던 니어링은 99세가 되자 세상을 떠날 준비를 했다. 살만큼 살고 일할 만큼 일했다는 판단이었다.
100세 생일을 한달 여 앞둔 때부터 그는 곡기를 끊고 과일주스만 마시다가 나중에는 그마저 끊고 물만 마셨다. 100세가 되고 2주쯤 지난 어느 날 그의 숨이 점점 느려지더니 한순간 고요해지고 그는 아주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부인 헬렌은 전했었다.
현대는 연명치료가 너무 발달해서 문제이다. 환자의 나이가 80이든 90이든 의료진은 온갖 연명치료로 생명을 연장하는 데 집중하고 그 과정에서 환자의 삶의 질은 뒷전으로 밀리곤 한다. 생애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싶은가 미리 생각하고 선택할 필요가 있다. 수명의 길이를 택할 것인가, 삶의 질을 택할 것인가를 먼저 정한다면 존엄사에 대한 답이 나온다.
junghkwon@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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