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주민의 상습적인 폭언과 비인간적인 대우에 시달리다 분신자살을 기도했던 서울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지난 주말 결국 숨졌다. 이 경비원은아파트 입주자인 70대 할머니로부터 견디기 힘들 정도의 모욕을 지속적으로 당해 왔던 것으로 밝혀졌다. 할머니는 폭언은 물론 아파트 5층에서 “어이 경비, 이거 먹어”하며 동물에게 먹이 주듯 음식을 던지기까지 했다.
독실한 신앙인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들어왔던 경비원을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몬 그 고통의크기와 실체를 정확히 헤아리지는 못하겠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모욕감이 인간이 느끼는 가장 끔찍한 감정들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다. 분신한 경비원의 절규처럼 인간은 개돼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치열한 생존경쟁이 낳는 부작용의 하나는 모욕주기의 일상화이다. 경쟁에서의 승리는 오만과 우월감으로 이어지고 이는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패자들에게 모욕감을 안겨준다. 그러나 모욕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패자들은 더 열등한 처지의 존재들을 찾아내 모욕주기를 계속한다.
이런 악순환은 모욕의 구조화라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으로 이어지고있다.
한국의 댓글들을 분석해 보면 악플과 선플의 비율이 4대 1 정도로 나타난다. 이는 일본의 1대 4, 네덜란드의 1대 9 등 악플보다 선플이 압도적으로 많은 다른 나라들과 완전 정반대다. 그저 네티즌들만의 성향으로 보기에는 문제가 심각해 보인다.
모욕은 당하는 이에게 극도의 수치감을 안겨주지만 주는 쪽에는 일시적이나마 자기가 뭐라도 된 듯한 느낌, 즉 ‘자기 효능감’을 안겨준다. 대개 현실에서 무능하고 무력감에 시달릴수록 자기 효능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그리고 이런 욕구는 익명의 게시판을 통한 조롱과 모욕주기로 표출된다.
현실세계에서는 자기보다 취약한 존재 괴롭히기를 통해 충족된다. 일그러진 직장의 위계질서, 갑과 을의 기형적 관계, 그리고 근절되지 않는군대 내 가혹행위 등 사소한 차이에 집착하고 이를 통해 자기효능을 확인하려는 비뚤어진 문화가 한국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사회학에서는 인간의 보편적 성향으로서 ‘구분짓기’를 많이 언급한다.
우리의 행위 저변에는 다른 이들과 자신을 구분하려는 욕구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명품소비이다. 명품은 제품 자체의 뛰어난 디자인과 품질 때문에만 소비되는 게 아니다. 아무나 갖지 못하는 것을 가짐으로써 나와 그들을 구분하려는 욕구를 채워준다.
이처럼 인간은 종종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되는 부류들과의 선긋기를통해 자기 존재를 확인하려 든다. 명품 열풍은 이런 속물적 사고의 표상이다. 이런 선긋기와 구분짓기는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부작용도크다.
모욕주기 역시 남을 나보다 못한존재로 만들어 우월감을 맛보려는 행위다. 다른 이들에게 모욕을 서슴지않는 사람들은 평소 다른 사람들로부터 모욕을 당해 왔을 가능성이 크다. 모욕주기는 자신이 느낀 수치를 덮으려는 보상심리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모욕으로 인해 받는 상처와 고통은 명품을 갖지 못해 느끼는 열등감과는 차원이 다르다. 심한 경우 평생의 트라우마가 되고 폭력적 범죄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모욕은 가장 저열하면서 위험한 형태의 차별기제라 할 수 있다.
최근 몇 년 동안 귀가 따갑도록 들어 온 단어가 ‘국격’이다. 국가든 사람이든 격은 돈이 많다고, 또 멋진 외모를 가졌다고 높아지는 게 아니다.
격을 높여주는 것은 품위다. 품위는 외형이 아니라 내면이 밖으로 투영된 모습이다.
품위 사회라는 주제에 천착해 온 이스라엘의 철학자 아비샤이 마갈릿은 “구성원들이 서로 모욕하지 않고, 시스템이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사회가 문명화된 사회”라고 규정했다.
그래서 품위 있는 사회의 구성원들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만한 조건에 결코 침묵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고 마갈릿은 말한다.
최근 부산의 한 초등학교 급식시간에 교사가 학생들에게 “100점부터 밥을 먹으라”고 지시해 말썽이 됐다.
‘동기부여’라는 미명아래 이런 식의 모욕과 차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되는 사회는 품위와 너무 동떨어져 보인다.
yoonscho@korea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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