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저지 P타운 브로드웨이는 뉴저지 한인촌이다. 20년 전 업스테이트 뉴욕의 친지 한분이 P타운을 방문하고는 “야, 여긴 진짜 미국 같은데…” 그렇게 감탄했던 완전 미국형 소도시였다. 그랬던 P타운이 한인촌으로 형성된 것은 놀랍고 경이로운 한인들의 업적이라 할 수 있겠다. 거리엔 어디든 한국 사람들의 활기찬 발걸음이 있고 한국간판이 즐비하게 상가를 이루고 있다. 한국식당은 물론 떡집, 빵집, 책방, 옷가게, 화장품가게, 닥터오피스, 등등 없는 게 없다.
한국 사람은 고사하고 아시안 조차 별로 없는 뉴저지 서남쪽 방향의 P타운에 살고 있는 나는 그곳으로 외출하는 날은 가슴이 다 설레곤 한다. 볼일을 끝낸 후 한인 타운을 어슬렁 배회하는 즐거움은 오랜만에 느낄 수 있는 고향 같은 편안함, 그리고 향수마저 만끽할 수 있으니 그 아니 좋으랴. 그러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은 매번 씁쓸한 불쾌감에 휩싸이는 되풀이를 맛보아야 하는 건…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갈 때마다 들려가는 작은 한국 마켓도 그곳에 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한인주민들 상대로 하는 동네 가게라 할 수 있겠다. 정다운 장소가 아니겠는가. 필요한 시장을 보기엔 안성맞춤이다.
“안녕하세요?” 손님인 나는 어김없이 인사하며 가게 문을 열고 들어간다. 그러나 주인은 쳐다보는 법도 없고 눈길조차 보내오지 않는다. 무슨 상관이랴, 난 갈 때마다 꼬박꼬박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한다. 그 가게 주인은 젊은 부부와 어느 쪽 엄마인지 중년을 넘은 아주머니, 그렇게 가족단위로 운영하는 가게다. 세 명의 주인들은 손님을 대하는 태도가 마치 ‘원수’를 만난 듯한 험한 표정에 불친절하기 까지 하다. 그렇게 언제나 한결같기도 어렵겠다싶을 정도다.
워낙 대형 마켓에 밀려 장사가 안 돼서 그러려니 하면서 뭘 하나라도 더 팔아주고 싶은 마음으로 그곳을 찾게 되는지도 모르겠다. 두부, 콩나물, 고구마… 그런 것들을 장바구니에 담고 있는데 프론트에서 팽하니 큰소리가 났다.
“아침부터 찐따나 놓는 사람에겐 배추 안 팔아욧!” 가게 주인이 손님에게 하는 말이다. “아니 배추 두포기에 18달러라니 좀 비싸다고 말한 것뿐인데…” 손님은 오히려 주눅이 들어 겨우 기어드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초로의 할머니였다. 그럼에도 손님은 “그냥 주세요” 하고는 주머니에서 돈을 꺼내든다. “글쎄 안 판다니깐요…” 저럴 수는 없었다. 나는 화가 치밀었다. 그 장면에 끼어들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아서라 말아라, 그러고는 주먹을 꼭 쥔 채 장바구니를 동댕이치고 나는 가게 문을 나섰다. 한인 타운을 즐길 마음은 애 저녁에 몽땅 날아가고 말았다.
서둘러 집으로 차를 몰았다. 마음이 왜 그리 처연할까, ‘안녕하세요?’ 그 한마디가 뭐가 그리 어렵단 말인가. 비록 조금 전의 마켓에서 목격한 풍경뿐만 아니다. 한인 타운의 거리에도 상점에서도 한국 사람을 만나면 쓰윽 외면하는 게 예의처럼 되어 있다. ‘안녕하세요’ 그 한마디는 어디에서든 부재중이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친한 사람들과는 죽고 못 살 듯 살갑지만 그렇지 않은 사이는 가벼운 목례조차 인색하다.
내가 사랑하는 1.5세 젊은 부부가 있다. 그들에게는 아들, 딸이 있다. 아기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안녕하세요’를 가르쳤다. 뿐만 아니라 식탁 앞에서는 ‘잘 먹겠습니다’ 밥을 다 먹은 후엔 ‘잘 먹었습니다’ 그리고는 자기가 먹은 접시들과 수저는 꼭 싱크대에 스스로 갖다놓게 하는 젊은 엄마 아빠의 지극한 가정교육이다. 그리고 그런 인사법은 꼭 한국말로 가르쳤다. 지금은 한국말을 잘 못하는 초등학생으로 커버린 두 아이들은 그 인사법을 한국말로 어김없이 한국사람 앞에서 사용하고 있다. 아이들은 아마도 평생 그 인사법을 사용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아예 몸에 습관처럼 배어 있다.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날씨가 참 좋군요’ ‘실례했습니다’ ‘미안합니다’ 그렇게 말 좀 하고 살자.한국 사람은 물론 미국인, 외국인 모두에게 말이다. 낯선 사람들과 눈이 마주칠 때 가벼운 미소를, 아니면 ‘안녕하세요’ 하고 입술을 열어보자. 그 한마디가 하루의 일상을 활력 있게 바꾸어 놓을 테니까.
김주앙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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