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창흠(논설위원)
백년해로(百年偕老)란 ‘영원토록 함께 늙어가면서 사이좋게 살자’는 뜻이다. 신혼부부들의 다짐이자 부부들이 원하는 삶이다. 부부라면 누구나 살아서는 같은 방을쓰고, 죽어서도 같은 무덤 속에 들어가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옛사람들은 새우를 먹으며 부부가 백년해로하는 꿈을 꿨다고 한다. 새우의 굽을 등에서 검을 머리가 파뿌리 될 때까지 평생고락을 함께 해 온 노부부의 모습을 떠 올렸기 때문이다. 새우는 옛날부터 부부금실의 상징으로 결혼식 피로연의 단골메뉴였다. 조선 민화의 결혼식이나 회갑연 그림에 새우를 그려 넣은 것도 비슷한 이유였다. 부부가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라는 덕담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고려 말의 충신 이색은 새우를 보고 ‘몸을 굽혀 서로 예절을 차리니/ 맛보면 오히려 도(道)가 쌓이겠다’고 시로 노래했다. 허리 굽혀하는 인사는 서로 예절을 다하는 것이니 새우를 먹으면 살찌는 것이 아니라 도가 깊어져 정신적 수양이 된다고 한 것이다. 부부가 서로를 아끼며 해로하려면 예절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니 서로 통하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금실지락((琴瑟之樂)은 부부간의 화목한 즐거움을 뜻하며 줄여서 금실(琴瑟)이라고 한다. ‘琴’은 ‘거문고 금’이고, ‘瑟’은 비파의 슬’이다. 거문고와 비파가 아름다운 화음을 이루는 것처럼 그렇게 사는 부부사이를 일컫는 말이다.(참고로, ‘琴瑟’을 한글로 쓸 때는 ‘금슬’이 아닌 ‘금실’로 적는다. 금실이 한글말법의 하나인 전설모음화에 의한 표준어이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자귀나무는 금실 좋은 남녀의 상징으로 수많은 시나 문학작품에 등장하곤 했다. 꽃의 아름다움도 유명하지만 특이한 모양의 잎사귀 변화가 더욱 잘 알려졌기 때문이다. 깃털 모양의 겹잎이 날이 어두워지면 잠을 자는 듯이 마주하는 잎끼리 포개진다. 한 치의 틈도 없이 꼭 붙어버린 겹잎은 아침까지 그 모습을 유지한다. 이런 모양이 찰떡궁합 부부가 껴안고 잠은 자는 모습으로 많이 비유되고 있는 것이다. 자귀나무의 또 다른 이름인 합환목이나 합혼수 등도 이런 모양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뜰에 심으면 부부사이가 좋아진다는 속설도 그런 모습에서 생긴 것이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황혼이혼이 한인사회서도 점점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혼사유가 꼭 남성에게 있는 건 아니지만, 중년남성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나이가 들수록 여성은 혼자가 되고 싶어 하고 남성은 아내를 꽉 붙들어야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요즘 중년의 아내들은 남편이 좀 거슬리게 나오면 “그래, 좀 늙어지거든 보자”며 마음속으로 칼(?)을 갈고 있다고 한다. 이제까지 묵묵히 참고 살던 아내들이 언젠가는 돌변할 수 있는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오죽하면 중년의 아내가 외출할 때 어딜 가느냐? 누굴 만나냐? 언제 오느냐? 등을 묻는 것은 간땡이(?)가 부은 짓이라고 한다. 아내가 곰국을 끓이면 비상이고, 이사를 갈 때도 이삿짐 차가 떠나기 전에 운전석 옆에 앉아야지 한 눈 팔다가는 놓고 가기 십상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아무리 호사가들의 우스갯소리라 하더라도 남의 이야기로만 마음속에 새겨두어서는 안 될 일이라 한다.
중년의 잘못이 지금은 그냥 넘어가는 것 같이 보여도 노년에 가서는 쫓겨나는 이유가 될 수 있음이다. 쫓겨나지는 않더라도 노년에 늙은 아내 앞에서 주눅이 들어 눈치만 보는 신세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지금부터라도 잘 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조언을 그냥 흘려보내선 안 된다. 그게 바로 중년남성들이 정신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하는 이유인 셈이다.
황혼이혼은 오래 누적된 부부갈등의 결과지만 어느 날 갑자기 소리 소문 없이 불쑥 고개를 내민다고 한다. 물론, 중년남성들 대부분은 자신과 상관없는 일로 여기고 있을 게다. 하지만 수 십 년 동안 멀쩡해 보이던 부부들의 뒤늦은 이혼소식이 왕왕 들려오니 무턱대고 안심할 노릇만은 아닌 셈이다. 어느 누구도 설마 내가? 라며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중년남성들이여! 지금은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지라도 돌다리 두드리는 마음으로 제 역할을 잘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보라. 그래야만 황혼이혼으로 인생말년을 망치고, 뒤늦게 후회하는 일이 없을 게다. 더불어 당장은 자귀나무를 앞뜰에 심지는 못할지라도 오늘밤에는 새우를 함께 먹으며 백년해로의 부부금실을 다져봄이 어쩔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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