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에볼라! 에볼라!”로 시끄럽다. 23일 뉴욕에서 에볼라 감염환자가 새로 나타나면서 그러잖아도 과하던 에볼라 과민증이 한층 심해졌다. 뉴스를 보다보면 당장이라도 에볼라 바이러스가 사방으로 퍼져나갈 듯 요란을 떠는 보도들이 있다. 특히 하루 24시간 뉴스를 진행하는 케이블 방송들은 매체의 특성상 에볼라 보도를 끊임없이 반복하고, 그렇게 반복되는 사이 대중의 불안감은 상승작용을 일으킨다.
뉴욕의 환자는 크레이그 스펜서라는 33살의 의사이다. 에볼라 창궐지역인 서아프리카, 기니에서 국경없는 의사회 일원으로 환자들을 돌보고 돌아온 지 한 주만에 증상이 나타났다. 발병 즉시 그는 격리병동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고 있고 그의 약혼녀와 두 친구도 격리조치 되었다. 증상이 나타나기 전날 밤 그가 갔던 볼링장이 폐쇄되고 그가 탔던 택시기사가 조사를 받았으며 그의 지하철카드와 신용카드 결제내역을 토대로 보건당국은 지난 며칠 그의 행적을 샅샅이 추적하고 있다.
보건당국으로서는 혹시라도 있을 지 모를 전염 가능성에 대비해 마땅히 할 일을 하고 있지만 바이러스의 특성을 고려할 때 일반 시민들이 긴장할 일은 아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공기 전염이 아니기 때문이다. 같은 지하철을 탔다고, 같은 볼링장에 있었다고 전염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침이나 피, 정액 등 체액을 통해 전염되고, 이 역시 증상이 나타나기 이전 잠복기에는 전염성이 없다. 그런데도 뉴욕에서 수천마일 떨어진 LA에서조차 에볼라 감염이 무서워 공공장소를 피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있다.
우리는 왜 이렇게 두려워하는 걸까? 이제까지 미국에서 발생한 에볼라 감염환자는 총 4명. 아프리카 여행 중 감염돼 미국에 온 첫 환자가 사망했고 그를 간호하다 감염된 두 간호사는 완치판정을 받았다. 현재로서는 뉴욕의 의사가 유일한 환자이다.
인구 31억7,000만 중 발병사례 4건. ‘아프리카’와 사소한 관련만 있어도 학교가 폐쇄되고, 캠퍼스가 대피소동을 벌이고, 서 아프리카 발 ‘항공기 운항금지’ 시위를 하는 것은 해도 너무한 호들갑이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피어볼라’, 두려움과 에볼라를 합친 것이다. 에볼라 공포증, ‘피어볼라’가 미 전국에 독가스처럼 퍼지고 있다.
매년 3만여명 사망하는 독감에 대해서는 그러려니 하면서 감염가능성 제로에 가까운 에볼라에 공포심을 갖는 이유는 하나다. 독감은 익숙한 반면 에볼라는 낯설기 때문이다. 낯선 것에 대한 본능적 두려움이다. 1950년대 한동안 호수나 풀장에서 어린이들의 수영이 금지됐었다. 소아마비 바이러스가 물에서 전염될 수 있다는 새로운 사실이 발표되자 부모들의 공포심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었다.
심리 전문가인 칼 알브레히트 박사는 인간에게 기본적으로 5가지의 두려움이 있다고 말한다. 사멸, 절단, 자율성 상실, 분리, 자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가장 기본적이자 보편적 두려움은 ‘사멸’. 생명체로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는 데 대한 두려움이다. 에볼라 공포는 한 꺼풀 벗기면 자신이나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질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연결이 된다.
‘절단’은 신체의 일부가 잘려나가거나 훼손될 것에 대한 두려움. 보통 뱀이나 거미를 무서워하는 것은 ‘절단’에 대한 두려움이 유전자에 남은 결과로 해석이 된다. 원시인들이 독이 있는 동물이나 맹수의 공격을 받으며 느꼈던 두려움이 그 뿌리이다.
그 외 육체적 마비나 교도소 수감 등 스스로의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관계를 거부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자신의 능력이나 됨됨이를 인정받지 못하고 경멸당할 것에 대한 두려움 등이 자율성 상실, 분리, 자아 죽음의 두려움을 이룬다. 우리를 괴롭히는 두려움들은 많은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포장을 벗기고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이들 5가지 두려움이 때로 하나 때로 두세개 들어있다는 것이다.
‘두렵다’는 상태는 양면성을 갖는다. 시각을 바꾸면 많은 경우 긍정적 상황이다. 두려움이란 아직 발생하지 않은 어떤 사건이나 상황을 상상하며 스스로를 괴롭히는 감정. 다시 말해 그런 상황이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두려움의 핵심은 상실. “지금 가장 두려운 것은 무엇일까?” 생각해보면 그것이 무엇이든 뭔가를 잃는 것이다. 생명, 건강, 재산, 명예, 사랑하는 사람 … 다시 말하면 지금은 그것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 된다. 두려움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길은 잃을 상황을 상상하는 대신 지금 가진 것을 즐기는 것이다.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말 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단 한 가지는 두려움 자체일 뿐”이다.
junghkwon@koreatimes.com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