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용진(전직 단체장)
자고 나면 우리는 매일 ‘오늘’이라는 선물을 받는다. 이 선물이 내게는 언제 끝날지 모르지만 눈을 뜨면 나도 모르게 오늘 하루를 주신 분에게 “감사합니다” 하게 된다. 산다는 것은 참 복잡하고 아슬아슬한 것 같다. 걱정 없는 날이 없고 항상 부족함을 느끼지 않는 날이 없다. 하지만 어제가 있어 행복했고 오늘이 있어 행복하고 또 내일이 있기에 행복하다.
그럼에도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잊고 살 때가 많다. 오늘도 나는 좋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라는 희망 속에서 하루를 시작한다. 요즈음 내가 유일하게 가진 것이라고는 희망뿐이다.
얼마 전 오늘 할 일을 메모하는 중에 딸한테서 전화가 걸려 왔다. 손자와 손녀를 학교에 차로 데려다 주어야 하는데 그만 잊고 있었다. 내가 가지 않으면 딸이 출근을 할 수 없으니 서둘러 달려갔다.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오다가 갑자기 국밥이 한 그릇 먹고 싶어 식당에 들어가서 막 먹고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9시30분에 집에서 만나기로 한 이 회장이 30분이나 일찍 내 집에 도착해서 빨리 좀 와 달라는 것이다. 지금 화장실에 안 가면 밖에서 일을 봐야 한다며 사정하는 것이 아닌 가!
이제 국밥 겨우 두 숟가락을 먹었는데 아쉽지만 그대로 일어나 집으로 돌아왔다. 화장실이 급하다니 차고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빠를 것 같아 차고 문을 열었는데 그 순간 이게 웬일인가! 뿌연 연기가 가득 밀려와서 숨을 도무지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너무 놀라 위로 뛰어 올라가니 아침에 데워 먹으려고 올려놓은 고등어조림이 다 타서 쇠 그릇이 빨갛게 녹기 직전이었다.
부랴부랴 가스 불을 끄고 온 집안의 연기를 빼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회장은 그토록 급하던 화장실도 미처 가지 못하고 연기를 빼기 위해 정신없이 왔다 갔다 했으니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미안하고 송구스러운지 모르겠다. 생각하면 그때 이 회장이 만약 30분 더 일찍 왔고 또 화장실이 급하지 않았다면 과연 어땠을까……. 오,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다행히 모두 무사히 잘 지나갔으니 모든 것이 감사하고 또 감사할 따름이다.
그 후로는 이제 아무리 바빠도 집을 나올 때는 꼭 가스 불 확인하고 대문은 잘 잠겨 있는지 몇 번을 당겨 보고 떠난다.그날 골프를 마치고 19홀에서 가스 불 사건이 화제가 되어 치매 초기증상이 아닌지 병원에 가보라, 음식은 무엇을 먹으면 좋다느니 모두 다 한 마디씩 하는 중에 몇 차례 골프를 함께 한 윤 회장이 춤을 한번 배워보면 어떠냐고 제의했다. 춤이 치매 예방에도 좋고 운동이 되어 몸도 가벼워진다는 그의 말이 왠지 솔깃하게 들려왔다.
집에 와서 아내에게 얘기했더니 좋은 생각이라 하여 함께 시작하기로 마음을 정하니 그 시간이 기다려진다. 오는 11월11일 합동결혼식 기념일로 친구 윤 회장 가족과 함께 춤을 출 때 과연 상대의 발을 밟지 않고 잘 출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다.
윤 회장과 대화를 하다 보면 참 재미가 있다. 나보다 젊어 보여서 나이를 물었더니 나와 같은 1941년 뱀띠 갑장이란다. 나보다 생일이 두 달 빠른데도 몸 관리를 어떻게 잘 했는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신문에서 오늘의 ‘운세’란을 보면 내 나이는 안 나온 지 이미 오래다 .왜 그럴까 노인이라서 별 볼일이 없기 때문일까. 그러나 윤 회장이 치는 드라이브 길이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나는 도저히 따를 수 없을 만큼 길다. 평균 250야드 이상이다. 나는 여러모로 많이 부족하지만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나 편하고 좋다. 이제 시니어 소리는 들어도 괜찮은데 노인 소리는 ‘아직’ 이라는 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윤 회장과 이야기 하는 중에 정말 우연의 일치인지 몰라도 결혼 일자도 우리는 서로 같다. 1971년 11월11일 11시 서울에서 같은 날짜, 같은 시간에 결혼했고 또 43년 만에 다시 미국 뉴저지 팰팍에서 만나게 되었다. 윤 회장과 우리 집은 자식도 둘 모두 출가시키고 둘만이 사는 것이나, 한 타운 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나 모두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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